**월간 <모터매거진> 11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포르쉐의 키를 받았다. 운전석에 앉았다. 오른손에 키를 들고 아무리 찾아도 꽂을 곳이 없다. 아뿔싸, 왼쪽에 있다. 2007년 포르쉐를 처음 만났을 때 일이다. 세상에 차는 현대와 기아만 있는 줄 알았던 무식쟁이에게 포르쉐를 안겼으니 당황스러울만하다. 


당황은 잠시 후 공포로 바뀐다. 포르쉐를 처음 탄 곳은 서킷이었다. 최근에는 <탑기어 트랙>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당시에는 포르쉐의 퍼포먼스 전 세계 순회 행사인 <포르쉐 월드 로드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1억 원을 훌쩍 넘는 포르쉐들이 줄지어 섰고 서킷을 가르는 쨍쨍한 배기음은 심장 박동과 200% 싱크로 됐다. 강력한 배기음의 끝에는 타이어가 지르는 비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또 다시  허공을 가르는 배기음이 이어졌다.


포르쉐와의 첫 만남이었다. 독일에서 날아온 포르쉐 전속 드라이버는 조수석에 나를 태운 채 911 터보를 타고 헤어핀을 공략했다. 수동변속기를 3단에서 2단으로 내리면서 이 양반은 영어로 "꽉 잡아"라고 외쳤다. 순간 작고 단단한 911의 뒤꽁무니는 벽을 향해 미끄러졌고 뒤 타이어는 흰 연기를 내뿜었다. 핸들은 반대로 돌아갔고 정면에는 벽이 보였다. 그러나 차는 코스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드리프트였다.


짧고 강력한 인상을 남겼던 포르쉐는 드림카가 됐다. 가장 저렴한(그래도 중고로 4천만원이다) 포르쉐 박스터를 노리며 중고 매물을 검색하기도 했고 도로에서 만날 때면 경외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했다. 2인승 포르쉐. 패밀리카로는 완벽한 부적격이다. 유모차 따윈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자기 집 주차장에 SUV하나 세단하나 갖췄다면 2인승 스포츠카쯤이야 구색 맞춰 들여놓겠지만 차 한대사면 출퇴근에 여행에 가족행사에 마트갈 때 까지 동원해야하는것이 현실이니 요놈을 어떻게 들여놓을까 고민에 고민을 해야 했다.


사실 이런 고민을 가장 많이 했던 것은 추측컨대 포르쉐일 것이다. 그리고 고민의 끝에 포르쉐는 해결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미 포르쉐 판매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SUV 카이엔이 첫 번째 대안이었다. 4인승 SUV를 포르쉐라고 불러줘야할지도 고민스러운 일이지만 카이엔은 출시 10년을 앞 둔 지금 포르쉐에선 황금 알을 낳는 거위요 포르쉐를 이끄는 황소다.


파나메라의 출시도 포르쉐의 고민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분명 감사한일이다. 포르쉐를 살 수 있게 이렇게 노력해준다니 말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모든 국민이 차를 탈 수 있게 저렴하고 4인 가족이 탈 수 있는 차를 개발하라던 히틀러의 요청과 이로 인해 만들어진 폭스바겐의 '비틀'이 생각난다. 물론 파나메라는 4명이 탈 수 있는 건 맞지만 모든 국민이 탈 수 있는 퍼블릭카는 아니다. 파나메라는 포르쉐 유일의 4도어 승용차다. 와이프와 아들, 딸이 한차에 쏙 들어가며 마치 해치백처럼 생긴 트렁크는 뒷좌석을 접을 경우 440리터나 되는 대형 적재공간이 생긴다. 유모차뿐만 아니라 작은 냉장고도 들어갈지 모를 정도로 실용적이다.


파나메라의 뿌리를 찾아가면 낯선 차 한대를 만난다. 바로 "포르쉐 파나메리카나"다. 오타가 아닐까 싶은 이름이다. 그러나 이렇게 읽으면 이해가 쉽다. "포르쉐 판-아메리카나." 

자동차를 생일 선물로 만들어준다면 지금 들어도 깜짝 놀랄 일이지만 1989년 페리 포르쉐 박사의 80세 생일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선물이 바로 포르쉐 파나메리카나였다. 포르쉐의 설립자 퍼디난드 포르쉐 박사의 아들이니 이정도 선물쯤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야할까.


파나메리카나는 포르쉐 911 타르가를 기본으로 해 4인승 콘셉트카로 만들어졌다. 실제 양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지금은 독일 슈트트가르트의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지금의 파나메라와는 달리 2도어에 4인승이라는 어중간한 형태를 가졌다. 어쨌건 파나메라의 할아버지 겪인 파나메리카나는 이미 등장했었다.


파나메라의 어원에는 재밌는 레이스의 역사가 있다. 1989년 포르쉐 박사의 80세 생일선물이었던 파나메리카나는 사실 'pan-americana'에서 나온 말이다. 1950년 개통된 멕시코의 고속도로 이름인 '판-아메리카 고속도로'에서 유래했다. 당시 총 거리 3천373km에 이르는 장거리 고속도로 개통에 맞춰 멕시코 정부는 6일간 횡단 레이스를 펼쳤다. 이름하여 <까레라 파나메리카나>. 하지만 안전상 이유로 1954년을 끝으로 레이스는 중단됐고 포르쉐는 이 레이스에서 영감을 얻어 <파나메라>라는 이름을 지었다. 물론 <까레라>도 이 레이싱대회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포르쉐에는 이런 류의 이름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타르가> 역시 1906년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의 레이스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포르쉐의 넉넉한 배려인지 수익성을 위한 노력인지 모르겠지만 4인승의 포르쉐는 이미 포르쉐의 핵심사업으로 자리잡았다. 파나메라의 등장은 2007년 4월20일 인터넷에 스파이샷이 공개되면서 포르쉐 마니아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2008년 9월에 포르쉐는 4인승 포르쉐가 등장한다고 공개했고 놀랍게도 같은해 10월 대한민국 부산에서 가림막 없는 파나메라가 카메라에 잡혔다. 2008년 11월29일 포르쉐는 첫 공식 이미지를 공개했고 200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상하이오토쇼를 통해 첫 데뷔 무대를 가졌다.


상하이오토쇼에서 파나메라를 공개한것은 중국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이미 1994년 베이징 오토쇼에서 선보였던 포르쉐 <C88>이 '슈퍼미니세단', '포르쉐의 패밀리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었다. 15년 후 포르쉐 파나메라는 중국시장에서 첫 데뷔를 하며 판매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포르쉐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시장에서 포르쉐의 판매증가는 경이로울 정도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포르쉐는 모두 9만972대를 팔았다. 유럽이 3만638대, 북미가 2만4602대를 차지했고 아시아가 가장 많은 3만5732대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중국이 1만9141대를 차지했다. 주목할 것은 카이엔과 파나메라의 성장률이다. 전년 동기 대비 세계 시장이 30.9% 판매 증가를 보인 반면 중국은 무려 86.1%의 판매 증가가 이뤄졌다. 심지어 9월 기록만 본다면 104.6%나 판매가 증가했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차가 4인승 SUV 카이엔과 4인승 승용차 파나메라다.


파나메라의 등장으로 포르쉐는 카이엔에 이어 또 하나의 안정적인 수익원을 만들어냈다. 또한 세계 최고의 자동차 시장으로 불리는 중국에서 큰 성장을 이뤄냈다. 포르쉐 911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평균 3대의 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포르쉐의 발표도 있었지만 파나메라를 소유하는 사람이 다른 포르쉐에서 얻었던 만족감을 파나메라에서도 느낄 수 있을지가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4인승 차를 만들어 짭짤한 수익을 맛 본 포르쉐는 이제 디젤 모델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유럽차의 50% 이상이 디젤 엔진이라지만 포르쉐가 디젤엔진이라니 4인승 패밀리카라는 콘셉트보다 더 어색한 조합이다. 이 어색하고 새로운 차 파나메라 디젤의 시승에 나섰다. 


포르쉐 파나메라 디젤, 스포츠카와 패밀리카라는 어색한 조합의 정점에 있는 차다. 3.0리터 6기통 터보 디젤 엔진을 장착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6.8초, 최고속도는 242km/h다. 요즘 잘나간다는 차에 비교하면 그다지 빠른 가속도 아니고 대단한 최고속도 아니다. 하지만 디젤임을 감안해야 한다. 디젤 엔진 특성상 낮은 회전수에서 최대 출력이 나온다. 3800rpm에서 250마력(ps), 1750~2750rpm에서 56.1 kg∙m의 토크를 가졌다. 높은 토크를 바탕으로 쑥쑥 밀어주는 디젤차는 실제보다 강력한 힘을 느끼게 마련이다.


파나메라 디젤은 눈여겨봐야 할 항목들이 있다. 디젤 엔진을 얹으면서 기존의 파나메라와 달라진 것들이다. 먼저 변속기가 다르다. 가솔린 엔진에 사용되던 7단 ZF의 포르쉐듀얼클러치(PDK)변속기가 아니라 아이신의 8단 팁트로닉 S 변속기가 장착됐다.  덕분에 고속주행시 낮은 엔진 회전수를 유지한다. 가솔린 엔진 대비 연비도 좋아졌다. 포르쉐는 이 차를 발표하면서 100km를 주행하는데 드는 연료는 경유 6.5리터. 즉 리터당 15.4km를 주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측정한 공인연비는 리터당 11.8km. 같은 엔진을 쓰는 포르세의 SUV  카이엔 디젤이 리터당 12km로 비슷한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는 파나메라 4가 리터당 8.8km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파나메라 디젤은 DPF를 장착한 <3종 저공해차량>이다. 따라서 환경개선분담금 5년간 면제, 수도권 공영주차장 50%할인, 남산터널 혼잡통행료 50%할인 등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파나메라의 라인업은 국내에 7종이 들어왔다. <파나메라 S 하이브리드>까지 포함하면 8종으로 늘어난다. 그중에 디젤은 기본형인 <파나메라> 모델에 이어 두번째로 저렴한 모델이다. 가격은 1억2280만원. 다른 브랜드의 어지간한 플래그십 세단을 살 수 있는 가격이다. 벤츠의 S클래스, BMW의 7시리즈, 아우디의 A8과 가격 경쟁을 할 수 있다. 가장 비싼 라인업인 파나메라 터보는 디젤모델보다 두 배 비싼 2억 원대. 이 가격이면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럭셔리 스포츠 세단들과 경쟁할 수 있다. 그래서 해외에선 애스톤마틴 래피드,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벤츠 CLS와도 비교대상으로 삼고 있다.


파나메라 디젤을 사람에 비유하면 짠돌이 막내쯤으로 보면 된다. 역사 깊은 명문가 포르쉐 집안의 막내 말이다. 집안 내력인 스포츠카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실제 운전대를 잡아보면 실용적이다. 디젤엔진 특유의 소리와 진동은 거리낌 없이 귀와 발과 손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여타의 디젤 세단과 차이점을 갖췄다. 스포츠카 911의 배기음 역시 크지만 듣기 좋게 느껴지듯 이 차의 소음과 진동 역시 적당하게 튜닝됐다. 가속페달에 힘을 줘 달려 나가면 엔진 소리, 배기음이 합쳐지며 경쾌하게 달려간다. 시동만 걸고 들어보면 알 수 없는 특징들이 도로를 달리자 튀어나온다.


단단하게 끼워 맞춘 듯 포르쉐 특유의 핸들링이 느껴진다.  20인치 295/35 사이즈의 타이어를 끼운 효과도 있겠지만 911의 감성이 전해지는것이 더 큰 이유다. 커다란 덩치를 급격한 코너에 마음 놓고 몰아 부치는 용기가 바로 감성에서 비롯될 수 있다. 실제로는 속도감응형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인 <서보트로닉>처럼 곳곳에 숨은 포르쉐의 기술이 핸들링을 더욱 좋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포르쉐를 타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이 차가 포르쉐란 말이야? 그러면 이 정도는 충분하겠지"라는 믿음이 생긴다는 말이고 또 그만큼 차가 잘 따라와 준다는 말이다.


파나메라 디젤을 시승하러 가는 길까지 BMW의 디젤 세단을 이용하게 됐다. 우연치 않게 비교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최근 독일차의 대표주자 BMW가 말랑말랑한 승차감으로 변화하고 있는 반면 일본과 미국의 자동차들은 과거의 독일차 처럼 단단하게 변하는 추세다. 하지만 파나메라는 변함없는 단단함을 갖고 있다. 물론 911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대형 세단에서 이정도 단단한 느낌은 찾아보기 힘들다. 스포츠세단으로 포지션을 확실히 했다. 하지만 디젤 모델에선 단점도 느껴진다. 파나메라 S 하이브리드와 파나메라 타보에 기본 장착되는 에어 서스펜션이 디젤 모델에선 빠졌다. 아쉬운 부분이다. 고속주행 중에 급격한 회전을 해도 출렁임을 잡아주던 매력적인 기능인데 아쉬움으로 느껴진다.


파나메라 디젤은 1억2천만 원에서 2억4천만 원에 이르는 파나메라 라인업 가운데 저가에 속한다. 따라서 파나메라의 본격적인 성능을 느끼기엔 부족하다. 그러나 포르쉐는 독립주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계약자가 원하는 옵션을 추가할 수 있으니 구입을 마음먹었다면 꼼꼼하게 따져볼 일이다. 1억이 넘는 차를 타면서 '저가형' 혹은 '엔트리'따위의 말을 붙일 수는 없다. 분명 고급 세단이고 스포츠 세단가운데 손에 꼽히는 명작이다.


실내에 앉으면 손을 뻗어도 조수석 문을 잡을 수 없다. 그만큼 넓다. 하지만 아우디나 BMW의 화려함과는 다른 매력을 가졌다. 수많은 버튼은 직관적이라기 보다는 하나하나 장착된 기술을 그대로 뽐내는 모양이다. 911에서 시작해 카이엔까지 이어진 투박한 실내가 그대로 자리 잡았다. 센터콘솔에는 국산 내비게이션이 장착됐다. 수입사에서 넣어놓은 것으로 무난하다. 오디오와 내비게이션 콘트롤박스를 따라 센터콘솔로 내려오면 바로 기어노브와 이어진다. 그 사이에는 비상등과 공조 버튼이 놓여있다. 기어노브 좌우에는 열선을 비롯해 스포츠 모드 버튼, 오토 스타트/스톱 버튼이 있고 너 댓개의 빈 버튼공간이 양쪽으로 나열됐다. 무엇인가 기능을 추가해주기 바라는 아쉬움을 말하는 듯하다.


정면에 보이는 계기반은 포르쉐의 전통을 따라가고 있다. 가장 커다란 원에는 4천500rpm에서 레드존이 시작되는 타코미터가 자리 잡았다. 왼쪽으로 300km/h까지 과감하게 표시된 속도계와 오일온도계가 붉은 바늘로 표시되고 있다. 오른쪽에는 디지털 정보가 나온다. 오일의 온도, 크루즈컨트롤 상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작동상태까지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스티어링휠의 위치 조작은 전동식이 아니다. 왼쪽에 자리한 독일차 특유의 다이얼식 라이트 스위치는 파나메라에도 그대로 이어졌고 그 아래에는 포르쉐의 특징 키홀더가 자리했다. 3스포크 스티어링휠에는 팁트로닉 변속기가 장착됐다. 양쪽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조작할 수 있다.  운전중 많이 사용하는 크루즈컨트롤 버튼과 전화 & 엔터테인먼트 조작 버튼이 장착돼 편의성을 더했다.


A필러가 길게 누워있는 형태라 대시보드 공간이 넓다. 가죽으로 마감된 대시보드는 검정 가죽에 검정 실로 처리해 무난하다. 4개의 좌석은 스포츠 버킷 시트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성인 남성이 앉으면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단단하게 잡아주는 크기다.  헤드레스트 부분은 따로 분리되지 않아 마치 레이싱카에 사용되는 버킷 시트의 모양을 하고있다. 뒷좌석 역시 버킷 시트처럼 생겨서  중앙에는 사람이 앉을 수 없다. 


포르쉐를 탔으니 달려야한다. 넓고 멀리 뚫린 길에서 가속페달을 밟았다. 역시 디젤차는 토크의 느낌이 시원하다. 시속 150km까지 눈 깜짝할 사이 가속된다. 제원으로 알려진 6.8초의 제로백은 수치일 뿐이다. 의자에 파묻히며 느껴지는 가속력은 여느 스포츠카 못지않다. 다만 숨 쉴 틈도 없이 변속이 이어지던 듀얼클러치 변속기에 비해 아주 잠시 들숨 쉬고 다시 힘을 내뿜는 변속기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속 200km까지 밟아도 소음은 저속에서와 별반 차이가 없다. 아마도 이 차는 정차했을 때 가장 시끄러워 보인다. 그나마 오토 스타트/스톱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때 말이다. 어지간해서 정차하면 시동까지 꺼지니 소음으로 인한 고민은 내려놓아도 좋겠다.


차 안을 어색하게 만들지만 연료 절약에 큰 효과를 주는 기능인 오토 스타트/스톱이 장착됐다. 신호대기와 같은 차량 정차 시 엔진을 자동으로 꺼주는 기술이다. 출발을 위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순식간에 다시 시동을 걸어주니 주행을 위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수동변속기의 클러치를 밟아본 사람치고 가장 부끄러운 시점이 운전 중 시동을 꺼트리는 것임을 누구나 알 것이다. 그 시절의 느낌이 남은 탓인지 시승하는 내내 오토 스타트/스톱이 작동하면 무엇인가 잘못한 듯 긴장감을 제공했다.


오토 스타트/스톱은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작동한다. 예를 들면 차가 좌, 우 회전 중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즉 핸들이 꺾인 경우 정차하더라도 작동하지 않는다. 또 실내 온도가 너무 낮거나 높아서 에어컨이나 히터를 작동시켜야 할 경우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모든것을 차가 알아서 조절하니 운전자는 "아~ 시동이 꺼졌구나"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포르쉐의 엄친아 파나메라가 이제 휘발유를 들이 마시던 식성까지 바꿨다. 잘빠진 몸매에 잘 달리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식성이 너무 좋아 선뜻 다가가기 힘들다는 말도 이제는 핑계다. 조금 먹고 잘 달린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스포츠카 포르쉐 911의 혈통을 이었으면서 온 가족이 타고 나들이를 떠날 수 있는 패밀리카로 등장했다. 그것도 한번 주유로 부산을 다녀올 수 있는 매력을 앞세워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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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웃긴 얘기다.
손목시계랑 페라리랑 바꾸자니

이런 제안을 듣거든 홍반장표 주먹으로 아구창을 파팍~ ㅋㅋ

시계랑 차랑, 그것도 페라리랑 바꾸자면 황당하겠지만
나는 오늘 보았다.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사진으로 찍었다.
왜 가능할지 모른다고 하는지를.

바로 이 사진이다.


가능해 보이지 않는가?
손목시계랑 페라리랑 바꾸는거 말이다.

이쯤되면 어지간한 수입차랑은 바꾸지도 않을테지...

*신동품 벤츠S600인데요 교환원합니다.
**님아 내가 시계가 하나 있는데 추가금 주면 생각해볼께.

모 요런 상황 올지도.
페라리라면 좀 바꿔볼 생각이 날지도 모르겠다.


페라리는 그럼 얼만가?

네이버 자동차 DB를 살펴보니
페라리의 엔트리(?뭘 엔트리 하란 말이냐) 모델인
캘리포니아가 3억5천만원이다.


손목시계보다 2천5백쯤 비싸다.
이정도는 추가로 시계줄 정도 끼워주면 해결되지 않을까?

혹은 페라리가 중고라면?? 

에흐흐~   "님아 좋은거래하시길~" 이러겠지.


뜬금없이 이런 얘길 꺼낸 이유는 이러이러하다.

스포츠 간지 빤짝 이태리 자동차 페라리와 근석이도 지우도 좋아하는 스위스 시계 위블로가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내놨다. 이름하여 '페라리 뚜르비용 에디션'이다.

29일 광장동 W호텔 Woobar에서 진행된 런칭 파티에는 수천만원에서 3억대에 이르는 위블로의 시계와 페라리의 엔트리 모델인 캘리포니아가 전시됐다. 위블로는 F1에도 시계 스폰서를 하고 있어 TV를 통해 눈에 익은 브랜드. 또 지난달에는 배우 장근석이 위블로 행사에 등장해 관심을 모았었고 이날도 배우 최지우가 등장해 기자들의 플레시 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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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6 | 조회 20221 | 이다일의 자동차여행 | 2011.11.13 13:36

"고 웨스트" 오늘 자동차로 떠나는 여행의 주제다. 미국 중서부 네바다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밤의 도시 라스베가스를 떠났다. 벌거숭이 산 속 구릉지인 라스베가스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이제 가야할 곳은 '고 웨스트', 서쪽을 향해서 캘리포니아로 넘어간다.


1848년 골드러시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던 이들도 과연 이런 광경을 목격했을까. 네바다 사막을 가로질러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길에는 애꿎게도 비가 왔다. 푸석푸석한 사막 고속도로를 달리나 싶었더니 비 오는 사막이 됐다. 사막에서 비처럼 반가운 손님이 있을까. 그러나 여행자에겐 사막은 사막다워야 하거늘, 어찌 비가 내리는지…



우리의 목적지는 햇볕이 쨍쨍하다는 캘리포니아다. 이른바 '써니 캘리포니아'. 가는 길은 비록 비가 오지만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기대해본다. 특히 일행이 목적지로 삼은 곳은 말리부다.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시내에서 차로 2시간쯤 떨어진 해변이다. 1960년대부터 쉐보레의 중형 세단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최근에 한국 쉐보레에서 나온 중형 세단도 말리부다.


캘리포니아 인구가 4천만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인구수로만 따져도 전 세계 국가를 통틀어 25위권에 속하는 큰 지역이다. 어지간한 나라보다 인구가 많다. 그 중 약 60%는 영어를 주로 쓰고 멕시칸, 스페니쉬, 중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한국어는 1.5%쯤이라고 한다. 그러니 길에서 영어가 아닌 말을 들어도 어색하지 않다. 


사실 모든 미국 땅이 그렇듯 우리가 가는 캘리포니아 말리부 역시 원주민들이 있었다. '츄마시(chumash)라 불리는 부족들. 1834년 인디언 토벌과 이어지는 전쟁으로 인해 숨거나 사라져 이제는 약 100여명만 명맥을 잇고 있다. 이들은 말리부를 비롯해 산타 바바라 등 캘리포니아 해변 일대에서 살던 부족이다. 우리가 가는 말리부는 바로 이들의 땅. 산과 바다 사이에서 물고기를 잡고 따뜻한 계절을 발판삼아 살아왔을 그 땅이다.



제시카 알바가 뛰어놀고 베컴이 백사장을 걷는 곳


우리나라의 부산 광안리, 해운대가 그랬던가. 달맞이 고개가 그랬듯 바닷가 경치 좋은 곳은 인기가 좋았다. 말리부 역시 마찬가지다. 헐리웃 스타들의 집과 유명인들의 별장이 이곳에 있다. 이따금 해외토픽에서 보던 영화배우 제시가 알바가 남편과 뛰어놀고 햇볕 안 드는 영국에서 온 LA갤럭시팀의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백사장을 걷는 곳이 바로 말리부 해변이다. 



이 밖에도 슈퍼모델 지젤 번천의 비키니 사진이 찍힌 곳도 이곳이요 쉐보레 자동차가 마구잡이로 변신하던 영화 <트랜스 포머>의 여주인공 메간 폭스가 비키니 몸매를 자랑한 곳도 바로 이곳 말리부 해변이다. 그러니 말리부에 도착해 헐리웃 스타 한 둘 쯤 본다 해도 이상할리 없겠다. 



베컴이 찾았건 제시카 알바가 있건 중요하진 않다. 사실 이번 여행은 주제가 자동차니 말이다. 특히 말리부에선 컨버터블을 타 볼 예정이다. 써니 캘리포니아에 컨버터블은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말리부'라 쓴 글씨만 봐도 야자수 나무와 컨버터블이 연상되니 아~ 기다려라 말리부야.


써니 캘리포니아의 동반자



느낌이 다르다. 이 땅에서 컨버터블을 탄다니 말이다.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느끼기 위해선 컨버터블이 필수다. 특히 말리부 같은 해변을 달릴 때라면 컨버터블이 아니면 아쉽다. 그래서 렌터카 회사에서 차를 컨버터블로 바꿨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범블비다. 그 녀석은 노란색이지만 이 녀석은 강렬한 레드. 게다가 뚜껑도 열리니 영화처럼 말하거나 변신하지는  못해도 이해해준다. 



말리부 해변을 달리며 느낀 것이지만 나라마다 컨버터블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 보인다. 일단 세계 최초의 자동차들은 모두 컨버터블이었다. 즉 천정이 없었다. 독일의 칼 벤츠의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그랬고 헨리 포드의 '모델 T'도 그랬다. 


그런데 유럽과 미국의 컨버터블은 느낌이 다르다. 유럽은 해가 반짝 뜨지 않는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도 컨버터블을 많이 탄다. 추정컨대 햇볕을 좀 더 받으려면 뚜껑 따윈 없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엔 해가 매일매일 반짝 뜬다. 그래도 햇볕을 즐기는 이들. 멋일까, 생활일까, 즐거움일까... 그러면 왜 컨버터블이 즐거울까. 


여담이지만 컨버터블을 타기에 한국처럼 안 좋은 조건도 없다. 서울은 일 년 중 장마철을 비롯해 비가 내리는 날이 100일이 넘는다. 게다가 하루만 지나도 차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다. 대도시라 매연과 교통체증으로 달리는 평균 주행속도는 30km/h를 밑돈다. 그러니 컨버터블 지붕을 열고 한번 달릴라 치면 온갖 시선이 집중된다. 그건 마치 신호등에서 웃통 벗은 베컴을 만난 겪이랄까. 조금 과장해서 말이다.


보통 로스앤젤레스에서 말리부를 가려면 10번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 땅 끝, 산타모니카까지 가서 해변을 따라 1번 국도를 타고 간다. 이른바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다. 하지만 우리가 말리부로 향한 날은 토요일 아침. 교통정체가 우려돼 북쪽 101번 도로를 타고 다시 남쪽으로 토팽가 주립공원을 가로지르는 산길을 택했다. 이곳은 한국의 산과도 닮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도 찍었다는 곳이다.



말리부 해변에 대한 기대를 수다로 풀어내며 구불구불 산길을 가로지르자 순식간에 예고 없이 갑자기 해변이 나타났다. 'T'자로 갈라진 교차로에 들어서자 정면에 태평양 바다가 펼쳐졌다. 꼬불길의 마지막 코너를 지나자 마자 예고 없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가 바로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 우회전해서 말리부 중심가로 향했다. 


도로와 해변밖에 없다. 왼쪽은 바다요 오른쪽은 절벽, 그 사이에 도로가 놓였다. 또 도로와 바다 사이엔 어깨까지 도로 아래에 숨긴 집들이 줄지어 섰다. 바다에서 보면 3층이고 도로에서 보면 1층이다. 해변으로 이어진 집들은 백사장도 개인 땅이다. 자신만의 해변을 가진 집. 환상적이다.


이곳에 들어서니 신호등에 줄지어 선 차들의 조합이 조금 달라졌다. 강남 가로수길 보다 백배는 보기 힘들던 람보르기니, 페라리와 같은 차들이 나타났다. 또 BMW Z4, 포르쉐 카레라, 콜벳 등등 뚜껑 열고 달릴 컨버터블도 등장했다. 빨간 카마로의 탑을 열고 있던 우리도 자연스레 그 사이에 끼었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파라다이스 코브'. 점심식사를 위해서다. 아침부터 출발했지만 빨간 카마로를 빌리러 시간을 지체한데다 말리부의 식사를 기대하며 설렁설렁 넘긴 아침식사가 이미 동났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에 따르면 한국 쉐보레 말리부의 CF에 나오는 해변이 아마도 이곳 '파라다이스 코브'일 것이라는 정보도 얻었다. TV에 나온 그곳으로 길을 재촉했다.


갈매기, 펠리컨, 칵테일


쉐보레 말리부의 CF를 보면 멋진 하늘과 바다 가운데 자동차가 서 있다. 그 위에 갈매기가 앉아있거나 칵테일이 놓여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씨름하는 직장인들을 선동하는 광고다. 차하나 산다고 갑자기 인생이 말리부로 갈것이냐만 그래도 직장인들의 갈증을 자극한다.


우리의 갈증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 컨버터블을 열고 달리면서 만나는 빼어난 경치와 써니 캘리포니아도 좋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을 실천해야한다. 1번 국도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작은 길을 따라 내려가니 '파라다이스 코브'가 나오고 그 곳엔 작은 카페도 나왔다. 카페도 전용 해변을 갖고 있다. 해변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고 시원한 코코넛 음료도 한손에 받아들었다.


음식이 등장하자 스믈스믈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으니, 갈매기와 펠리컨들이다. 심지어 오리같이 생긴 녀석은 내 의자 옆에 서서 감자튀김 한 조각 떨어지길 기다린다.




바로 쉐보레 말리부 광고에 등장했던 녀석들이다. 아마 이 녀석일지도 모른다. 광고를 찍을 때도 감자튀김으로 유인했을까. 식사를 마치고나면 모두들 백사장으로 나간다. 먼저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이미 백사장에서 뛰어다닌다. 백사장에는 카페에서 놓아둔 비치체어도 있고 파라솔도 있다. 여유로운 식사와 바로 이어지는 바다 감상이 한 번에 이뤄진다.


백사장을 둘러보니 이곳이 맞는가보다. 쉐보레 말리부 광고를 찍은 그곳 말이다. 그런데 광고처럼 남녀가 걷는 해변이 나오려면 이 카페가 없어야하고 그 옆에 뻗어 나온 선착장 다리가 없어야한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없앴을까. 그러면 서쪽의 언덕에서 찍었겠구나. 그다지 중요치 않은 상상을 더해가면서 CF의 한 장면을 기억해봤다.





주마 해변과 클래식 롤스로이스


왁자지껄한 카페를 떠나 커피를 마시러 스타벅스에 들렀다. 차로 5분쯤 되는 거리다. 고급 주택단지가 이어지는 곳이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가게들도 드문드문 있었다. 스타벅스가 있는 곳은 일종의 상점 밀집 지역으로 뒤편 주차장까지 여러 종류의 상점이 모여 있다. 특히 서핑 보드 상점은 동양에서 온 여행객의 눈길을 끈다. 40대로 보이는 남성은 반바지만 입고 스타벅스에 들어섰다. 검게 그을린 웃통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저 정도는 튀는 편에도 못 드나. 역시 눈길을 주는 것은 우리 일행 뿐.



커피를 사들고 나오니 주차장에 눈에 띄는 차가 서 있다. 조수석에는 곱게 차려입은 중년 여인이 앉아있다. 검정색 롤스로이스다. 그것도 최신형의 그런 차가 아니라 이른바 클래식카 대열에 들어가야 할 오래된 차다. 말리부가 동양에서 온 우리 일행을 여러 번 두리번거리게 한다. 티내지 않고 앞을 향해 걷지만 셔터에 이미 손가락이…



말리부에 유명한 해변 가운데 하나인 주마해변을 찾았다. 우리나라의 해수욕장 쯤 생각했지만 모습이 기대에 어긋난다. 심지어 오뎅이라도 한 꼬치 팔아야 해변이라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없다. 주차도 백사장과 도로에 걸쳐 두 줄로 이어질 뿐이고 주변에는 흔한 상점도 하나 없다. 그래도 절경은 절경이다. 절벽 바위와 이어진 바닷가는 이곳이 그 유명한 말리부임을 상기시켜준다.





해변에 차를 놓고 사진 한 장을 찍고 보니 쨍한 모습이 멋지다. 이곳이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변임이 그대로 찍히는 듯하다. 바다에 들어가긴 이제 추운 날씨인지 사람들은 주로 백사장에서 책을 읽거나 일광욕을 즐긴다. 안전요원도 자리를 비웠고 쌀쌀한 바닷바람이 이어진다. 일행 중에 누군가 그랬다. "자 바다건너 집으로 가자" 그렇다. 이 바다가 태평양이다. 한국 동해바다와 만나는 바로 그곳이다. 바다 건너 말리부 해변에 왔다. 헐리웃 영화에 등장하던 그곳을 밟고 섰다. 


그리고 누군가 또 대답했다. "저는 그냥 비행기타고 갈래요 ㅋㅋㅋ" 우리 일행은 해변을 떠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자동차의 고향 디트로이트다.


로스앤젤레스=이다일 crodai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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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2 | 조회 9524 | 이다일의 자동차여행 | 2011.11.20 14:29

지난 5월, 위장막을 하고 제 눈에 포착되기도 했던 기아자동차 레이(프로젝트명 TAM)가 드디어 출시됩니다. 기아자동차는 21일부터 사전예약을 받기로 했고 신차발표행사도 이달말로 예정돼 있습니다.

기아자동차 레이(RAY)



가격도 발표됐는데요자동변속기 기준 1240만원~1495만원이라고 합니다 모닝에 들어간 3기통1리터 가솔린 엔진을 장착해 경차로 분류되고 모닝처럼 LPG 가솔린 겸용의 엔진도 추가될 예정입니다


연비는 자동변속기 기준 리터당 17km 모닝의 19km보단 낮지만 쉐보레 스파크의 리터당 17km 동일한 효율성을 갖췄습니다

 차의 마케팅을 담당하던  관계자에 따르면  차의 타겟은 유모차를 싣고 다니거나 아이들과 함께 마트와 학교등을 오가야하는 엄마들로 정해졌다고 합니다따라서 1330mm 높이의 실내공간을 갖춰 어린이들은 차에서  있을  있습니다 B필러를 없애고 조수석 문짝은 90도로 열려 1432mm가로 폭이 생겼습니다


쉽게 말하면 어지간한 유모차박스 등등은 그대로 들어간다는 얘기죠 아이들은 우산을 쓰고 타고내릴 정도니 참으로 실용적인 차입니다.


헌데  차의 마케팅을 맡은 사람들은 한가지 걱정이 있다고 합니다전해들은 얘기로는 주부들을 타겟으로 마케팅을 하고 출시할 것인데 정작 구매자는  차를 화물차로 사용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입니다.이미지에 타격이 있을  있다는 것이죠 꼬집어 기존의  승합차 대우 다마스의 자리를 빼앗는것 아니냐는 걱정입니다.


사실  팔리기만 한다면 자리를 빼앗건 어쨌건 괜찮은 일이긴 합니다만 마케팅에 초점을  아이들과엄마의 실용적 생활과는 거리가 생기가 됩니다


이런 마케팅 포인트 때문인지 기아차는 보도자료를 통해 G마켓의 육아맘 클럽과 이벤트를 진행한다고합니다과연 아이 엄마들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일지 기대되는 일입니다.


이렇게 화물차로 사용될까 노심초사하는 기아차가 고객용 카달로그를 만들었는데요아이러니하게도레이 오른쪽 뒷편에는 유명한 화물차 폭스바겐 트랜스포터가 등장했습니다폭스바겐의 상용차 플랫폼 T 바탕으로  차입니다유럽에서는 우리나라의 스타렉스만큼이나 자주 보게되는  입니다.





아마도 유러피안 분위기를 내려고 저런 배경을 선택했나본데 화물차 될까 우려하는 기아차가 유럽의 정통 화물차와 같이 등장하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없네요.


 다른 얘기로 예전부터 있던 박스차 시장이 있습니다바로 밴이라는 시장인데요 우리나라의 봉고스타렉스가 이런 부류에 속합니다.  조금 전에 얘기한 폭스바겐의 트렌스포터도 바로 그런차죠그런데 며칠전 폭스바겐에서도 레이와 비슷하게 생긴 차가 콘셉트카로 발표됐습니다.




폭스바겐 eT라고 부르는  차는 독일의 우체국과 대학교에서 제작에 참여했습니다시작부터 배달차의 운명을 타고난 것입니다전기로 움직여 탄소배출 제로를 자랑하고 조수석에는 차를 조정하는 조이스틱이 있어서 배달업무를 도와준다고 합니다.  


완연한 화물차로 등장한 eT 육아를 위한 차로 등장한 기아 레이새로운 세그먼트가 어떻게 펼쳐질지기대되는 순간입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레이와 비슷한 콘셉트의 자동차가 많이 있습니다토요타의 경차 브랜드 다이하츠가 생산하는 탄토가 그렇습니다실제로 B필러를 없애고 공간을 극대화했다는 레이의 컨셉은 탄토와많이 닮아있습니다.


어찌했건 실용성 가득한 차가 늘어나는데 양손 번쩍 들고 환영해   합니다게다가 경차 아닙니까.세금없는 경차


/이다일기자 crodai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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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5-12 10:26 | 최종수정 2010-05-12 10:36 기사원문

녹차밭과 삼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이다일기자)

전라남도 보성군 도강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차를 생산한다. 남해바다와 영천저수지에서 적당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차 재배의 최적지로 꼽히고 있다.

올 해 첫 녹차 잎을 따고 있다. (이다일기자)

보성의 차에 대한 이야기는 세종실록지리지 토공조를 비롯해 여러 문헌에서 등장한다. 가장 최근에 이어진 차 재배에 대한 기록은 1939년 일제강점기의 경성화학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야산 30ha에 차 종자를 파종해 차를 재배 했는데 일제강점기가 끝나면서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한다. 1957년에 들어서 대한다업이 경성화학의 야산을 인수 다시 녹차 재배에 나선다. 이어 1962년에는 본격적으로 차 가공에 나섰고 재배면적도 50ha로 확대했다. 대한다업이 위치한 인근 지역인 영천리 도강마을에서 차 재배를 시작한 것도 그때 쯤 이었다. 

녹차밭 차 밭은 수분공급이 원활하고 배수가 잘 되는 곳에 위치해야 한다. 보성의 다원들은 대부분 저수지 인근에 있으며 비탈진 산에 밭고랑처럼 줄지어 있다. 4월말에서 5월이면 처음 올라온 찻잎을 따게 되는 이것을 최고로 치며 100% 수작업으로 수확한다. (이다일기자)

호랑이가 나오던 산비탈에 차밭이 들어서다

수확 찻잎은 강한 불에 덖고 손으로 비빈다. 좀 더 불을 약하게 두 차례 더 덖고 비빈 뒤에 건조시키면 차가 완성된다. 녹차는 수확하고 이틀이내 모든 작업이 끝내야 한다. (이다일기자)

보성읍에서 남쪽으로 차로 10분정도 달리면 녹차밭으로 유명한 대한다원이 나온다. 매년 다향제가 열리는 곳도 이곳이다. 다시 남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언덕, 봇재를 넘으면 바로 영천리 도강마을 이다. 이 마을에서 4대째 살아온 이전행 할아버지(78)에 따르면 도강마을은 가끔 호랑이도 출몰하는 첩첩산중이었다. "여그서 보성가려면 산길을 넘었제, 봇재라고, 나가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재를 넘는데 호랭이를 만났어. 호랭이가 사람을 보내주는 호랭이가 있고 해치는 호랭이가 있어. 그란데 가만가만 오니까 내가 인자 잠방잠방 갔단 말이여. 근데 요놈이 금새 와서 앞에 앉아있고, 또 금새 와서 앞에 앉아 있는 거제. 그것이 내를 인제 해치지 않고 보내준 거시여." 할아버지는 60년 전 이야기를 해주시며 마을의 차 재배에 대해서도 말씀을 이어갔다. "옛날에는 전부 농사지었지. 일부는 저기 바닷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근데 1968년부턴가 요 옆에 다원에서 차 재배를 배워다가 산을 깎아서 밭을 만들 었제. 그것이 요로코롬 된 거랑께." 할아버지의 얘기에 따르면 지금의 대한다원은 진득골, 다향제를 하는 곳은 텃골, 거기서 봇재를 넘어 남쪽으로 오면 이곳 도강마을이라고 했다. 지금은 마을 주민 대부분이 차를 재배한다. 산등성이 마다 가득한 차 밭은 보성 녹차를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풍경이다.

도강마을의 찻잎 수확 보성군 영천리 도강마을은 주변을 둘러싼 산들이 대부분 녹차밭이다. 가장 좋다고 알려진 첫 잎을 따기 위해서는 모자라는 일손을 외지에서 빌려온다. 멀리 영천 저수지와 도강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차 밭에서 한 아낙네가 찻잎을 따고 있다. (이다일기자)

차밭이 잘되는 조건

기념촬영 보성의 차밭은 관광지로 인기가 높다. 하루 수 십대씩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1km 남짓 걸으면 차밭 정상을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선 사람들은 카메라, 핸드폰을 꺼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다일기자)

보성읍내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다 만나는 영천리는 산비탈에 자리 잡은 차 밭이 장관이다. 봇재를 넘는 도로가에는 차 밭의 풍광을 감상하기 좋게 전망대까지 만들어져 있다. 굽이굽이 산허리를 감싸는 차밭은 봄날의 햇살을 받으며 반짝반짝 빛난다. 또 아침저녁이면 안개가 끼면서 몽롱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어 낸다. 

바다전망대 대한다원의 정상에 있는 바다전망대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난다. 산책길처럼 쉽게 오를 수 있는데다 아래에선 볼 수 없었던 차 밭의 울퉁불퉁한 모습이 더욱 눈에 잘 들어온다. (이다일기자)

전국 각지를 비롯해 중국, 일본까지 돌아보며 23년째 차 재배를 해온 조현곤씨는 도강마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천저수지가 마을 바로 앞에 있어 차밭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젖줄 역할을 하고 있고 안개가 많이 끼는 기후 덕택에 수분이 충분히 공급됩니다. 그리고 배수가 잘 되는 땅까지 합쳐지면서 차 재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역입니다." 좋은 환경에 매료된 조씨는 7년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고 차 재배에 나섰다. 마침 취재를 갔던 날은 올 해 첫 수확한 차를 덖고 있었다. "올 해 차가 참 잘 됐어요. 어린잎을 일장일기를 따서 상처가 나지 않게 만들었어요. 찻잎 만드는 건 기술이 아니라 정성이지요. 차 대회에 내 보려고 조심조심 덖는 중이에요"

찻잎은 정성 차는 기술이 아니라 정성으로 만들어진다는 조현곤씨가 올해 첫 수확한 잎으로 만든 차를 선보이고 있다. 잎사귀를 비벼 말리면서도 행여 상처라도 날까봐 조심스런 움직임이다. 그는 보성의 입지와 기후조건이 차를 만드는데 가장 좋은 곳이라 손꼽았다. (이다일기자)

녹차밭 따라 사진 찍기 좋은 곳

도강마을 보성의 영천리 도강마을은 영천저수지와 남해바다, 그리고 배수가 좋은 산으로 인해 차 재배에 적격지로 꼽힌다. 차 밭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은 조그만 논을 빼놓고 대부분 차 밭이다. 최근에는 중국산 저가 차와 경쟁하기 위해 친환경 농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다일기자)



계절의 여왕 5월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사진이 있다. 바로 그 해의 첫 찻잎을 따는 풍경이다. 희뿌연 안개 속에 푸른 차 밭이 펼쳐지고 붉은 바구니를 옆에 낀 아낙들이 차를 따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사진 동호회를 중심으로 차 밭의 풍경을 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보성은 사진가들이 말하는 일명 '성지순례' 코스에 들어있다. 보성의 차 밭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대한다원 제1농장은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낮은 산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차 밭 구경과 산림욕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차밭을 만들면서 방풍림으로 심은 삼나무가 숲을 이뤘기 때문이다. 좀 더 자연스럽게 마을 주민들이 일하는 모습을 담으려면 봇재를 넘어 18번 국도를 타고 영천리로 가면 된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는 넓게 펼쳐진 차 밭과 영천 저수지까지 어우러진 풍경을 담을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이 발걸음은 거의 없지만 드라마나 CF를 통해 알려진 곳도 있다. 18번국도로 계속 달려 회천면에서 우회전하면 회령리가 나온다. 이곳에는 대한다원 제2농장이 있다. 넓게 펼쳐진 차 밭과 멀리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이다. 차 밭을 찍으려면 이른 새벽 출발해야 한다. 동이 트고 물안개가 끼었을 때가 가장 사진이 잘 나온다. 안개 사이로 푸른 찻잎이 반짝거리면 풍경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느라 셔터 누르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가는길

버스는 서울에서 하루 두 번 보성까지 운행된다. (8시10분, 15시10분), 광주, 순천, 목포에서는 30~40분 간격으로 보성까지 버스가 다닌다. 열차는 서울에서 보성까지 1회 운행되며 광주, 순천에서 보성역으로 하루 8회 운행한다. 승용차로는 호남고속도로 동광주IC에서 광주 제2순환도로-화순-29번국도를 지나 보성읍으로 오면 된다. 보성읍에서는 18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대한다원, 영천리를 지날 수 있다.

보성녹차대축제(5월 초) http://dahyang.boseong.go.kr

보성군청 http://www.boseong.go.kr

보성군청 문화관광과 061-850-5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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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6-09 10:32 기사원문

1967년, 정부는 서울 도심의 개발을 위해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용산, 남대문, 청계천에 살던 사람들이 바로 이곳 '백사마을'이라 불리는,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로 옮겨와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백사마을 골목길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이다일기자)


40년 전 이야기를 해주시는 동네 할머니들. (이다일기자)

"학교도 다니기 전 어릴 때에요. 아버지가 생일이라고 머리맡에 축구공을 사다 놓으셨더라고요. 너무 기뻐서 당장 들고 문 밖으로 나가서 힘껏 찼어요. 데굴데굴 산동네를 굴러 내려간 공은 하수도로 쏙 들어갔고 동생하고 하수도 끝에서 온종일 공이 나오길 기다렸지만 결국 못 찾았어요." 어린 시절을 중계동 104번지에서 지낸 임상배(34)씨의 기억이다. 불암산 자락에 자리한 산동네. 어머니는 물을 길어오셨고 아버지는 마치 맥가이버처럼 집을 고치셨다. 지금은 모두 외지로 나가 살림을 차렸지만 어릴 적 그 동네는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골목 속의 집 104번지에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이 많다. 옛날부터 나눠진 골목들은 사람 한명 겨우 지나갈 좁은 길들로 이뤄졌다. 언덕 뒤에 집이 있고 골목을 돌아서면 집이 나온다. 그래도 개성 넘치는 것이 어느 집에서도 똑같은 대문을 찾아볼 수 없다. 골목을 뛰어다녔을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다일기자)

소위 백사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중계동 104번지는 대한민국의 개발사에 그늘처럼 남아 있다. 1967년부터 정부는 개발을 이유로 강제 이주를 추진했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바로 이곳 백사마을에 마련해줬다. 당시 용산, 청계천, 안암동의 판자촌에서 살던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주대책으로 해준 것은 30평 남짓한 천막이 전부. 그나마 분필로 넷으로 선을 그어 네 가구가 살도록 했다. 천막 한 칸을 넷으로 나눴으니 한집에 8평 남짓. 그래서 백사마을의 집들은 8평부터 시작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사 간 집을 사들여서 합치고, 남는 땅에 집을 지으면서 이곳의 주택은 대부분 20평 남짓한 구조로 변경됐다. 

등산로 104번지 달동네의 꼭대기는 노원구 공릉동의 산과 맞닿았다. '한국전력 뒷산'으로 불리는 산에는 등산로가 꾸며져 있어 주민들의 산책길로 활용되고 있다. 옛날에는 들짐승이 많아 혼자 다니기 위험한 산, 전쟁으로 인해 벌거숭이가 된 산이었지만 지금은 울창하게 숲을 이뤘다. (이다일기자)

늑대가 울던 산골동네

중계동 백사마을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노원구 중계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90년대 중반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배밭과 논이었던 땅이 모두 아파트로 변했다. 지금은 학교와 학원이 많기로 소문난 동네가 됐다. 백사마을 역시 주변의 발전에 따라 재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이다일기자)

104번지가 처음 생길 때 이사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박해숙 할머니(76)는 마치 즐거운 옛날 얘기 하듯 40년전의 추억을 꺼내 놓는다. "내 아들이 50살이니까 정확히 44년 됐지. 여기 6통에서 내가 제일 먼저 집을 지었어요. 밤에 물 뜨러 가면 '그르릉~'하면서 늑대가 뒤를 따라와요. 깜짝 놀라 뛰어 들어오면 시어머니가 남자가 치근대는 줄 알고 '언놈이 붙잡던가?' 그랬어요. 하하하. 산 속에 갑자기 사람들이 이사 왔으니 늑대가 먹을 걸 찾아 들어왔지요. 그땐 그랬어요." 박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땔감도 없어서 산에 있는 나뭇가지, 잡풀까지 모두 긁어서 땠다고 한다. 그마저도 산을 지키는 사람한테 붙잡히면 모두 두고 내려와야 했다. 용산에서 이사 왔다는 다른 할머니는 "윗목에 물이 얼고 걸레도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겨울을 보냈다"며 "연탄 한 장에 6원 50전하던 시절인데 그걸 아끼느라 방이 얼어붙었어요."라고 말했다. 

고추농사 집 앞에 고추, 호박, 상추를 심어놓은 담벼락이 눈에 띈다. 때마침 물을 주던 할머니는 "혼자 먹고 남을 만큼 수확이 잘 된다."며 농사 자랑을 했다. 작은 고추와 호박잎이 담벼락을 따라 자라고 있다. (이다일기자)

워낙 산골이라 학교 가는 길도 멀고 험했다. '토끼길'이라고 부르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산을 넘으면 지금의 하계동 '연촌초등학교'가 나왔다. 거기까지 아이들은 모두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이 길은 짐승이 많아 남자고 여자고 혼자서는 다니지 못하는 길이었다. 박 할머니는 "지금이야 중계동이 학원도 많고 교통도 좋지요. 그때는 오솔길, 진흙길뿐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심지어 장마철이 되면 부모들은 난리가 났다. 줄줄이 물이 세는 집을 수리해야 했고 학교에 간 아이들이 행여 물에 떠내려 갈까봐 아이들 데리러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산골인데도 기반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서 장마철이면 물이 차는 곳이 수두룩했다.

교회 백사마을 아이들에게 교회는 동네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었다. 교회 앞마당은 축구장이고 야구장이었다. 언덕배기 산동네에 있는 교회라 한쪽은 철창으로 공이 떨어지지 않게 막아놨지만 아이들이 놀다보면 철창을 넘어 아랫집으로 공이 날아가기 일쑤였다. (이다일기자)

'육여사국수'를 먹어 봤어요?

계단은 몇 개? 백사마을에서 태어난 임상배씨는 "동생과 함께 이 계단이 몇 개인지 세어보는 놀이를 했다."며 "어릴 때는 높고 커 보였는데 이제 와서 보니 이렇게 작은 계단과 골목인게 새삼스럽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다일기자)

방앗간 한편에 할머니들이 모였다. 겉으로 봐서는 영업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오래된 간판과 제분기가 방앗간임을 추측케 한다. 40년전 이야기를 부탁했더니 끝없이 이어질 기세다. 그러다 뜬금없이 '육여사국수'이야기가 나왔다. 매일 점심이면 '육여사국수'를 받으러 가는 게 일이라고 했다. "냄비하나 들고 그거 타러 가면 국수에 노란 무 하나 얹어서 줬어요. 그걸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나, 집에 가져와서 김치랑 해서 애들이랑 같이 먹었지요." 당시 104번지에서는 정부에서 밀가루 국수를 해서 나눠줬는데 이를 두고 주민들이 '육여사국수'라고 이름을 붙였다. 당시가 박정희 대통령시절이라 육영수여사의 성을 딴 것이다. 

갈림길 백사마을 입구 갈림길이다. 슈퍼마켓과 비디오 대여점이 사이좋게 붙어있다. 이곳의 건물들은 대부분 옛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고 작은 가게들도 옛 모습 그대로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이다일기자)

당시나 지금이나 아이들 입맛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똑같은 국수를 계속 먹으니 아이들이 질려했다. 한 할머니는 "국수를 계속 주니 새끼들이 안먹을라케. 그래서 그거 타다가 채반에 말려서 기름에 튀겼지. 그래서 설탕 쳐주면 잘 먹었어. 그래 살았어요."라며 먹을 것 귀하던 시절을 회상했다. 

산 따라 지어진 집 초창기 마을에는 먼저 들어온 사람에게 산 아래쪽 터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주해 온 지역에 따라 삼삼오오 모여서 살기 시작했고 청계천에서 온 사람들이 사는 곳, 남대문에서 온 사람들이 사는 곳이 조금씩 나눠서 형성됐다. 지금은 서로 집을 팔고 사고 이사를 다녀서 예전 같은 구분은 사라졌다. (이다일기자)

개발과 재개발로 이어진 한평생



중계동 104번지 할머니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우린 별거 다 겪어본 세대에요. 해방에 전쟁도 겪었지, 거기다 개발한다고 이주해서 여기로 옮겨왔고 40년을 산동네를 오르내리며 살았지요." 지금 마을에는 대부분 노인들만 남아있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릴 적 추억의 동네로 104번지를 기억하고 있다. 오래 만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쉽게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이유가 또 있다. 개발이 되지 않아 옛날 모습을 거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40년전 지어진 집들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고 동네 입구 가게부터 언덕 중턱에 자리한 교회까지 옛 모습 그대로다. 어릴 적 뛰어놀던 계단도 그대로 있고 물탱크가 있던 뒷산도 등산로로 조금 정비됐을 뿐 변한 것이 없다. 다만 달라진 것은 어릴 적 커 보이던 건물과 마당이 지금은 깜짝 놀랄 만큼 작아 보인다는 것.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며 드라마를 비롯해 많은 매체에 노출되던 104번지도 재개발을 직면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추진되던 재개발이 갖은 사연 속에서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 이곳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되던 안되던 빨리 결정이나 났으면 좋겠어. 집을 고치지도 못하고 사니까 말이지. 나 죽기 전에 아파트 기둥 올라가는 거나 보려나 모르겠네."라고 말했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가는길

지하철 4호선, 7호선 노원역, 1호선 창동역에서 1142번 버스로 갈아타고 종점까지 가면 된다. 버스 종점이 104번지 시작이며 큰 은행나무가 서 있어 찾기 쉽다. 중계동 104번지 백사마을이 사진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무분별한 촬영으로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 주민들의 생활을 존중하며 옛 모습을 담는 노력이 필요하다. 1,200여 가구가 모여 있는 넓은 지역이므로 한 바퀴 둘러보는데 두어 시간은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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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6-16 13:11 기사원문

느림에서 찾는 참다운 삶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시작됐다. 세계 17개국, 123개 도시가 가입된 슬로시티에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창평등 5곳이 가입됐다.

느릿느릿 소달구지를 타고 마을을 구경한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발효를 통한 전통음식은 슬로시티의 상징이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마을 입구에선 시끌벅적 장터가 열렸다. 노인들은 나물과 채소를 들고 나와 자리 잡았고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할아버지는 가훈을 써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마중물을 넣고 물을 길어 올리는 체험을 하고 있고, 한편에선 떡방아를 쳐 보는 파란눈의 외국인도 있다. 

슬로시티의 상징인 달팽이에서 이름을 따온 '달팽이 시장'이 열리면 온 마을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이 지난 2007년 12월 1일 '치타슬로 (Cittaslow) 국제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인정받으면서 일어난 변화다.

소풍 유치원 아이들이 창평 슬로시티로 소풍을 왔다. 배추가 심어진 마당을 지나 개량 한복을 입고 돌담길을 걷는다. 햄버거와 피자를 찾는 아이들에겐 슬로시티의 슬로푸드가 어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슬로시티는 사람 중심의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1999년 시작됐다. 지금까지 세계 17개국 123개 도시가 가입했고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의 창평을 비롯해 완도, 장흥, 하동, 예산이 슬로시티로 인정받았다.

슬로시티로 인정받는 조건은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전통적인 수공업과 조리법이 보존되어 있어야 하고 고유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자연친화적인 농업을 사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인간중심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 

남극루 마을 논 가운데 세워진 남극루. 1830년대에 장흥인 고광일을 비롯한 30인에 의해 지어졌다. 평지에 건립된 2층 누각 형태로 다른 건물에 비해 특이성을 갖고 있다. 규모 또한 웅장해서 향토유형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됐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풍족한 곡창지대

담양지역, 특히 창평면은 예로부터 농사짓기 좋은 곡창지대였다. 이곳이 풍요로운 고장임을 보여주는 것은 지금 남아 있는 옛 가옥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세곳에서 물길이 모인다는 뜻의 '삼지내 마을', 창평의 작은 마을에 모여 있는 고택들은 넉넉한 크기의 곳간을 갖고 있다. 곳간에는 쌀이 가득했고 겨울이면 쌀을 이용해 한과를 만들고 엿을 만들어 먹었다. 곳간이 가득 차니 인심도 후하고 문화도 발달했다.

돌담 모양이 제각각인 돌을 쌓고 남는 공간은 황토 흙으로 채웠다. 그 위에는 기와를 얹었고 사이사이에서는 담쟁이 넝쿨이 자라고 있다. 마을의 돌담길 산책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이다일기자)

이 마을의 춘강 고정주 고택은 창평 지역 근대교육의 효시인 영학숙과 창흥의숙의 모태가 되기도 했고, 한말 민족운동의 근원지로 현대사적 의미도 갖고 있다. 마을의 남쪽에는 월봉산이 있는데 멀리서 보면 크지도 높지도 않은 완만한 산세를 갖고 있다. 이 산에는 상월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곳은 고려 경종 1년(916)에 창건된 대자암의 절터다. 추제 김자수가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상월정을 창건했고 손자사위 성풍 이씨 덕봉, 이경이 사위 학봉 고인후에게 양도해주면서 김, 이, 고씨의 3개 성씨가 이곳에서 연을 맺게 된다. 바로 여기서 창흥의숙을 연 춘강 고정주, 신학문을 배운 고하 송진우, 가인 김병로, 인촌 김성수, 취봉 고재호, 심강 고재욱 그리고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한기, 고재필 선생이 공부를 한 곳이다. 월봉산에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고 하니 문화의 고장으로 손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돌담길 따라 걷는 슬로시티의 매력

춘강 고정주고택 춘강 고정주(1863~1933)의 고택이며 창평지역 근대교육의 효시인 영학숙과 창흥의숙의 모태가 된 곳이다. 입구의 담장은 곧게 뚫리지 않아 대문을 열어놓아도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양쪽 지붕보다 조금 높게 올라선 솟을대문을 비롯해 전형적인 부농의 한옥 모습을 보여준다. (이다일기자)

슬로시티에 왔으니 천천히 둘러보기로 결심했건만 급한 현대인들에게 '느린것' 만큼 힘든 일도 없는가보다. 느긋한 걸음으로 둘러봐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면사무소에서는 자전거를 빌려주고 있었다. 군데군데 포장도 되지 않은 돌담길을 자전거로 달려보니 기분이 색다르다. 걸을 때 보다 조금 높아진 눈높이는 담벼락 건너편이 훤히 들여다보여 새로운 시계를 선사한다.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고택으로 들어섰다. 골목 초입에서는 집의 대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높은 담을 쌓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구조가 엿보인다. 옛 선비들은 사람이 불쑥 나타나면 상대방이 놀라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문을 들어섰다고 한다. 

담장보다 높게 올라선 솟을대문을 지나자 누런 나무빛이 뚜렷한 고택이 나타난다. 한눈에 봐도 양반집이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큼직한 곳간채와 문 옆에 붙은 문간채까지 제대로 갖춘 한옥이다. 사랑채와 안채는 서로 보이지 않도록 집 안에 담벼락을 두었다. 듬성듬성 돌이 박혀있는, 논의 흙을 가져다 바른 전통양식의 담벼락이다. 

달팽이 시장 매월 둘째 토요일. 아이들의 학교가 쉬는 '놀토'가 되면 슬로시티에는 장터가 열린다. 슬로시티의 상징인 '달팽이'를 본따 일명 '달팽이 시장'이라고 부른다. 인근 주민들이 가지고 나온 나물과 채소들, 담양지방의 대나무로 만든 각종 물건들이 시장에 늘어선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이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부농의 양반가옥이다. 예사 마을에선 보기 힘든 큰 집 너 댓 채가 아직도 남아있으니 창평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슬로시티'로 유명세를 타서 인지 마을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간혹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고 주민들은 얘기한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무언가 큰 기대를 하고 왔기 때문이라는 것. 슬로시티의 뜻은 전통을 지키며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마을 주민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데 왜 길을 넓히고 집을 수리하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그냥 옛 모습을 지켜 나가는 것이 슬로시티에 어울리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음식이야 말로 슬로시티의 매력

부침개와 막걸리 달팽이 시장이 열리면 부침개는 공짜다. 단, 직접 부침개를 부쳐야 한다는 단서가 있지만 말이다. 면사무소 앞에 마련된 마당에서 부침개를 부쳐 막걸리 한주전자를 마시면 마을을 둘러보느라 쌓인 피로가 말끔하게 사라진다. 멀리 서울에서 창평을 찾아왔다는 젊은이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이다일기자)



슬로시티가 갖춰야 할 조건에는 전통문화와 가옥 말고도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음식이다. 전통방식으로 만든 음식이 있어야 하고 지금도 그 방식을 유지하고 계승해야 한다. 창평면 삼지천 마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전통방식을 계승하는 사람들이 있다. 창평의 슬로푸드로 알려진 것은 엿, 한과, 장류다. 담벼락을 따라 걷다보면 대문에는 '창평 엿 판매'같은 간판이 붙어있다. 한집 건너마다 있을 정도다. 이곳을 안내해준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쌀이 풍족하니 겨울에 엿과 한과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국을 통틀어 35명에 불과한 '식품명인' 가운데 4명이 이곳 담양에서 배출됐다. 묵은 간장에 해마다 햇간장을 부어 만든 '진장'의 명인 기순도 명인을 비롯해 창평 쌀엿의 유영군 명인, 대잎술의 양대수 명인, 엿강정의 박순애 명인이 이곳에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도 숯공예의 양정자, 천연염색의 김명희, 전통약다식의 이순자, 한과의 안복자씨가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월봉산 마을 남쪽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이 바로 '월봉산'이다. 사진의 가운데 두개의 봉우리가 겹쳐있는 곳이다. 산에는 상월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했다. 지금도 고시공부를 위해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이다일기자)

가는길

광주광역시에서 승용차로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호남고속도로 창평IC에서 나와 창평 읍내로 들어서면 우측 면사무소 뒷편이 슬로시티 삼지천 마을이다. 내비게이션에는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창평리 82-2 (창평면사무소)'를 입력하면 된다. 버스로 찾아올 때는 광주광역시를 거치는 것이 편리하다. 광주 문화동 버스터미널에서 창평방면 버스가 2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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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7-14 10:48 기사원문


화성 백미리마을은 산과 들 그리고 갯벌까지 갖췄다. 푸른 논과 반짝거리는 흙빛의 갯벌에는 일 년 내내 사람들이 찾아온다. 

백미리 갯벌 / 물이 빠지면 백미리의 갯벌이 드러난다. 눈에서 보이는 만큼 멀리까지 물이 빠져 나가면 모두 갯벌 체험장이 된다. 평일에는 500~600명, 주말에는 1천여 명이 넘는 체험객이 몰려오지만 구역을 지정해 돌아가면서 체험을 진행하기 때문에 언제나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 / 이다일기자


농업과 어업/ 백미리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모두 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논을 일구고 물이 빠지는 시간이 되면 갯벌에 나가 바지락을 캔다. 배를 타고 멀리까지 고기를 잡는 어업이라기 보다는 갯벌에서 나오는 조개와 낙지가 주산물이다. / 이다일기자

구리섬, 밸미, 당너머…. 이름까지 정겹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남짓 떨어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의 백미리의 옛 이름들이다. 굴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라 하여 '굴섬'이라 불리던 것이 '구리섬'이 되었고, 마치 뱀이 꼬리를 사리고 있는 듯하다하여 붙은 이름이 '밸미'다. '당너머'는 구리섬 동남쪽의 산 너머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니 정겨운 이름들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이 갯벌에서 잡은 바지락을 보여주고 있다. / 이다일기자

서울에서 가까운 갯벌 체험마을 

마을입구/ 백미리 마을입구는 의외로 소박하다. 차가 마주 오면 갓길로 비켜서야 하는 좁은 길을 따라 마을이 들어섰는데도 바다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가 가득한 낮은 언덕을 돌아 들어가면 드디어 바닷가가 나온다. 마을은 바다와 산과 들을 모두 갖고 있다. / 이다일기자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313번 지방도를 따라 화성시로 들어섰다. 최근에 공장지대가 화성으로 많이 이주하면서 화성은 공업도시가 됐다. 곧고 넓게 뚫린 4차로 길에는 심심치 않게 대형 트럭이 달린다. 분위기로 봐서는 휴가나 놀이와 거리가 먼 동네다. 하지만 화성시청을 지나 318번 지방도로 갈아타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한적한 농촌마을의 풍경이 펼쳐진다. 낮은 산과 푸른 논이 어우러져 있다. 

갯벌 입구/ 갯벌의 입구엔 파랗고 빨간 기둥이 세워져 있다. 원래는 군사지역으로 민간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마을의 갯벌 사업과 어업을 위해 문을 열었다. 양쪽으로 넓게 펼쳐진 갯벌에는 어업을 위한 차량만 드나들 수 있고 체험객들은 걸어서 갯벌로 들어가거나 갯벌마차를 이용하면 된다. / 이다일기자



화성의 특징은 또 하나 있다. 바로 서울에서 가까운 바닷가라는 것이다. 전곡항에서는 요트축제가 열리고 제부도는 물이 빠질 때를 기다려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화성시에서 조금 색다른 체험마을을 찾아 나섰다. 내비게이션으로 '백미리체험마을'을 입력하고 길을 달렸다. 불과 1km앞에 갯벌을 갖춘 체험마을이 있다는데 주변은 아직도 논밭과 좁은 길밖에 없다. 차 한대 겨우 지나는 좁은 농로를 따라 들어서니 커다란 표지판이 생뚱맞게 서 있다. 길은 더 좁아졌다. 낮은 산허리를 돌아서니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반전이 숨어 있었다. 산 너머에 숨어있던 바다가 단번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치형의 표지판에 '백미리체험마을'이라 쓰여 있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찾아본 바로 그 곳이다.

still2.jpg/ 입구에서 갯벌 한 가운데까지 운행하는 갯벌마차. / 이다일기자

농업과 어업이 공존 하는 마을

공동운영/ 마을에서는 여러 가지 사업을 공동으로 운영한다. 어촌계에서 공동 수산물 가공장을 운영해 백미리 김을 만들고 있으며 체험객을 위한 식당도 공동으로 운영한다. 직접 잡은 바지락으로 끓이는 칼국수가 일품이다. 또한 숙박 시설도 마을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다. / 이다일기자

백미리는 논농사와 어업을 절반씩 하고 있다. 100가구가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아침에는 논에 나가 농사를 짓는다. 그러다가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이 되면 갯벌로 나가 바지락, 낙지를 비롯한 해산물을 수확한다. 최근에는 '체험마을'이라는 프로그램을 더했다. 2007년부터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된 후 마을 공동사업을 추진했다. 성과는 주민들도 놀랄 정도여서 어촌마을 주민들 소득이 무려 5배나 급상승했다. 

망둥어낚시체험/ 아이들이 갯벌에서 조개를 잡는데 열중한다면 어른들은 망둥어낚시에 여념이 없다. 갯벌의 가장자리까지 나가서 하는 망둥어 낚시에는 물이 빠지기가 무섭게 강태공들이 자리를 잡는다. 특히 물이 다시 들어올 때 망둥어가 잘 잡히는데 밀물 때는 위험하므로 아쉽지만 자리를 접어야 한다. / 백미리마을 제공

백미리는 바지락으로 이름난 마을이었다. 어촌계장 김호연씨에 따르면 옛날에는 바지락만 잡아도 대기업 다니는 사람 부럽지 않게 소득이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인근 지역에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바다가 변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갯벌에서 바지락을 채취하던 주민들의 수확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위기를 극복하고자 백미리는 '체험마을'이라는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마을 공동으로 수산물 가공센터를 운영해 김과 미역 등 해산물을 가공한다. 농업과 어업을 모두 하지만 마을은 어촌계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젊은 어촌계장이 발 벗고 나서면서 마을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맨손 물고기잡기체험 / 갯벌에서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밀물에 들어온 물고기를 어망으로 가뒀다가 썰물에 손으로 잡는 '맨손물고기잡기체험'도 인기 있는 행사 중에 하나다. 발목까지 빠지는 갯벌에서 물고기를 쫓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 백미리마을 제공

갯벌체험으로 큰 인기

갯벌놀이 /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고 들어오던 아이들은 갯벌에 오면 신이난다. 옷 더러워진다는 엄마의 잔소리도 이날만은 예외다. 호미로 땅을 파고 바지락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가만히 갯벌 속을 살펴보고 있으면 소라껍질을 짊어지고 가는 게를 비롯해 작은 생물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좋다. / 이다일기자

백미리의 갯벌체험은 인기가 좋다. 특히 기업과 학교, 학원을 중심으로 한 단체손님들의 방문이 큰 몫을 차지한다. 백미리를 찾은 한 체험객은 "서울에서 가까워서 자주 찾아온다."며 "갯벌에서 조개도 잡고 낚시도 하는 것을 아이들이 좋아해서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갯벌에서 온통 흙투성이가 된다. 손에는 바지락, 게, 소라를 잡은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있다. 스스로 호미질을 해서 잡기도 하고 엄마, 아빠 옆에서 이런저런 참견을 하기도 한다. 

갯벌체험에는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다. 마을에서 호미에 장화까지 챙겨준다. 먼 갯벌까지 걸어가기 힘든 사람들은 트랙터를 개조한 '갯벌마차'를 타고 가면 된다. 한참을 갯벌에서 놀다보면 아이들은 온통 흙투성이가 된다. 어른들도 흙 안 묻히려 조심해도 쉽지 않다. 체험장 입구에는 간이 세면대가 마련 되서 흙을 씻을 수 있다. 아이들은 세면대에서 씻기 보다는 아예 체험장 앞에 마련된 물놀이 시설로 뛰어든다. 미끄럼틀과 작은 풀장까지 있어서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비봉IC에서 서신방면으로 우회전한다. 마도면을 지나 309번 지방도를 타고 궁평리 방면으로 들어선다. 한맥중공업에서 우회전해서 작은 삼거리가 나오면 다시 우회전한다. 이후에는 '백미리 체험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대중교통으로는 금정역에서 서신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백미리까지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택시 요금은 6천원정도. 백미리까지 버스는 자주 다니지 않는다. 마을버스가 하루 4번 출발하니 시간표를 보고 이용하는 것이 좋다.

갯벌체험을 위해서는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에 맞춰가야 한다. 매일 시간이 바뀌므로 국토해양부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http://www.khoa.go.kr)나 백미리마을 홈페이지http://baekmiri.invil.org/)를 통해 미리 정보를 얻는 게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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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8-04 10:20 | 최종수정 2010-12-15 17:48 기사원문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태백산맥의 동쪽. 높은 산에서 바다로 흘러내리는 지형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구름도 지쳐 쉬어 가는 산. 그 너머 동쪽에는 즐거운 여름이 있다.

산계천 계곡에서 물고기잡기 체험을 하고 있다. / 이다일기자


백두산에서 동쪽 해안을 따라 태백산을 거치고 남쪽의 지리산까지 이르는 백두대간.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명산을 품고 있다. 명산의 갈래마다 이름난 관광지가 늘어서 있다. 그 중 강릉은 사계절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강릉은 서울의 1.72배에 이르는 면적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이 산이다. 바다와 산 사이에 마을이 있고 굽이굽이 골짜기는 여름 휴양지로 인기다. 

시원한 산바람, 즐거운 바다바람 

낙풍천의 땟목타기 체험. 왁자지껄 떠들기 좋은 놀이다. / 이다일기자

더위를 피해 떠나는 시원한 곳 피서지. 대한민국에서 피서지 찾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피서지로 첫 번째 꼽는 지역은 역시 강원도다. 평균고도가 높아 기온이 낮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차를 타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면 시원함이 느껴진다. 문막을 지나 평창에 이르니 30도를 넘던 기온이 23도로 뚝 떨어졌다. 터널 두세 개를 더 지나니 강원도 산 속으로 들어선다. 산 능선으로는 구름이 걸려있다. 푸른 나무 사이사이에서는 안개가 피어올라 구름과 만난다.



아직은 길목이다. 잠시 시원한 산 공기를 맛보고 오늘의 목적지 강릉으로 향했다. 대관령 터널에 이어지는 내리막을 달리니 바다 내음과 함께 활기찬 여름동네가 펼쳐진다. 백두대간 대관령에서 강릉시내까지는 불과 차로 15분. 짧은 구간에 이름난 명산들이 즐비해 풍경이 그만이다. 그만큼 여름휴가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풀냄새 가득한 산을 걸어도 좋고, 산 따라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가도 좋다. 온 몸을 풍덩 던져야 할 때는 백사장이 펼쳐진 바닷가로 가면 된다.

그네 / 산계리 폐교는 농촌체험마을의 중심점이다. 1995년 폐교가 됐지만 마을 주민들이 꾸준히 관리하며 녹색농촌체험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무에 달린 그네를 탄다. 언니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동생의 모습도 보인다. / 이다일기자

강릉의 산 속 마을 '산계리'

백두대간 따라 피서를 즐겨보기엔 '산계리'가 딱 이다.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는 정동진에서 차로 20분 거리다. 휴가철이라고 북적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름 한철을 노린 상술도 이곳에선 찾아볼 수 없다. 마을 입구 냇가에 들어서니 한 무리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첨벙첨벙 냇가를 휘젓는다. '물고기 잡기 체험'이다. 지금이야 '체험'이라고 불려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시절에는 일상생활이었다. 어린 시절 경험을 떠올리며 어른들은 물고기를 몰아간다. 바위 위에서 뛰기도 하고 작은 돌들을 들었다 놨다 흔들어준다. 돌 틈에 숨어있던 고기들이 깜짝 놀라 헤엄친다. 아이들은 '물고기다'를 외치며 신이 났다. 그물로 길목을 막고 기다리던 아이들이 환호하며 들어올린다. 이 동네 말로 '산뚝지', '꾸그리', '피라미'라고 부르는 민물고기가 한데 걸려 올라온다. 백두대간보전회 회원인 배선복씨가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알려주며 설명한다. "이게 꾸그리라고 하는 건데 우리나라 토종 어종이야. 보기 힘든 건데 오늘 너희들 보라고 나왔나보다."

안개 / 강원도로 들어서자 기온이 내려간다. 백두대간을 넘어 가려는 구름 때문인지 숲이 머금은 습기를 뿜어내기 때문인지 하얀 안개가 산을 덮었다. 운전하는 사람은 주의해야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겐 설렘이다. / 이다일기자

한 시간 남짓 물고기와 씨름을 하더니 어른들은 지친 표정이고 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이다. 그물로 잡아 올린 물고기를 모두 놔줘야 했기 때문이다. 젖은 옷을 입은 채로 냇가 앞 학교로 향한다. 지난 95년에 폐교된 옥계국민학교 산계분교다. 1940년부터 1천18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산골 마을이라 아이들이 없어서 폐교가 됐다. 학교에는 간식이 준비돼 있었다. 냇가에서 물고기와 씨름하느라 지칠 때였다. 감자와 옥수수로 다시 힘을 낸다. 무공해 간식을 서둘러 먹고 아이들은 또 다시 학교 마당으로 뛰어간다. 여름의 더위는 오간데 없다.

알음알음 찾아오는 옥계 해수욕장

해수욕장 / 산과 바다가 동시에 보인다. 옥계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며 찍었다. 산 너머에는 정동진이 있다. 정동진에서 옥계로 오는 길은 바닷가 드라이브로 소문난 '헌화로'를 거친다. 파도가 잔잔하면 경치가 아름답고 파도가 센 날이면 도로까지 차오르는 파도가 일품인 도로다. 헌화로에서 이어지는 금진해수욕장, 옥계해수욕장은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 이다일기자

산골에서 놀고 나니 한 잠 자고 싶은 게 어른들의 마음이건만, 아이들은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럴 때를 대비한 묘책이 있으니, 해변으로 가는 것이다. 산계리에서 물이 내려가는 길을 따라 10분정도 달리면 해수욕장이 나온다. 영동고속도로가 동해까지 이어지면서 '해맞이 휴게로'로 알려진 동네, 옥계면이다. 여름 성수기에도 옥계해수욕장은 떠들썩하지 않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알음알음 찾아오거나 몇 몇 회사의 하계휴양지로 사용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정동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깎아지른 절벽의 해안단구가 보인다. 넓은 백사장과 대비돼 더욱 멋진 풍경이다. 바로 그 너머에 옥계 해수욕장이 있다. 정동진에서 불과 차로 5분 거리에 있지만 조용하고 여유로워 가족 휴양지로 즐기기 좋다.

고기잡기 / 제 키 만한 그물을 아이가 잡았다. 어른들은 물고기를 몰아오고 있다.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산계리 쌍계산촌마을에서는 여름체험 프로그램으로 물고기잡기를 하고 있다. 필요한 장비는 모두 마을에서 제공해주니 냇물에 빠져도 좋은 옷차림이면 준비완료.

아이들은 바다로 뛰어 든다. 어른들은 백사장에 몸을 파묻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철썩이는 파도에 신이 나서 뛰다가 모래사장에 탑을 쌓는다. 산과 계곡과 바다를 하루에 모두 즐긴다. 푹푹 찌는 더위도 이곳에선 딴 나라 이야기다. 

인근에는 숨겨진 놀이 꺼리가 많다. 옥계면 낙풍천을 관리하기 위해 주민들이 타던 뗏목을 놀이로 만들었다. 20명까지 탈 수 있으니 여럿이 어울려 물위에서 수다 떨기 그만이다. 바닷바람을 막아내는 소나무도 절경이다. 오랜 세월 서로 붙어 지내다 결국 한 몸이 된 나무들이 눈에 띈다. 소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수박을 먹으면 일품이다. 산과 들을 오가며 즐기는 동안 백두대간 산 너머로 해가 진다. 파도소리, 냇물소리, 산바람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바로 이런 게 '피서'다.

한국여성수련원의 일몰 / 옥계 해변에 위치한 한국여성수련원 뒤로 해가 지고 있다. 동해바다에서 일몰을 찍는 것이 어울리지 않지만 건물이나 산과 함께 찍으면 그럴싸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한국여성수련원은 지난 2009년 개원해서 여름방학 프로그램, 교육연수프로그램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옥계해수욕장과 맞닿아 있어서 특히 여름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 이다일기자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튜브는 대기중 / 7월 중순이 지나 한참 피서철로 접어들었지만 사람들이 많지 않다. 정동진과 동해 망상 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옥계, 금진 해수욕장은 여유로운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보석 같은 곳이다. 고속도로에서 5분이면 올 수 있는데다 산과 계곡도 가까워 매일매일 새로운 놀이를 할 수 있다. 성수기에는 기업체의 단체 휴양지로 인기가 좋다. 하지만 기업체의 휴양일자만 피한다면 언제나 여유로운 해변이다. / 이다일기자

가는길/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에서 동해시 방면으로 내려간다. 옥계IC에서 나와 한라시멘트공장 방면으로 가면 산계리가 나온다. 이정표가 없고 갈림길이 많으니 인근 주민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편리하다. 옥계IC에서 나와 좌회전 하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의 금진항 방면으로 다시 좌회전하면 옥계 해수욕장 표지판이 나온다. 

관련정보/
산계리 쌍계산천마을 홈페이지를 통해 농촌체험을 할 수 있다. (http://sange.kr), 또한 코레일관광개발에서는 산계리 쌍계산촌마을과 옥계해수욕장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여름가족휴양캠프' 프로그램을 한국여성수련원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문의전화, 1544-7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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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9-08 11:20 | 최종수정 2010-12-15 17:48  

영주시에서 30리.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합류해 돌아나가는 곳. 500년 전통을 이어 살아가는 50여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 무섬마을로 찾아갔다.

2009년 1월 시작한 '소읍기행'이 88회를 맞이했다. 매주 수요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간 것이 88주째다. 연재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을은 경북 영주시 수도리, 일명 '무섬마을'로 정했다.
 

무섬마을의 상징 외나무다리 / 이다일기자

1970년대 새로운 다리가 놓이면서 외나무다리는 사라졌다. /이다일기자



1666년 반남박씨(潘南朴氏) 휘 수(諱 燧)가 이곳에 들어와 터를 닦고 집을 지었다. 이 후 예안김씨(禮安金氏) 휘 대(諱 臺)가 들어오면서 두 성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 됐다. 지금도 50여 채의 전통가옥을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이다.

무섬마을에 갈 때는 정신 차려야… 

"외부에 있던 사람이 외나무다리를 건너 들어오면 꼭 빠지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무섬마을 갈 때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외지의 때를 모두 벗어버리고 들어가야 빠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무섬마을 보존회 박종우회장(70)의 말이다. 무섬마을은 마을을 감아 도는 물길 때문에 외지와 단절됐다. 육지라고 하지만 마을 앞은 물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둘러쌌다. 풍수지리상으로 배산임수의 형태다. 산자락 끝에 자리했고 앞에는 물이 흐르기 때문에 논이나 밭을 만들 공간이 없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강 건너 30리까지 농사를 지으러 다녔다. 무섬마을에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외나무다리였다.

 

기와집과 초가집 / 무섬마을에는 50여 채의 전통가옥이 있다.낮은 담장에는 꽃과 풀이 피어나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 이다일기자


1970년대 지어진 콘크리트 다리 덕택에 외나무다리는 사라졌다가 지난 2005년 마을의 옛 모습을 복원하면서 다시 돌아왔다. 박회장은 "옛날에는 저 다리로 가마타고 시집오고 또 죽으면 상여가 저 다리로 나갔어요. 이 마을 사람들에겐 사연이 많은 다리지요"라고 말했다. 외나무다리는 여름이면 사라진다. 비가 와서 물이 많아지면 다리가 쓸려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치와 철거를 반복하는 다리다. 구조도 간단하다. 통나무를 절반으로 쪼개서 의자처럼 다리를 붙였다. 그리고 물에 박아 넣은 것이 외나무다리다. 여름이면 사라지는 다리라 농사일과는 호흡이 맞지 않는다. 비가 많이 오면 논, 밭을 둘러보러 강 건너로 가야하는데 다리가 없으니 난감했다. 마을 사람들은 물살이 약하면 헤엄쳐 건너가기도 했고 한국전쟁때는 군용 보트에 의존해서 강을 건너기도 했다. 

글 읽고 분수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

무섬마을도 여느 시골 마을처럼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올해 일흔인 박회장이 마을에서 네 번째로 젊다. 그래서 마을에는 일 할 사람이 없다. 강 건너에 포도밭이나 고추밭을 소일꺼리로 하기는 하지만 크게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다. 마을일을 공동으로 하기도 쉽지 않다. 그저 자기 집 손질이라도 잘 되면 다행이다. 하지만 방학이나 명절이 되면 얘기가 다르다. 평소 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에 손자, 손녀들이 들어온다. 박회장은 "지난여름에는 한 200명쯤 되더라고요. 여기 주민들에 아들, 딸이 놀러오면서 아이들도 같이 오니 동네가 북적북적 했어요"라고 말했다.

장작/ 집집마다 장작을 쌓아 놨다. 겨울에 장작불을 때는 집이 많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랫목이 뜨끈해서 좋다고 한다. 정작 마을에는 노인들뿐이라서 젊은 사람들이 있을 때 장작을 해 놓거나 돈을 주고 사다놔야 하는 실정이다. / 이다일기자


최근에는 관광객들도 늘어났다. 주로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같은 전통 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무섬마을도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마다 10월에 진행하는 '외나무다리 축제'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무섬마을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외나무다리와 함께 보여준다.

무섬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공부를 많이 했다. 90세가 넘은 노인들 가운데에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있다하니 학구열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주로 관직보다는 학계에 많다고 한다. 50여 채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서 현직 대학교수가 16명이라고 한다. 시인 조지훈의 처가도 이곳이다. 마을을 안내해 준 박종우 회장도 35년간 교직에 있었다.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마을에는 'ㅁ'자 형태의 기와집을 포함해 50여 채의 전통가옥이 있다. 그중에 12채가 빈집이다. 집 주인은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다. 방학이나 휴가철이면 가끔 내려와 머무르는 게 전부다. 하지만 한 집도 외지인에게 팔지 않았다. 모두 박씨 아니면 김씨 가문에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오래 동안 비어있던 집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무섬마을이 고향인 사람들이다. 도회지에 나가 생활을 하다가 수 십 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인근 안동에 가족들을 두고 홀로 들어온 노인도 있었고 서울에 아들, 딸을 두고 옛 집으로 내려온 할머니도 있었다. 400년 가까이 된 고택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그래도 고향이니까 내려왔지. 여기는 공기도 좋아서 아픈데도 낫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고향에 돌아온 소감을 얘기했다. 

아름다운한국 ‘소읍기행’ 연재가 88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그동안 한국의 아담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 1년 8개월을 달려왔다.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일군 사람들부터 천혜의 자연환경에 터전을 가꾼 사람들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버무려져 소읍기행이라는 맛있는 식탁이 차려졌다. 

소읍기행은 분명 마을이야기였다. 그러나 환경이 아닌 ‘사람’이 그 주인공이 됐다. ‘어디에서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전해준 소읍기행의 주인공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김위진 가옥 / 'ㅁ'자형 기와집으로 19세기 말에 건립됐다. 하지만 옛날 형식을 그대로 유지해 가치가 높다. / 이다일기자

지붕위의 박 / 맑은 하늘 아래, 초가지붕 위로 박이 열렸다. 기와 담장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정겹다. 옛날 박이 열려 큰 복을 얻었다는 흥부전의 한 대목이 생각나는 풍경이다. / 이다일기자

만죽재고택/ 무섬마을에 제일 처음 자리 잡은 고택이다. 반남 박씨 휘 수(1641~1729)가 마을 서편 강 건너 머럼에 거주하다가 현종 7년(1666년)에 이곳으로 들어와 지은 집이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며 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 이다일기자

만죽재고택/ 무섬마을에 제일 처음 자리 잡은 고택이다. 반남 박씨 휘 수(1641~1729)가 마을 서편 강 건너 머럼에 거주하다가 현종 7년(1666년)에 이곳으로 들어와 지은 집이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며 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 이다일기자

해우당고택/ 선성 김씨 입향조 김대의 셋째집 손자 영각이 1856년에 건립한 주택이다.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ㅁ'자형 가옥이며 무섬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집이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해우당의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 이다일기자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들어가면 된다. 서울에서 대략 1시간 50분 거리다. 동서울터미널이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영주시까지 하루 26회 버스가 운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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