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5-12 10:26 | 최종수정 2010-05-12 10:36 기사원문

녹차밭과 삼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이다일기자)

전라남도 보성군 도강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차를 생산한다. 남해바다와 영천저수지에서 적당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차 재배의 최적지로 꼽히고 있다.

올 해 첫 녹차 잎을 따고 있다. (이다일기자)

보성의 차에 대한 이야기는 세종실록지리지 토공조를 비롯해 여러 문헌에서 등장한다. 가장 최근에 이어진 차 재배에 대한 기록은 1939년 일제강점기의 경성화학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야산 30ha에 차 종자를 파종해 차를 재배 했는데 일제강점기가 끝나면서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한다. 1957년에 들어서 대한다업이 경성화학의 야산을 인수 다시 녹차 재배에 나선다. 이어 1962년에는 본격적으로 차 가공에 나섰고 재배면적도 50ha로 확대했다. 대한다업이 위치한 인근 지역인 영천리 도강마을에서 차 재배를 시작한 것도 그때 쯤 이었다. 

녹차밭 차 밭은 수분공급이 원활하고 배수가 잘 되는 곳에 위치해야 한다. 보성의 다원들은 대부분 저수지 인근에 있으며 비탈진 산에 밭고랑처럼 줄지어 있다. 4월말에서 5월이면 처음 올라온 찻잎을 따게 되는 이것을 최고로 치며 100% 수작업으로 수확한다. (이다일기자)

호랑이가 나오던 산비탈에 차밭이 들어서다

수확 찻잎은 강한 불에 덖고 손으로 비빈다. 좀 더 불을 약하게 두 차례 더 덖고 비빈 뒤에 건조시키면 차가 완성된다. 녹차는 수확하고 이틀이내 모든 작업이 끝내야 한다. (이다일기자)

보성읍에서 남쪽으로 차로 10분정도 달리면 녹차밭으로 유명한 대한다원이 나온다. 매년 다향제가 열리는 곳도 이곳이다. 다시 남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언덕, 봇재를 넘으면 바로 영천리 도강마을 이다. 이 마을에서 4대째 살아온 이전행 할아버지(78)에 따르면 도강마을은 가끔 호랑이도 출몰하는 첩첩산중이었다. "여그서 보성가려면 산길을 넘었제, 봇재라고, 나가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재를 넘는데 호랭이를 만났어. 호랭이가 사람을 보내주는 호랭이가 있고 해치는 호랭이가 있어. 그란데 가만가만 오니까 내가 인자 잠방잠방 갔단 말이여. 근데 요놈이 금새 와서 앞에 앉아있고, 또 금새 와서 앞에 앉아 있는 거제. 그것이 내를 인제 해치지 않고 보내준 거시여." 할아버지는 60년 전 이야기를 해주시며 마을의 차 재배에 대해서도 말씀을 이어갔다. "옛날에는 전부 농사지었지. 일부는 저기 바닷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근데 1968년부턴가 요 옆에 다원에서 차 재배를 배워다가 산을 깎아서 밭을 만들 었제. 그것이 요로코롬 된 거랑께." 할아버지의 얘기에 따르면 지금의 대한다원은 진득골, 다향제를 하는 곳은 텃골, 거기서 봇재를 넘어 남쪽으로 오면 이곳 도강마을이라고 했다. 지금은 마을 주민 대부분이 차를 재배한다. 산등성이 마다 가득한 차 밭은 보성 녹차를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풍경이다.

도강마을의 찻잎 수확 보성군 영천리 도강마을은 주변을 둘러싼 산들이 대부분 녹차밭이다. 가장 좋다고 알려진 첫 잎을 따기 위해서는 모자라는 일손을 외지에서 빌려온다. 멀리 영천 저수지와 도강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차 밭에서 한 아낙네가 찻잎을 따고 있다. (이다일기자)

차밭이 잘되는 조건

기념촬영 보성의 차밭은 관광지로 인기가 높다. 하루 수 십대씩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1km 남짓 걸으면 차밭 정상을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선 사람들은 카메라, 핸드폰을 꺼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다일기자)

보성읍내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다 만나는 영천리는 산비탈에 자리 잡은 차 밭이 장관이다. 봇재를 넘는 도로가에는 차 밭의 풍광을 감상하기 좋게 전망대까지 만들어져 있다. 굽이굽이 산허리를 감싸는 차밭은 봄날의 햇살을 받으며 반짝반짝 빛난다. 또 아침저녁이면 안개가 끼면서 몽롱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어 낸다. 

바다전망대 대한다원의 정상에 있는 바다전망대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난다. 산책길처럼 쉽게 오를 수 있는데다 아래에선 볼 수 없었던 차 밭의 울퉁불퉁한 모습이 더욱 눈에 잘 들어온다. (이다일기자)

전국 각지를 비롯해 중국, 일본까지 돌아보며 23년째 차 재배를 해온 조현곤씨는 도강마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천저수지가 마을 바로 앞에 있어 차밭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젖줄 역할을 하고 있고 안개가 많이 끼는 기후 덕택에 수분이 충분히 공급됩니다. 그리고 배수가 잘 되는 땅까지 합쳐지면서 차 재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역입니다." 좋은 환경에 매료된 조씨는 7년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고 차 재배에 나섰다. 마침 취재를 갔던 날은 올 해 첫 수확한 차를 덖고 있었다. "올 해 차가 참 잘 됐어요. 어린잎을 일장일기를 따서 상처가 나지 않게 만들었어요. 찻잎 만드는 건 기술이 아니라 정성이지요. 차 대회에 내 보려고 조심조심 덖는 중이에요"

찻잎은 정성 차는 기술이 아니라 정성으로 만들어진다는 조현곤씨가 올해 첫 수확한 잎으로 만든 차를 선보이고 있다. 잎사귀를 비벼 말리면서도 행여 상처라도 날까봐 조심스런 움직임이다. 그는 보성의 입지와 기후조건이 차를 만드는데 가장 좋은 곳이라 손꼽았다. (이다일기자)

녹차밭 따라 사진 찍기 좋은 곳

도강마을 보성의 영천리 도강마을은 영천저수지와 남해바다, 그리고 배수가 좋은 산으로 인해 차 재배에 적격지로 꼽힌다. 차 밭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은 조그만 논을 빼놓고 대부분 차 밭이다. 최근에는 중국산 저가 차와 경쟁하기 위해 친환경 농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다일기자)



계절의 여왕 5월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사진이 있다. 바로 그 해의 첫 찻잎을 따는 풍경이다. 희뿌연 안개 속에 푸른 차 밭이 펼쳐지고 붉은 바구니를 옆에 낀 아낙들이 차를 따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사진 동호회를 중심으로 차 밭의 풍경을 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보성은 사진가들이 말하는 일명 '성지순례' 코스에 들어있다. 보성의 차 밭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대한다원 제1농장은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낮은 산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차 밭 구경과 산림욕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차밭을 만들면서 방풍림으로 심은 삼나무가 숲을 이뤘기 때문이다. 좀 더 자연스럽게 마을 주민들이 일하는 모습을 담으려면 봇재를 넘어 18번 국도를 타고 영천리로 가면 된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는 넓게 펼쳐진 차 밭과 영천 저수지까지 어우러진 풍경을 담을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이 발걸음은 거의 없지만 드라마나 CF를 통해 알려진 곳도 있다. 18번국도로 계속 달려 회천면에서 우회전하면 회령리가 나온다. 이곳에는 대한다원 제2농장이 있다. 넓게 펼쳐진 차 밭과 멀리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이다. 차 밭을 찍으려면 이른 새벽 출발해야 한다. 동이 트고 물안개가 끼었을 때가 가장 사진이 잘 나온다. 안개 사이로 푸른 찻잎이 반짝거리면 풍경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느라 셔터 누르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가는길

버스는 서울에서 하루 두 번 보성까지 운행된다. (8시10분, 15시10분), 광주, 순천, 목포에서는 30~40분 간격으로 보성까지 버스가 다닌다. 열차는 서울에서 보성까지 1회 운행되며 광주, 순천에서 보성역으로 하루 8회 운행한다. 승용차로는 호남고속도로 동광주IC에서 광주 제2순환도로-화순-29번국도를 지나 보성읍으로 오면 된다. 보성읍에서는 18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대한다원, 영천리를 지날 수 있다.

보성녹차대축제(5월 초) http://dahyang.boseong.go.kr

보성군청 http://www.boseong.go.kr

보성군청 문화관광과 061-850-5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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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6-09 10:32 기사원문

1967년, 정부는 서울 도심의 개발을 위해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용산, 남대문, 청계천에 살던 사람들이 바로 이곳 '백사마을'이라 불리는,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로 옮겨와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백사마을 골목길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이다일기자)


40년 전 이야기를 해주시는 동네 할머니들. (이다일기자)

"학교도 다니기 전 어릴 때에요. 아버지가 생일이라고 머리맡에 축구공을 사다 놓으셨더라고요. 너무 기뻐서 당장 들고 문 밖으로 나가서 힘껏 찼어요. 데굴데굴 산동네를 굴러 내려간 공은 하수도로 쏙 들어갔고 동생하고 하수도 끝에서 온종일 공이 나오길 기다렸지만 결국 못 찾았어요." 어린 시절을 중계동 104번지에서 지낸 임상배(34)씨의 기억이다. 불암산 자락에 자리한 산동네. 어머니는 물을 길어오셨고 아버지는 마치 맥가이버처럼 집을 고치셨다. 지금은 모두 외지로 나가 살림을 차렸지만 어릴 적 그 동네는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골목 속의 집 104번지에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이 많다. 옛날부터 나눠진 골목들은 사람 한명 겨우 지나갈 좁은 길들로 이뤄졌다. 언덕 뒤에 집이 있고 골목을 돌아서면 집이 나온다. 그래도 개성 넘치는 것이 어느 집에서도 똑같은 대문을 찾아볼 수 없다. 골목을 뛰어다녔을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다일기자)

소위 백사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중계동 104번지는 대한민국의 개발사에 그늘처럼 남아 있다. 1967년부터 정부는 개발을 이유로 강제 이주를 추진했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바로 이곳 백사마을에 마련해줬다. 당시 용산, 청계천, 안암동의 판자촌에서 살던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주대책으로 해준 것은 30평 남짓한 천막이 전부. 그나마 분필로 넷으로 선을 그어 네 가구가 살도록 했다. 천막 한 칸을 넷으로 나눴으니 한집에 8평 남짓. 그래서 백사마을의 집들은 8평부터 시작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사 간 집을 사들여서 합치고, 남는 땅에 집을 지으면서 이곳의 주택은 대부분 20평 남짓한 구조로 변경됐다. 

등산로 104번지 달동네의 꼭대기는 노원구 공릉동의 산과 맞닿았다. '한국전력 뒷산'으로 불리는 산에는 등산로가 꾸며져 있어 주민들의 산책길로 활용되고 있다. 옛날에는 들짐승이 많아 혼자 다니기 위험한 산, 전쟁으로 인해 벌거숭이가 된 산이었지만 지금은 울창하게 숲을 이뤘다. (이다일기자)

늑대가 울던 산골동네

중계동 백사마을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노원구 중계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90년대 중반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배밭과 논이었던 땅이 모두 아파트로 변했다. 지금은 학교와 학원이 많기로 소문난 동네가 됐다. 백사마을 역시 주변의 발전에 따라 재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이다일기자)

104번지가 처음 생길 때 이사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박해숙 할머니(76)는 마치 즐거운 옛날 얘기 하듯 40년전의 추억을 꺼내 놓는다. "내 아들이 50살이니까 정확히 44년 됐지. 여기 6통에서 내가 제일 먼저 집을 지었어요. 밤에 물 뜨러 가면 '그르릉~'하면서 늑대가 뒤를 따라와요. 깜짝 놀라 뛰어 들어오면 시어머니가 남자가 치근대는 줄 알고 '언놈이 붙잡던가?' 그랬어요. 하하하. 산 속에 갑자기 사람들이 이사 왔으니 늑대가 먹을 걸 찾아 들어왔지요. 그땐 그랬어요." 박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땔감도 없어서 산에 있는 나뭇가지, 잡풀까지 모두 긁어서 땠다고 한다. 그마저도 산을 지키는 사람한테 붙잡히면 모두 두고 내려와야 했다. 용산에서 이사 왔다는 다른 할머니는 "윗목에 물이 얼고 걸레도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겨울을 보냈다"며 "연탄 한 장에 6원 50전하던 시절인데 그걸 아끼느라 방이 얼어붙었어요."라고 말했다. 

고추농사 집 앞에 고추, 호박, 상추를 심어놓은 담벼락이 눈에 띈다. 때마침 물을 주던 할머니는 "혼자 먹고 남을 만큼 수확이 잘 된다."며 농사 자랑을 했다. 작은 고추와 호박잎이 담벼락을 따라 자라고 있다. (이다일기자)

워낙 산골이라 학교 가는 길도 멀고 험했다. '토끼길'이라고 부르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산을 넘으면 지금의 하계동 '연촌초등학교'가 나왔다. 거기까지 아이들은 모두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이 길은 짐승이 많아 남자고 여자고 혼자서는 다니지 못하는 길이었다. 박 할머니는 "지금이야 중계동이 학원도 많고 교통도 좋지요. 그때는 오솔길, 진흙길뿐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심지어 장마철이 되면 부모들은 난리가 났다. 줄줄이 물이 세는 집을 수리해야 했고 학교에 간 아이들이 행여 물에 떠내려 갈까봐 아이들 데리러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산골인데도 기반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서 장마철이면 물이 차는 곳이 수두룩했다.

교회 백사마을 아이들에게 교회는 동네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었다. 교회 앞마당은 축구장이고 야구장이었다. 언덕배기 산동네에 있는 교회라 한쪽은 철창으로 공이 떨어지지 않게 막아놨지만 아이들이 놀다보면 철창을 넘어 아랫집으로 공이 날아가기 일쑤였다. (이다일기자)

'육여사국수'를 먹어 봤어요?

계단은 몇 개? 백사마을에서 태어난 임상배씨는 "동생과 함께 이 계단이 몇 개인지 세어보는 놀이를 했다."며 "어릴 때는 높고 커 보였는데 이제 와서 보니 이렇게 작은 계단과 골목인게 새삼스럽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다일기자)

방앗간 한편에 할머니들이 모였다. 겉으로 봐서는 영업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오래된 간판과 제분기가 방앗간임을 추측케 한다. 40년전 이야기를 부탁했더니 끝없이 이어질 기세다. 그러다 뜬금없이 '육여사국수'이야기가 나왔다. 매일 점심이면 '육여사국수'를 받으러 가는 게 일이라고 했다. "냄비하나 들고 그거 타러 가면 국수에 노란 무 하나 얹어서 줬어요. 그걸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나, 집에 가져와서 김치랑 해서 애들이랑 같이 먹었지요." 당시 104번지에서는 정부에서 밀가루 국수를 해서 나눠줬는데 이를 두고 주민들이 '육여사국수'라고 이름을 붙였다. 당시가 박정희 대통령시절이라 육영수여사의 성을 딴 것이다. 

갈림길 백사마을 입구 갈림길이다. 슈퍼마켓과 비디오 대여점이 사이좋게 붙어있다. 이곳의 건물들은 대부분 옛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고 작은 가게들도 옛 모습 그대로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이다일기자)

당시나 지금이나 아이들 입맛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똑같은 국수를 계속 먹으니 아이들이 질려했다. 한 할머니는 "국수를 계속 주니 새끼들이 안먹을라케. 그래서 그거 타다가 채반에 말려서 기름에 튀겼지. 그래서 설탕 쳐주면 잘 먹었어. 그래 살았어요."라며 먹을 것 귀하던 시절을 회상했다. 

산 따라 지어진 집 초창기 마을에는 먼저 들어온 사람에게 산 아래쪽 터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주해 온 지역에 따라 삼삼오오 모여서 살기 시작했고 청계천에서 온 사람들이 사는 곳, 남대문에서 온 사람들이 사는 곳이 조금씩 나눠서 형성됐다. 지금은 서로 집을 팔고 사고 이사를 다녀서 예전 같은 구분은 사라졌다. (이다일기자)

개발과 재개발로 이어진 한평생



중계동 104번지 할머니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우린 별거 다 겪어본 세대에요. 해방에 전쟁도 겪었지, 거기다 개발한다고 이주해서 여기로 옮겨왔고 40년을 산동네를 오르내리며 살았지요." 지금 마을에는 대부분 노인들만 남아있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릴 적 추억의 동네로 104번지를 기억하고 있다. 오래 만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쉽게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이유가 또 있다. 개발이 되지 않아 옛날 모습을 거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40년전 지어진 집들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고 동네 입구 가게부터 언덕 중턱에 자리한 교회까지 옛 모습 그대로다. 어릴 적 뛰어놀던 계단도 그대로 있고 물탱크가 있던 뒷산도 등산로로 조금 정비됐을 뿐 변한 것이 없다. 다만 달라진 것은 어릴 적 커 보이던 건물과 마당이 지금은 깜짝 놀랄 만큼 작아 보인다는 것.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며 드라마를 비롯해 많은 매체에 노출되던 104번지도 재개발을 직면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추진되던 재개발이 갖은 사연 속에서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 이곳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되던 안되던 빨리 결정이나 났으면 좋겠어. 집을 고치지도 못하고 사니까 말이지. 나 죽기 전에 아파트 기둥 올라가는 거나 보려나 모르겠네."라고 말했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가는길

지하철 4호선, 7호선 노원역, 1호선 창동역에서 1142번 버스로 갈아타고 종점까지 가면 된다. 버스 종점이 104번지 시작이며 큰 은행나무가 서 있어 찾기 쉽다. 중계동 104번지 백사마을이 사진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무분별한 촬영으로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 주민들의 생활을 존중하며 옛 모습을 담는 노력이 필요하다. 1,200여 가구가 모여 있는 넓은 지역이므로 한 바퀴 둘러보는데 두어 시간은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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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6-16 13:11 기사원문

느림에서 찾는 참다운 삶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시작됐다. 세계 17개국, 123개 도시가 가입된 슬로시티에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창평등 5곳이 가입됐다.

느릿느릿 소달구지를 타고 마을을 구경한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발효를 통한 전통음식은 슬로시티의 상징이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마을 입구에선 시끌벅적 장터가 열렸다. 노인들은 나물과 채소를 들고 나와 자리 잡았고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할아버지는 가훈을 써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마중물을 넣고 물을 길어 올리는 체험을 하고 있고, 한편에선 떡방아를 쳐 보는 파란눈의 외국인도 있다. 

슬로시티의 상징인 달팽이에서 이름을 따온 '달팽이 시장'이 열리면 온 마을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이 지난 2007년 12월 1일 '치타슬로 (Cittaslow) 국제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인정받으면서 일어난 변화다.

소풍 유치원 아이들이 창평 슬로시티로 소풍을 왔다. 배추가 심어진 마당을 지나 개량 한복을 입고 돌담길을 걷는다. 햄버거와 피자를 찾는 아이들에겐 슬로시티의 슬로푸드가 어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슬로시티는 사람 중심의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1999년 시작됐다. 지금까지 세계 17개국 123개 도시가 가입했고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의 창평을 비롯해 완도, 장흥, 하동, 예산이 슬로시티로 인정받았다.

슬로시티로 인정받는 조건은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전통적인 수공업과 조리법이 보존되어 있어야 하고 고유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자연친화적인 농업을 사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인간중심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 

남극루 마을 논 가운데 세워진 남극루. 1830년대에 장흥인 고광일을 비롯한 30인에 의해 지어졌다. 평지에 건립된 2층 누각 형태로 다른 건물에 비해 특이성을 갖고 있다. 규모 또한 웅장해서 향토유형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됐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풍족한 곡창지대

담양지역, 특히 창평면은 예로부터 농사짓기 좋은 곡창지대였다. 이곳이 풍요로운 고장임을 보여주는 것은 지금 남아 있는 옛 가옥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세곳에서 물길이 모인다는 뜻의 '삼지내 마을', 창평의 작은 마을에 모여 있는 고택들은 넉넉한 크기의 곳간을 갖고 있다. 곳간에는 쌀이 가득했고 겨울이면 쌀을 이용해 한과를 만들고 엿을 만들어 먹었다. 곳간이 가득 차니 인심도 후하고 문화도 발달했다.

돌담 모양이 제각각인 돌을 쌓고 남는 공간은 황토 흙으로 채웠다. 그 위에는 기와를 얹었고 사이사이에서는 담쟁이 넝쿨이 자라고 있다. 마을의 돌담길 산책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이다일기자)

이 마을의 춘강 고정주 고택은 창평 지역 근대교육의 효시인 영학숙과 창흥의숙의 모태가 되기도 했고, 한말 민족운동의 근원지로 현대사적 의미도 갖고 있다. 마을의 남쪽에는 월봉산이 있는데 멀리서 보면 크지도 높지도 않은 완만한 산세를 갖고 있다. 이 산에는 상월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곳은 고려 경종 1년(916)에 창건된 대자암의 절터다. 추제 김자수가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상월정을 창건했고 손자사위 성풍 이씨 덕봉, 이경이 사위 학봉 고인후에게 양도해주면서 김, 이, 고씨의 3개 성씨가 이곳에서 연을 맺게 된다. 바로 여기서 창흥의숙을 연 춘강 고정주, 신학문을 배운 고하 송진우, 가인 김병로, 인촌 김성수, 취봉 고재호, 심강 고재욱 그리고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한기, 고재필 선생이 공부를 한 곳이다. 월봉산에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고 하니 문화의 고장으로 손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돌담길 따라 걷는 슬로시티의 매력

춘강 고정주고택 춘강 고정주(1863~1933)의 고택이며 창평지역 근대교육의 효시인 영학숙과 창흥의숙의 모태가 된 곳이다. 입구의 담장은 곧게 뚫리지 않아 대문을 열어놓아도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양쪽 지붕보다 조금 높게 올라선 솟을대문을 비롯해 전형적인 부농의 한옥 모습을 보여준다. (이다일기자)

슬로시티에 왔으니 천천히 둘러보기로 결심했건만 급한 현대인들에게 '느린것' 만큼 힘든 일도 없는가보다. 느긋한 걸음으로 둘러봐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면사무소에서는 자전거를 빌려주고 있었다. 군데군데 포장도 되지 않은 돌담길을 자전거로 달려보니 기분이 색다르다. 걸을 때 보다 조금 높아진 눈높이는 담벼락 건너편이 훤히 들여다보여 새로운 시계를 선사한다.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고택으로 들어섰다. 골목 초입에서는 집의 대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높은 담을 쌓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구조가 엿보인다. 옛 선비들은 사람이 불쑥 나타나면 상대방이 놀라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문을 들어섰다고 한다. 

담장보다 높게 올라선 솟을대문을 지나자 누런 나무빛이 뚜렷한 고택이 나타난다. 한눈에 봐도 양반집이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큼직한 곳간채와 문 옆에 붙은 문간채까지 제대로 갖춘 한옥이다. 사랑채와 안채는 서로 보이지 않도록 집 안에 담벼락을 두었다. 듬성듬성 돌이 박혀있는, 논의 흙을 가져다 바른 전통양식의 담벼락이다. 

달팽이 시장 매월 둘째 토요일. 아이들의 학교가 쉬는 '놀토'가 되면 슬로시티에는 장터가 열린다. 슬로시티의 상징인 '달팽이'를 본따 일명 '달팽이 시장'이라고 부른다. 인근 주민들이 가지고 나온 나물과 채소들, 담양지방의 대나무로 만든 각종 물건들이 시장에 늘어선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이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부농의 양반가옥이다. 예사 마을에선 보기 힘든 큰 집 너 댓 채가 아직도 남아있으니 창평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슬로시티'로 유명세를 타서 인지 마을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간혹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고 주민들은 얘기한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무언가 큰 기대를 하고 왔기 때문이라는 것. 슬로시티의 뜻은 전통을 지키며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마을 주민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데 왜 길을 넓히고 집을 수리하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그냥 옛 모습을 지켜 나가는 것이 슬로시티에 어울리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음식이야 말로 슬로시티의 매력

부침개와 막걸리 달팽이 시장이 열리면 부침개는 공짜다. 단, 직접 부침개를 부쳐야 한다는 단서가 있지만 말이다. 면사무소 앞에 마련된 마당에서 부침개를 부쳐 막걸리 한주전자를 마시면 마을을 둘러보느라 쌓인 피로가 말끔하게 사라진다. 멀리 서울에서 창평을 찾아왔다는 젊은이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이다일기자)



슬로시티가 갖춰야 할 조건에는 전통문화와 가옥 말고도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음식이다. 전통방식으로 만든 음식이 있어야 하고 지금도 그 방식을 유지하고 계승해야 한다. 창평면 삼지천 마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전통방식을 계승하는 사람들이 있다. 창평의 슬로푸드로 알려진 것은 엿, 한과, 장류다. 담벼락을 따라 걷다보면 대문에는 '창평 엿 판매'같은 간판이 붙어있다. 한집 건너마다 있을 정도다. 이곳을 안내해준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쌀이 풍족하니 겨울에 엿과 한과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국을 통틀어 35명에 불과한 '식품명인' 가운데 4명이 이곳 담양에서 배출됐다. 묵은 간장에 해마다 햇간장을 부어 만든 '진장'의 명인 기순도 명인을 비롯해 창평 쌀엿의 유영군 명인, 대잎술의 양대수 명인, 엿강정의 박순애 명인이 이곳에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도 숯공예의 양정자, 천연염색의 김명희, 전통약다식의 이순자, 한과의 안복자씨가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월봉산 마을 남쪽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이 바로 '월봉산'이다. 사진의 가운데 두개의 봉우리가 겹쳐있는 곳이다. 산에는 상월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했다. 지금도 고시공부를 위해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이다일기자)

가는길

광주광역시에서 승용차로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호남고속도로 창평IC에서 나와 창평 읍내로 들어서면 우측 면사무소 뒷편이 슬로시티 삼지천 마을이다. 내비게이션에는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창평리 82-2 (창평면사무소)'를 입력하면 된다. 버스로 찾아올 때는 광주광역시를 거치는 것이 편리하다. 광주 문화동 버스터미널에서 창평방면 버스가 2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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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7-14 10:48 기사원문


화성 백미리마을은 산과 들 그리고 갯벌까지 갖췄다. 푸른 논과 반짝거리는 흙빛의 갯벌에는 일 년 내내 사람들이 찾아온다. 

백미리 갯벌 / 물이 빠지면 백미리의 갯벌이 드러난다. 눈에서 보이는 만큼 멀리까지 물이 빠져 나가면 모두 갯벌 체험장이 된다. 평일에는 500~600명, 주말에는 1천여 명이 넘는 체험객이 몰려오지만 구역을 지정해 돌아가면서 체험을 진행하기 때문에 언제나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 / 이다일기자


농업과 어업/ 백미리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모두 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논을 일구고 물이 빠지는 시간이 되면 갯벌에 나가 바지락을 캔다. 배를 타고 멀리까지 고기를 잡는 어업이라기 보다는 갯벌에서 나오는 조개와 낙지가 주산물이다. / 이다일기자

구리섬, 밸미, 당너머…. 이름까지 정겹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남짓 떨어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의 백미리의 옛 이름들이다. 굴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라 하여 '굴섬'이라 불리던 것이 '구리섬'이 되었고, 마치 뱀이 꼬리를 사리고 있는 듯하다하여 붙은 이름이 '밸미'다. '당너머'는 구리섬 동남쪽의 산 너머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니 정겨운 이름들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이 갯벌에서 잡은 바지락을 보여주고 있다. / 이다일기자

서울에서 가까운 갯벌 체험마을 

마을입구/ 백미리 마을입구는 의외로 소박하다. 차가 마주 오면 갓길로 비켜서야 하는 좁은 길을 따라 마을이 들어섰는데도 바다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가 가득한 낮은 언덕을 돌아 들어가면 드디어 바닷가가 나온다. 마을은 바다와 산과 들을 모두 갖고 있다. / 이다일기자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313번 지방도를 따라 화성시로 들어섰다. 최근에 공장지대가 화성으로 많이 이주하면서 화성은 공업도시가 됐다. 곧고 넓게 뚫린 4차로 길에는 심심치 않게 대형 트럭이 달린다. 분위기로 봐서는 휴가나 놀이와 거리가 먼 동네다. 하지만 화성시청을 지나 318번 지방도로 갈아타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한적한 농촌마을의 풍경이 펼쳐진다. 낮은 산과 푸른 논이 어우러져 있다. 

갯벌 입구/ 갯벌의 입구엔 파랗고 빨간 기둥이 세워져 있다. 원래는 군사지역으로 민간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마을의 갯벌 사업과 어업을 위해 문을 열었다. 양쪽으로 넓게 펼쳐진 갯벌에는 어업을 위한 차량만 드나들 수 있고 체험객들은 걸어서 갯벌로 들어가거나 갯벌마차를 이용하면 된다. / 이다일기자



화성의 특징은 또 하나 있다. 바로 서울에서 가까운 바닷가라는 것이다. 전곡항에서는 요트축제가 열리고 제부도는 물이 빠질 때를 기다려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화성시에서 조금 색다른 체험마을을 찾아 나섰다. 내비게이션으로 '백미리체험마을'을 입력하고 길을 달렸다. 불과 1km앞에 갯벌을 갖춘 체험마을이 있다는데 주변은 아직도 논밭과 좁은 길밖에 없다. 차 한대 겨우 지나는 좁은 농로를 따라 들어서니 커다란 표지판이 생뚱맞게 서 있다. 길은 더 좁아졌다. 낮은 산허리를 돌아서니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반전이 숨어 있었다. 산 너머에 숨어있던 바다가 단번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치형의 표지판에 '백미리체험마을'이라 쓰여 있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찾아본 바로 그 곳이다.

still2.jpg/ 입구에서 갯벌 한 가운데까지 운행하는 갯벌마차. / 이다일기자

농업과 어업이 공존 하는 마을

공동운영/ 마을에서는 여러 가지 사업을 공동으로 운영한다. 어촌계에서 공동 수산물 가공장을 운영해 백미리 김을 만들고 있으며 체험객을 위한 식당도 공동으로 운영한다. 직접 잡은 바지락으로 끓이는 칼국수가 일품이다. 또한 숙박 시설도 마을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다. / 이다일기자

백미리는 논농사와 어업을 절반씩 하고 있다. 100가구가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아침에는 논에 나가 농사를 짓는다. 그러다가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이 되면 갯벌로 나가 바지락, 낙지를 비롯한 해산물을 수확한다. 최근에는 '체험마을'이라는 프로그램을 더했다. 2007년부터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된 후 마을 공동사업을 추진했다. 성과는 주민들도 놀랄 정도여서 어촌마을 주민들 소득이 무려 5배나 급상승했다. 

망둥어낚시체험/ 아이들이 갯벌에서 조개를 잡는데 열중한다면 어른들은 망둥어낚시에 여념이 없다. 갯벌의 가장자리까지 나가서 하는 망둥어 낚시에는 물이 빠지기가 무섭게 강태공들이 자리를 잡는다. 특히 물이 다시 들어올 때 망둥어가 잘 잡히는데 밀물 때는 위험하므로 아쉽지만 자리를 접어야 한다. / 백미리마을 제공

백미리는 바지락으로 이름난 마을이었다. 어촌계장 김호연씨에 따르면 옛날에는 바지락만 잡아도 대기업 다니는 사람 부럽지 않게 소득이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인근 지역에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바다가 변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갯벌에서 바지락을 채취하던 주민들의 수확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위기를 극복하고자 백미리는 '체험마을'이라는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마을 공동으로 수산물 가공센터를 운영해 김과 미역 등 해산물을 가공한다. 농업과 어업을 모두 하지만 마을은 어촌계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젊은 어촌계장이 발 벗고 나서면서 마을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맨손 물고기잡기체험 / 갯벌에서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밀물에 들어온 물고기를 어망으로 가뒀다가 썰물에 손으로 잡는 '맨손물고기잡기체험'도 인기 있는 행사 중에 하나다. 발목까지 빠지는 갯벌에서 물고기를 쫓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 백미리마을 제공

갯벌체험으로 큰 인기

갯벌놀이 /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고 들어오던 아이들은 갯벌에 오면 신이난다. 옷 더러워진다는 엄마의 잔소리도 이날만은 예외다. 호미로 땅을 파고 바지락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가만히 갯벌 속을 살펴보고 있으면 소라껍질을 짊어지고 가는 게를 비롯해 작은 생물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좋다. / 이다일기자

백미리의 갯벌체험은 인기가 좋다. 특히 기업과 학교, 학원을 중심으로 한 단체손님들의 방문이 큰 몫을 차지한다. 백미리를 찾은 한 체험객은 "서울에서 가까워서 자주 찾아온다."며 "갯벌에서 조개도 잡고 낚시도 하는 것을 아이들이 좋아해서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갯벌에서 온통 흙투성이가 된다. 손에는 바지락, 게, 소라를 잡은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있다. 스스로 호미질을 해서 잡기도 하고 엄마, 아빠 옆에서 이런저런 참견을 하기도 한다. 

갯벌체험에는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다. 마을에서 호미에 장화까지 챙겨준다. 먼 갯벌까지 걸어가기 힘든 사람들은 트랙터를 개조한 '갯벌마차'를 타고 가면 된다. 한참을 갯벌에서 놀다보면 아이들은 온통 흙투성이가 된다. 어른들도 흙 안 묻히려 조심해도 쉽지 않다. 체험장 입구에는 간이 세면대가 마련 되서 흙을 씻을 수 있다. 아이들은 세면대에서 씻기 보다는 아예 체험장 앞에 마련된 물놀이 시설로 뛰어든다. 미끄럼틀과 작은 풀장까지 있어서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비봉IC에서 서신방면으로 우회전한다. 마도면을 지나 309번 지방도를 타고 궁평리 방면으로 들어선다. 한맥중공업에서 우회전해서 작은 삼거리가 나오면 다시 우회전한다. 이후에는 '백미리 체험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대중교통으로는 금정역에서 서신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백미리까지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택시 요금은 6천원정도. 백미리까지 버스는 자주 다니지 않는다. 마을버스가 하루 4번 출발하니 시간표를 보고 이용하는 것이 좋다.

갯벌체험을 위해서는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에 맞춰가야 한다. 매일 시간이 바뀌므로 국토해양부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http://www.khoa.go.kr)나 백미리마을 홈페이지http://baekmiri.invil.org/)를 통해 미리 정보를 얻는 게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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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8-04 10:20 | 최종수정 2010-12-15 17:48 기사원문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태백산맥의 동쪽. 높은 산에서 바다로 흘러내리는 지형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구름도 지쳐 쉬어 가는 산. 그 너머 동쪽에는 즐거운 여름이 있다.

산계천 계곡에서 물고기잡기 체험을 하고 있다. / 이다일기자


백두산에서 동쪽 해안을 따라 태백산을 거치고 남쪽의 지리산까지 이르는 백두대간.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명산을 품고 있다. 명산의 갈래마다 이름난 관광지가 늘어서 있다. 그 중 강릉은 사계절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강릉은 서울의 1.72배에 이르는 면적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이 산이다. 바다와 산 사이에 마을이 있고 굽이굽이 골짜기는 여름 휴양지로 인기다. 

시원한 산바람, 즐거운 바다바람 

낙풍천의 땟목타기 체험. 왁자지껄 떠들기 좋은 놀이다. / 이다일기자

더위를 피해 떠나는 시원한 곳 피서지. 대한민국에서 피서지 찾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피서지로 첫 번째 꼽는 지역은 역시 강원도다. 평균고도가 높아 기온이 낮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차를 타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면 시원함이 느껴진다. 문막을 지나 평창에 이르니 30도를 넘던 기온이 23도로 뚝 떨어졌다. 터널 두세 개를 더 지나니 강원도 산 속으로 들어선다. 산 능선으로는 구름이 걸려있다. 푸른 나무 사이사이에서는 안개가 피어올라 구름과 만난다.



아직은 길목이다. 잠시 시원한 산 공기를 맛보고 오늘의 목적지 강릉으로 향했다. 대관령 터널에 이어지는 내리막을 달리니 바다 내음과 함께 활기찬 여름동네가 펼쳐진다. 백두대간 대관령에서 강릉시내까지는 불과 차로 15분. 짧은 구간에 이름난 명산들이 즐비해 풍경이 그만이다. 그만큼 여름휴가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풀냄새 가득한 산을 걸어도 좋고, 산 따라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가도 좋다. 온 몸을 풍덩 던져야 할 때는 백사장이 펼쳐진 바닷가로 가면 된다.

그네 / 산계리 폐교는 농촌체험마을의 중심점이다. 1995년 폐교가 됐지만 마을 주민들이 꾸준히 관리하며 녹색농촌체험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무에 달린 그네를 탄다. 언니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동생의 모습도 보인다. / 이다일기자

강릉의 산 속 마을 '산계리'

백두대간 따라 피서를 즐겨보기엔 '산계리'가 딱 이다.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는 정동진에서 차로 20분 거리다. 휴가철이라고 북적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름 한철을 노린 상술도 이곳에선 찾아볼 수 없다. 마을 입구 냇가에 들어서니 한 무리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첨벙첨벙 냇가를 휘젓는다. '물고기 잡기 체험'이다. 지금이야 '체험'이라고 불려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시절에는 일상생활이었다. 어린 시절 경험을 떠올리며 어른들은 물고기를 몰아간다. 바위 위에서 뛰기도 하고 작은 돌들을 들었다 놨다 흔들어준다. 돌 틈에 숨어있던 고기들이 깜짝 놀라 헤엄친다. 아이들은 '물고기다'를 외치며 신이 났다. 그물로 길목을 막고 기다리던 아이들이 환호하며 들어올린다. 이 동네 말로 '산뚝지', '꾸그리', '피라미'라고 부르는 민물고기가 한데 걸려 올라온다. 백두대간보전회 회원인 배선복씨가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알려주며 설명한다. "이게 꾸그리라고 하는 건데 우리나라 토종 어종이야. 보기 힘든 건데 오늘 너희들 보라고 나왔나보다."

안개 / 강원도로 들어서자 기온이 내려간다. 백두대간을 넘어 가려는 구름 때문인지 숲이 머금은 습기를 뿜어내기 때문인지 하얀 안개가 산을 덮었다. 운전하는 사람은 주의해야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겐 설렘이다. / 이다일기자

한 시간 남짓 물고기와 씨름을 하더니 어른들은 지친 표정이고 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이다. 그물로 잡아 올린 물고기를 모두 놔줘야 했기 때문이다. 젖은 옷을 입은 채로 냇가 앞 학교로 향한다. 지난 95년에 폐교된 옥계국민학교 산계분교다. 1940년부터 1천18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산골 마을이라 아이들이 없어서 폐교가 됐다. 학교에는 간식이 준비돼 있었다. 냇가에서 물고기와 씨름하느라 지칠 때였다. 감자와 옥수수로 다시 힘을 낸다. 무공해 간식을 서둘러 먹고 아이들은 또 다시 학교 마당으로 뛰어간다. 여름의 더위는 오간데 없다.

알음알음 찾아오는 옥계 해수욕장

해수욕장 / 산과 바다가 동시에 보인다. 옥계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며 찍었다. 산 너머에는 정동진이 있다. 정동진에서 옥계로 오는 길은 바닷가 드라이브로 소문난 '헌화로'를 거친다. 파도가 잔잔하면 경치가 아름답고 파도가 센 날이면 도로까지 차오르는 파도가 일품인 도로다. 헌화로에서 이어지는 금진해수욕장, 옥계해수욕장은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 이다일기자

산골에서 놀고 나니 한 잠 자고 싶은 게 어른들의 마음이건만, 아이들은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럴 때를 대비한 묘책이 있으니, 해변으로 가는 것이다. 산계리에서 물이 내려가는 길을 따라 10분정도 달리면 해수욕장이 나온다. 영동고속도로가 동해까지 이어지면서 '해맞이 휴게로'로 알려진 동네, 옥계면이다. 여름 성수기에도 옥계해수욕장은 떠들썩하지 않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알음알음 찾아오거나 몇 몇 회사의 하계휴양지로 사용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정동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깎아지른 절벽의 해안단구가 보인다. 넓은 백사장과 대비돼 더욱 멋진 풍경이다. 바로 그 너머에 옥계 해수욕장이 있다. 정동진에서 불과 차로 5분 거리에 있지만 조용하고 여유로워 가족 휴양지로 즐기기 좋다.

고기잡기 / 제 키 만한 그물을 아이가 잡았다. 어른들은 물고기를 몰아오고 있다.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산계리 쌍계산촌마을에서는 여름체험 프로그램으로 물고기잡기를 하고 있다. 필요한 장비는 모두 마을에서 제공해주니 냇물에 빠져도 좋은 옷차림이면 준비완료.

아이들은 바다로 뛰어 든다. 어른들은 백사장에 몸을 파묻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철썩이는 파도에 신이 나서 뛰다가 모래사장에 탑을 쌓는다. 산과 계곡과 바다를 하루에 모두 즐긴다. 푹푹 찌는 더위도 이곳에선 딴 나라 이야기다. 

인근에는 숨겨진 놀이 꺼리가 많다. 옥계면 낙풍천을 관리하기 위해 주민들이 타던 뗏목을 놀이로 만들었다. 20명까지 탈 수 있으니 여럿이 어울려 물위에서 수다 떨기 그만이다. 바닷바람을 막아내는 소나무도 절경이다. 오랜 세월 서로 붙어 지내다 결국 한 몸이 된 나무들이 눈에 띈다. 소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수박을 먹으면 일품이다. 산과 들을 오가며 즐기는 동안 백두대간 산 너머로 해가 진다. 파도소리, 냇물소리, 산바람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바로 이런 게 '피서'다.

한국여성수련원의 일몰 / 옥계 해변에 위치한 한국여성수련원 뒤로 해가 지고 있다. 동해바다에서 일몰을 찍는 것이 어울리지 않지만 건물이나 산과 함께 찍으면 그럴싸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한국여성수련원은 지난 2009년 개원해서 여름방학 프로그램, 교육연수프로그램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옥계해수욕장과 맞닿아 있어서 특히 여름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 이다일기자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튜브는 대기중 / 7월 중순이 지나 한참 피서철로 접어들었지만 사람들이 많지 않다. 정동진과 동해 망상 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옥계, 금진 해수욕장은 여유로운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보석 같은 곳이다. 고속도로에서 5분이면 올 수 있는데다 산과 계곡도 가까워 매일매일 새로운 놀이를 할 수 있다. 성수기에는 기업체의 단체 휴양지로 인기가 좋다. 하지만 기업체의 휴양일자만 피한다면 언제나 여유로운 해변이다. / 이다일기자

가는길/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에서 동해시 방면으로 내려간다. 옥계IC에서 나와 한라시멘트공장 방면으로 가면 산계리가 나온다. 이정표가 없고 갈림길이 많으니 인근 주민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편리하다. 옥계IC에서 나와 좌회전 하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의 금진항 방면으로 다시 좌회전하면 옥계 해수욕장 표지판이 나온다. 

관련정보/
산계리 쌍계산천마을 홈페이지를 통해 농촌체험을 할 수 있다. (http://sange.kr), 또한 코레일관광개발에서는 산계리 쌍계산촌마을과 옥계해수욕장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여름가족휴양캠프' 프로그램을 한국여성수련원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문의전화, 1544-7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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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9-08 11:20 | 최종수정 2010-12-15 17:48  

영주시에서 30리.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합류해 돌아나가는 곳. 500년 전통을 이어 살아가는 50여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 무섬마을로 찾아갔다.

2009년 1월 시작한 '소읍기행'이 88회를 맞이했다. 매주 수요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간 것이 88주째다. 연재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을은 경북 영주시 수도리, 일명 '무섬마을'로 정했다.
 

무섬마을의 상징 외나무다리 / 이다일기자

1970년대 새로운 다리가 놓이면서 외나무다리는 사라졌다. /이다일기자



1666년 반남박씨(潘南朴氏) 휘 수(諱 燧)가 이곳에 들어와 터를 닦고 집을 지었다. 이 후 예안김씨(禮安金氏) 휘 대(諱 臺)가 들어오면서 두 성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 됐다. 지금도 50여 채의 전통가옥을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이다.

무섬마을에 갈 때는 정신 차려야… 

"외부에 있던 사람이 외나무다리를 건너 들어오면 꼭 빠지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무섬마을 갈 때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외지의 때를 모두 벗어버리고 들어가야 빠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무섬마을 보존회 박종우회장(70)의 말이다. 무섬마을은 마을을 감아 도는 물길 때문에 외지와 단절됐다. 육지라고 하지만 마을 앞은 물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둘러쌌다. 풍수지리상으로 배산임수의 형태다. 산자락 끝에 자리했고 앞에는 물이 흐르기 때문에 논이나 밭을 만들 공간이 없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강 건너 30리까지 농사를 지으러 다녔다. 무섬마을에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외나무다리였다.

 

기와집과 초가집 / 무섬마을에는 50여 채의 전통가옥이 있다.낮은 담장에는 꽃과 풀이 피어나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 이다일기자


1970년대 지어진 콘크리트 다리 덕택에 외나무다리는 사라졌다가 지난 2005년 마을의 옛 모습을 복원하면서 다시 돌아왔다. 박회장은 "옛날에는 저 다리로 가마타고 시집오고 또 죽으면 상여가 저 다리로 나갔어요. 이 마을 사람들에겐 사연이 많은 다리지요"라고 말했다. 외나무다리는 여름이면 사라진다. 비가 와서 물이 많아지면 다리가 쓸려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치와 철거를 반복하는 다리다. 구조도 간단하다. 통나무를 절반으로 쪼개서 의자처럼 다리를 붙였다. 그리고 물에 박아 넣은 것이 외나무다리다. 여름이면 사라지는 다리라 농사일과는 호흡이 맞지 않는다. 비가 많이 오면 논, 밭을 둘러보러 강 건너로 가야하는데 다리가 없으니 난감했다. 마을 사람들은 물살이 약하면 헤엄쳐 건너가기도 했고 한국전쟁때는 군용 보트에 의존해서 강을 건너기도 했다. 

글 읽고 분수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

무섬마을도 여느 시골 마을처럼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올해 일흔인 박회장이 마을에서 네 번째로 젊다. 그래서 마을에는 일 할 사람이 없다. 강 건너에 포도밭이나 고추밭을 소일꺼리로 하기는 하지만 크게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다. 마을일을 공동으로 하기도 쉽지 않다. 그저 자기 집 손질이라도 잘 되면 다행이다. 하지만 방학이나 명절이 되면 얘기가 다르다. 평소 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에 손자, 손녀들이 들어온다. 박회장은 "지난여름에는 한 200명쯤 되더라고요. 여기 주민들에 아들, 딸이 놀러오면서 아이들도 같이 오니 동네가 북적북적 했어요"라고 말했다.

장작/ 집집마다 장작을 쌓아 놨다. 겨울에 장작불을 때는 집이 많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랫목이 뜨끈해서 좋다고 한다. 정작 마을에는 노인들뿐이라서 젊은 사람들이 있을 때 장작을 해 놓거나 돈을 주고 사다놔야 하는 실정이다. / 이다일기자


최근에는 관광객들도 늘어났다. 주로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같은 전통 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무섬마을도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마다 10월에 진행하는 '외나무다리 축제'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무섬마을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외나무다리와 함께 보여준다.

무섬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공부를 많이 했다. 90세가 넘은 노인들 가운데에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있다하니 학구열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주로 관직보다는 학계에 많다고 한다. 50여 채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서 현직 대학교수가 16명이라고 한다. 시인 조지훈의 처가도 이곳이다. 마을을 안내해 준 박종우 회장도 35년간 교직에 있었다.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마을에는 'ㅁ'자 형태의 기와집을 포함해 50여 채의 전통가옥이 있다. 그중에 12채가 빈집이다. 집 주인은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다. 방학이나 휴가철이면 가끔 내려와 머무르는 게 전부다. 하지만 한 집도 외지인에게 팔지 않았다. 모두 박씨 아니면 김씨 가문에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오래 동안 비어있던 집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무섬마을이 고향인 사람들이다. 도회지에 나가 생활을 하다가 수 십 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인근 안동에 가족들을 두고 홀로 들어온 노인도 있었고 서울에 아들, 딸을 두고 옛 집으로 내려온 할머니도 있었다. 400년 가까이 된 고택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그래도 고향이니까 내려왔지. 여기는 공기도 좋아서 아픈데도 낫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고향에 돌아온 소감을 얘기했다. 

아름다운한국 ‘소읍기행’ 연재가 88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그동안 한국의 아담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 1년 8개월을 달려왔다.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일군 사람들부터 천혜의 자연환경에 터전을 가꾼 사람들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버무려져 소읍기행이라는 맛있는 식탁이 차려졌다. 

소읍기행은 분명 마을이야기였다. 그러나 환경이 아닌 ‘사람’이 그 주인공이 됐다. ‘어디에서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전해준 소읍기행의 주인공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김위진 가옥 / 'ㅁ'자형 기와집으로 19세기 말에 건립됐다. 하지만 옛날 형식을 그대로 유지해 가치가 높다. / 이다일기자

지붕위의 박 / 맑은 하늘 아래, 초가지붕 위로 박이 열렸다. 기와 담장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정겹다. 옛날 박이 열려 큰 복을 얻었다는 흥부전의 한 대목이 생각나는 풍경이다. / 이다일기자

만죽재고택/ 무섬마을에 제일 처음 자리 잡은 고택이다. 반남 박씨 휘 수(1641~1729)가 마을 서편 강 건너 머럼에 거주하다가 현종 7년(1666년)에 이곳으로 들어와 지은 집이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며 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 이다일기자

만죽재고택/ 무섬마을에 제일 처음 자리 잡은 고택이다. 반남 박씨 휘 수(1641~1729)가 마을 서편 강 건너 머럼에 거주하다가 현종 7년(1666년)에 이곳으로 들어와 지은 집이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며 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 이다일기자

해우당고택/ 선성 김씨 입향조 김대의 셋째집 손자 영각이 1856년에 건립한 주택이다.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ㅁ'자형 가옥이며 무섬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집이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해우당의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 이다일기자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들어가면 된다. 서울에서 대략 1시간 50분 거리다. 동서울터미널이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영주시까지 하루 26회 버스가 운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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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9-29 10:32  

중미산 캠핑장 /사진=이다일


서울에서 승용차로 불과 1시간 거리. 울창한 숲 사이로 캠핑장이 있습니다. 원래 산림청이 자연휴양림으로 운영하던 곳입니다. 그곳에 텐트치고 밥 해 먹는 캠핑장이 들어섰습니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국립 중미산 자연휴양림. 서른도 채 안돼 보이는 젊은 총각이 경차를 몰고 들어섭니다. 차에는 텐트, 아이스박스를 비롯해 캠핑 장비가 적잖이 실려 있습니다. 차곡차곡 쌓은 모습이 꼼꼼히 준비를 했던 모양입니다. 캠핑장 중턱에는 작은 텐트를 치고 낮잠을 청하는 60대 부부가 있습니다. 오가는 캠핑장 사람들과 인사도 주고받는 것으로 보아 고참 중에 왕고참으로 보입니다. 굳이 찾아간 것도 아니지만 운 좋게도 만난 캠핑족들입니다. 

텐트/오토캠핑의 텐트는 군대 막사처럼 큰 것이 인기가 좋다. 하지만 텐트는 누울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나무로 만든 데크가 있어서 산 바닥이나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텐트를 고정할 수 있다. 중미산 휴양림 캠프장은 나무가 많아 그늘이 넉넉한 것도 장점이다.<이다일기자>



텐트에 주름도 안 펴진 캠핑 1일차

경기도 평택에서 캠핑을 왔다는 총각은 이번이 첫 캠핑입니다. 이미 텐트를 쳐 두었는데 곱게 접혀있던 텐트의 주름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평일 낮 시간이라 한적한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로 옆에는 총각의 차가 세워졌습니다. 이 정도면 오토캠핑이라 부를 수 있겠네요. 주섬주섬 꺼낸 물건들이 텐트 주변에 가득합니다. 텐트에는 모기장을 치고 책을 읽었던 듯, 작은 상이 펼쳐있습니다. 저녁엔 고기 구워 먹고 일찍 쉴 거라 합니다. 주말에 친구들과 캠핑을 오기 위해 사전 답사 차 왔답니다. 참 꼼꼼한 친구입니다. 아이스박스에는 고기와 쌈이 들어있고 막걸리와 맥주까지 다양하게 챙겼습니다. 고기구울 숯까지 따로 챙겨왔으니 불 피우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저녁엔 진수성찬이 차려지겠습니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중미산 자연휴양림 캠핑장은 초보 캠핑족이 첫 캠핑으로 도전하기 좋습니다. 좋은 이유도 간단합니다. 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한적해서 입니다. 이곳에는 총 56개의 캠핑 데크가 있습니다. 산림청이 운영하는 38개의 휴양림 가운데 올해부터 예약제 캠핑장을 시범운영하는 6곳 중 한 곳입니다. 예약하고 와야 하니 초보들이 큰 맘 먹고 도전하기 좋습니다. 그리고 계곡을 따라 십 여 개의 캠핑 사이트가 드문드문 들어서서 숲에 둘러싸인 느낌이 일품입니다. 화장실, 샤워실, 식수대도 갖췄지만 매점이나 전기가 없는 것은 아쉽습니다. 그래도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때워가며 지내는 게 캠핑인지라 초보들이 도전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또 가족단위 소규모 캠핑족이 대부분이라 여유롭습니다. 

캠핑 데크/휴양림 내에는 1, 2 야영장이 있다. 총 56개의 데크가 있으며 예약제로 운영한다. 10개 미만의 데크들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어서 숲 속에 들어선 느낌이 일품이다.<이다일기자>



65리터 배낭 하나로 준비 끝, 35년차 캠핑족

캠핑장 중턱에 낮은 텐트가 눈에 띕니다. 유행처럼 화려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꼼꼼히 살펴보니 세월의 흔적이 보입니다. 타프의 기둥은 등산스틱을 거꾸로 세워 활용했고 그래도 모자라는 기둥은 나뭇가지를 깎아 마련했습니다. 타프와 텐트의 줄은 화려한 색상으로 나무와 묶었고 줄의 가운데는 큰 매듭을 짓거나 빨래를 널어 야간에도 잘 보이게 배려했습니다. 텐트 앞에 늘어놓은 살림살이라 봐야 속이 빈 배낭 1개, 생수통 2개, 작은 코펠과 버너, 그리고 부부가 앉아있는 접이식 의자가 전부입니다. "짐이 단출하시네요?" 라며 말을 건네자 "그래도 이번에는 큰맘 먹고 아이스박스도 가져 왔는데요 뭘~"이라고 합니다. 60대로 보이는 부부는 캠핑 나온 지 6일째라고 합니다. 지난 주말에 기습적으로 쏟아지던 비도 모두 이 캠핑장에서 맞았다고 합니다. 이번엔 좀 오래 있으니 특별히 차에 아이스박스까지 싣고 왔는데 평소에는 배낭 하나에 텐트, 침낭을 묶어서 버스타고 다닌답니다. 이러니 캠핑장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인사하는 게 당연해보입니다. 

중미산 자연휴양림 약도/국립 중미산 자연휴양림은 산림청에서 운영한다. 숲 체험코스 1.2km, 태교의 숲길 600m, 등산로 6.4km가 있어 걷기 좋은 길이 많다. 숲 해설사가 상주하니 미리 요청해서 설명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제공>


캠핑의 묘미에 대해 물어보니 "자연을 느끼며 지내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역시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요즘 캠핑 오는 분들 보면 아주 예쁜 텐트에 이런저런 장비도 많아요. 차에서 여러 번 짐을 싣고 내려야 할 정도에요. 그런데 정작 자연을 느끼는 게 아니라 장비 펴고 접고 하다가 좋은 구경 다 놓칠까봐 안타까워요. 그저 잠 자는 공간, 먹을거리 갖춰놓고 주변 산책도 하고 그래야죠"라며 행락 문화가 돼가는 캠핑을 아쉬워합니다. 등산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캠핑을 하게 됐는데 그게 35년 전이라고 합니다. 특히 처가가 있는 양평지역의 산들은 모두 그의 캠핑장이었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중미산 캠핑의 매력

차를 바로 옆에 두는 오토캠핑, 등산 중에 동그란 알파인 텐트를 치고 즐기는 산악캠핑, 넓고 고른 땅에 집처럼 크고 넉넉한 텐트를 치고 즐기는 캠핑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새로 만들고 있는 10여개의 오토캠핑사이트를 제외하면 중미산 캠핑장은 대부분 산악캠핑에 가깝습니다. 캠핑 사이트도 산기슭을 그대로 살려가며 꾸며졌습니다. 다만 앞 뒤 사이트의 간격이 좁아서 밤에는 옆 텐트에서 코를 고는 소리도 들리지만 어차피 풀벌레 소리나 시냇물 소리에 묻혀버립니다. 자연휴양림이라 주변 환경이 좋습니다. 숲 산책로는 가볍게 걷기에 좋습니다. 숲 체험코스 1.2km, 태교의 숲길 600m, 등산로 6.4km가 있습니다. 또한 숲 해설사가 친절한 설명도 해주니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기 좋습니다. 등산로는 4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정상에서는 남한강, 북한강은 물론 서울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오리엔티어링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길을 찾아가는 게임입니다. 다양한 프로그램 덕택에 아이들도 즐거워합니다. 주변에는 대형 리조트도 있고 천문대도 있으니 미리미리 알아두면 들러 볼 곳이 많습니다. 

휴양림 가는길/양평에서 중미산을 오르면 정상 너머에 휴양림이 있다. 표지판이 잘 되어 있으니 찾아가기는 쉽다. 중미산길에서 휴양림길로 접어들면 왕복 2차로의 좁은 길이 이어진다. 중미산은 골이 깊어 높지 않아도 숲이 울창하다.<이다일기자>


<캠핑장 정보>

이용요금: 1일 4천원 / 야영데크 1개소
이용시간: 오후1시~익일 오후 1시까지
주차: 휴양림 주차장 이용, 소형차 기준 3천원
예약: www.huyang.go.kr, 전화 1588-3250

예약제 캠핑/올해부터 전국 6개의 휴양림 캠핑장에서 예약제를 시작했다.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개인 사정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캠핑하지 못할 경우에는 예약 취소를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이다일기자>


가는 길: 승용차로 서울~춘천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종IC에서 나오면 된다. 대중교통은 서울 상봉, 동서울 터미널에서 양평 버스터미널 행 직행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30분간격으로 운행하며 약 50분 걸린다. 양평버스터미널(031-772-2342)에서 중미산 휴양림까지는 1일 2회 운행되는 시외버스를 타야 한다. 

취사장/캠핑장 내에 1개 있는 취사장이다. 주로 설거지를 할 때 사용한다. 냇물이 가까이 있다고 해서 절대로 냇물에 설거지를 하면 안된다.<이다일기자>



<경향신문 영상미디어국 이다일기자 c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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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10-13 10:52 | 최종수정 2010-10-25 18:24  

울창한 숲 속에서 캠핑을 한다. 아이들에겐 자연 놀이터다. / 이다일기자


첩첩산중에 들어가 캠핑을 하면 어떨까요? 물도 직접 길어야하고 장작으로 불을 때서 음식을 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이른바 캠핑 고수들이 추천하는 캠핑장은 이렇게 불편한 곳이었는데 바로 그것이 캠핑의 매력이라고 합니다.

타프와 텐트를 설치하면 캠핑준비의 절반은 끝난다. / 이다일기자


취재를 갔던 날은 아침부터 하늘이 예사롭지 않더니 결국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텐트치고 화로에 이것저것 구워 먹으려고 준비도 좀 했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이번에 찾아간 곳은 잣나무와 밤나무가 가득한 남양주시 오남읍의 캠핑장, 물도 산 아래서 길어오고 간이 화장실을 이용해야하는 야생의 숲입니다.

숲속의 캠핑장, 불편함이 오히려 매력 

비가 예보돼있어 방수포를 깔고 침대를 준비했다. / 이다일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저수지를 지나 팔현리로 들어가면 캠핑장이 나옵니다. 차량 한 대도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길입니다. 캠핑장은 산의 바로 아래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곳은 불편한 시설이 매력입니다. 간이화장실과 고무호스에서 나오는 물, 찬물에 설거지를 해야 하는 곳입니다. 이런 것을 오히려 매력으로 느낀다니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야생’의 느낌은 그 모든 것을 잊게 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을 즐기려면 각오를 하고 와야 합니다. 입구 주변에는 텐트 50동 정도를 칠 수 있는 평평한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팔현 캠핑장의 백미는 산 속에 있습니다. 잣나무 숲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운동장과 계곡물이 있는 평평한 땅은 지난 1996년까지 젊은이들이 MT를 하던 장소입니다. 그 후 지금의 홍소풍씨 부부가 들어와서 캠핑장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살다 부모님에게 이곳을 물려받은 홍소풍씨는 노년을 한국에서 지내려고 들어왔습니다. 벌써 14년 전 일입니다. 홍씨는 캠핑장을 비롯해 18만평에 이르는 산의 주인입니다. 홍씨가 이곳을 캠핑장으로 바꾸게 된 것은 8년 전 찾아온 캠퍼들 덕택입니다. ‘사장님’, ‘이모’라고 주인 내외를 부르는 젊은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머물다 갔습니다. 주인내외는 손님 대접을 하려고 반찬도 가져다주고 장작도 마련해줬습니다. 그렇게 해서 팔현 캠핑장이 시작됐습니다.

캠퍼들과 같이 만들어온 캠핑장

잣 / 팔현캠핑장은 잣나무가 많다. 원래 잣나무와 밤나무가 섞인 산인데 올해는 밤이 많이 열리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툭, 툭’ 소리를 내며 잣이 떨어진다. 떨어진 잣을 주워가는 것은 주인아주머니도 괜찮다고 했다. / 이다일기자


캠퍼들이 하나둘씩 찾아오다보니 자연스레 캠핑장이 됐습니다. 요즘 생겨난 샤워장에 비데까지 있는 캠핑장과 시작부터 다릅니다. 그저 숲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 캠핑장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이 있습니다. 자연 그대로를 즐기는 소위 ‘야생’ 캠핑입니다. 지금은 주말마다 캠퍼들로 가득한 인기 캠핑장이니 시설도 보수하고 산 속 깊숙이 캠핑장을 넓힐 만도 하지만 오랫동안 이곳을 찾아왔던 캠퍼들이 반대합니다. 오히려 불편함이 매력이라고 주인 내외를 설득합니다.

팔현 캠핑장에서 가장 불편해 보이는 산 속, 잣나무 숲에 텐트를 쳤습니다. 비가 올 거란 소식에 배수까지 고려해서 팽팽하게 줄을 당겼습니다. 타프 아래에 릴렉스체어를 놓고 앉으니 비가 나무에, 텐트에 부딪혀 내는 소리가 즐겁습니다. 화로대에 올려놓은 참나무 장작은 이제 막 불이 붙었습니다. ‘슉슉’하는 소리를 내며 타들어갑니다. 이따금 ‘툭’하는 소리와 함께 잣이 떨어집니다. 부지런히 주워왔습니다. 산길 따라 10분만 산책해도 수북하게 잣을 주워올 수 있습니다. 잘 준비, 먹을 준비도 끝났으니 낮잠을 청합니다. 여섯시가 다가오자 산에는 어둠이 내립니다.

물고기/ 캠핑장에 가면 무엇을 해야하는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특히 아이들은 자연의 무엇을 가지고도 놀이로 만들어낸다. 작은 개울에서 송사리를 잡아 보여준다. 주변 캠퍼들과도 친해지고 다른 집 아이들과 어울려 논다. / 이다일기자



캠핑의 맛은 밤에, 매력은 새벽에

작은 코펠에 국을 끓이고 화로에 얹은 석쇠에는 고기를 구워봅니다. 캠핑 장비가 좋아져서 힘들이지 않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테이블에는 비 오는 숲속의 만찬이 차려졌습니다. 20년 전 돌 위에 고기를 구워먹던 시절과는 풍류만 닮았습니다. 비가 온다고 해서 야전 침대도 준비했습니다. 또 리빙쉘 텐트에 침낭까지 준비했으니 가을 새벽의 쌀쌀함도 문제될 것 없습니다. 주변이 어두워지자 가스랜턴과 화로가 유일한 빛입니다. 숲속 캠핑장이라 옆 텐트와의 거리도 넉넉합니다. 다른 텐트의 불빛이 멀리 희미하게 보이니 정말 야생의 느낌이 듭니다. 새벽까지 꽤 많은 비가 왔습니다. 잣이 떨어지는 소리에 두어 번 깼지만 상쾌하게 숙면을 취했습니다. 숲에서 자고 일어나는 이 맛에 캠핑을 한다고 합니다. 찌뿌드드한 느낌 없이 상쾌합니다. 비가 와서 산책은 미뤘습니다. 대신 화롯불을 살렸습니다. 팽팽하게 쳐 놓은 타프 아래 의자에서 삼림욕을 합니다.

화장실/ 팔현캠핑장에는 3곳의 화장실이 있다. 2곳은 반듯한 건물로 지어졌지만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간이화장실만 있다. 예전 한강공원에 놓여있던 화장실정도 되니 야생을 즐기러 온 사람이라면 그리 불편하지 않다. / 이다일기자


여느 캠핑장이나 비슷하겠지만 초등학생 아이들의 쉬는 토요일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게다가 날씨까지 맑으면 선착순으로 입장하는 팔현캠핑장에는 자리가 없을 수 도 있습니다. 산 높은 곳에도 승용차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울퉁불퉁 돌이 튀어나온 곳은 조심해야 합니다. 차에서 짐을 내려 바로 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어서 편리합니다. 자리도 널찍해서 칸칸이 텐트를 쳐야하는 일반 캠핑장과 차별화 됩니다. 토요일은 다음 캠퍼들을 위해 오후 1시면 철수해야 하지만 일요일은 여유가 있습니다. 천천히 식사도 하고 오후 늦게까지 산책을 하다 돌아가도 좋습니다. 설거지는 차를 돌려 나갈 때 입구에서 하면 편리합니다. 승마공원, 광릉수목원 등이 인근에 위치해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동영상 설명] 겨울철 캠핑을 따뜻하게, 바닥공사


 

숲속캠핑/ 팔현캠핑장의 묘미는 숲에 있다. 울창한 숲에 들어가서 곳곳에 텐트를 친다. 특별히 구역이 지정돼 있지 않으므로 서로 피해가 없도록 조심하면 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해먹을 걸어 시원한 낮잠을 즐겨도 좋다. / 이다일기자


캠퍼들은 깔고 자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것. 쉽게 말해 침대, 매트를 구성하는 것을 ‘바닥공사’라고 부릅니다. 겨울에는 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나라 캠퍼들이 특히 겨울철 캠핑을 즐긴다고 합니다. 한국의 겨울은, 특히 산 속이라면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단단히 준비해야 합니다. 일단 매트를 잘 깔아야 합니다. ‘발포매트’라는 것은 습한 공기를 막아줘 편리합니다. 하지만 겨울철에 온기를 제공하지는 못해서 겨울캠핑엔 부적격입니다. ‘사계절매트’라고 불리는 것은 매트의 상, 하단에 방수처리가 됐습니다. 습기와 냉기를 막아주고 두께도 발포매트의 보다 두 배나 두꺼운 1cm입니다. 따라서 냉기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겨울철 강력한 무기로는 ‘보일러매트’가 있습니다. 물을 끓여서 매트 아래로 강제순환 시킵니다. 배터리가 내장된 모터가 있어서 이틀 정도는 전기가 없어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전기요를 사용하거나 집에서 쓰던 장판을 가져가기도 합니다. 캠핑장에 대부분 전기가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겨울철에는 기본 캠핑장비외에 난방용 장비가 추가되므로 안전사고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음식/ 캠핑을 가면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음식이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준비하면 오히려 짐만 된다. 집에서 미리 간을 하거나 1차 조리를 해서 개별 포장하면 캠핑장에서 수월하게 요리할 수 있다. 팔현캠핑장의 숲에서는 멀리까지 물을 길으러 가야하므로 과일도 미리 씻어 놓는게 좋다. / 이다일기자

물길을 건너 / 팔현캠핑장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장점으로 꼽힌다. 편의시설이 없어 불편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게 좋다는 캠퍼들도 많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얕은 개울을 건너야 한다. 승용차도 지날 수 있을 정도라 차가 지나가면 아이들은 물놀이를 한다. / 이다일기자



<경향신문 영상미디어국 이다일기자 cam@khan.co.kr>


캠핑장정보/
캠핑사이트: 150개
이용요금: 텐트 1동 1박에 2만원, 2박에 3만5천원 (4인 가족기준, 선착순입장), 전기이용료 3천원, 장작 1만원
시설: 화장실 3개소, 식수대, 전기사용가능, 매점, 샤워실 이용가능.

가는 길/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리 20번지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거나 오남저수지 또는 팔현유원지를 찾아가면 된다. 47번 국도에서 383번 지방도로를 따라 오남리로 간다. ‘팔현유원지’이정표를 따라 팔현리로 들어가면 된다. 갈림길이 많은 곳이라 내비게이션이 없는 경우 동네 주민을 통해 물어보는 것이 제일 쉽다. 대중교통으로는 청량리, 잠실, 강변역에서 오남리행 버스를 타고 오남리 동부아파트에서 내리면 된다. 정류장에서 캠핑장까지는 4km정도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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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여의도다 보니
점심먹고 슬쩍 여의도 공원이나
한강 고수부지를 다녀옵니다.

여유있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점심먹고 길을 걷는 직장인도 있습니다.

지난주 다녀올 때와 달리 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벚꽃축제가 이제는 꽃과 함께 시작해도 되겠네요.

살구꽃과 벚꽃이 비슷비슷하게 피어있고
개나리는 아파트 담벼락 사이에 얼굴을 내밉니다.

고수부지 화단에는 보라색, 노란색
색색의 꽃이 피었습니다.

아직 바람은 많이 불어
도시락 까먹긴 힘들겠네요.
김~ 다 날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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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angjin2618m BlogIcon 모르세 2011/04/24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행복한 시간이 되세요

  2. 이쁜승 2011/05/01 0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이 오랜만``` 왠 여의도지?? 내가 세상과 소통을 너무 안했군 ㅋㅋ 완전 궁금하삼....


가을이 되면서 취재의 내용이 바뀌고 있습니다.
일단 캠핑을 시작했습니다.
지난번 부터 네이버캐스트에 캠핑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직접 캠핑을 하지 않고 취재만 하다보니 뭔가 부족함이 느껴져서
결국 지난주말에는 캠퍼 선배를 따라가 1박2일의 캠핑을 했습니다.

그렇게 첫 캠핑을 시작한 곳은 남양주시 천마산 자락의
팔현캠프.

물도 멀리서 길어와야하고 화장실은 이동식(푸세식)입니다.
대신 잣이 뚝뚝 떨어지는 숲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술먹고 떠드는 행락객들이 많지 않았던 것도 인상적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주 수요일 네이버캐스트를 통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예~~ 전 야영과 다르게 캠핑이 여러 장비가 수반되는
참으로 복잡한 작업입니다.(물론 쉽자면 쉬운 것이고..)

앞으로 장비에 대한 장단점, 문제점, AS에 대한 이야기
업체들의 횡포, 소비자 불만 등도 기사로 다룰 예정입니다.
이미 몇 가지 아이템은 취재중에 있습니다.

이미 2백만~3백만에 이른다는 캠퍼들이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캠핑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캠핑에 대한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독자분들께서도 제 블로그나 기사에 댓글로 의견을 내주시면
반영을 뛰어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취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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