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6-16 13:11 기사원문

느림에서 찾는 참다운 삶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시작됐다. 세계 17개국, 123개 도시가 가입된 슬로시티에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창평등 5곳이 가입됐다.

느릿느릿 소달구지를 타고 마을을 구경한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발효를 통한 전통음식은 슬로시티의 상징이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마을 입구에선 시끌벅적 장터가 열렸다. 노인들은 나물과 채소를 들고 나와 자리 잡았고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할아버지는 가훈을 써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마중물을 넣고 물을 길어 올리는 체험을 하고 있고, 한편에선 떡방아를 쳐 보는 파란눈의 외국인도 있다. 

슬로시티의 상징인 달팽이에서 이름을 따온 '달팽이 시장'이 열리면 온 마을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이 지난 2007년 12월 1일 '치타슬로 (Cittaslow) 국제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인정받으면서 일어난 변화다.

소풍 유치원 아이들이 창평 슬로시티로 소풍을 왔다. 배추가 심어진 마당을 지나 개량 한복을 입고 돌담길을 걷는다. 햄버거와 피자를 찾는 아이들에겐 슬로시티의 슬로푸드가 어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슬로시티는 사람 중심의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1999년 시작됐다. 지금까지 세계 17개국 123개 도시가 가입했고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의 창평을 비롯해 완도, 장흥, 하동, 예산이 슬로시티로 인정받았다.

슬로시티로 인정받는 조건은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전통적인 수공업과 조리법이 보존되어 있어야 하고 고유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자연친화적인 농업을 사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인간중심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 

남극루 마을 논 가운데 세워진 남극루. 1830년대에 장흥인 고광일을 비롯한 30인에 의해 지어졌다. 평지에 건립된 2층 누각 형태로 다른 건물에 비해 특이성을 갖고 있다. 규모 또한 웅장해서 향토유형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됐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풍족한 곡창지대

담양지역, 특히 창평면은 예로부터 농사짓기 좋은 곡창지대였다. 이곳이 풍요로운 고장임을 보여주는 것은 지금 남아 있는 옛 가옥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세곳에서 물길이 모인다는 뜻의 '삼지내 마을', 창평의 작은 마을에 모여 있는 고택들은 넉넉한 크기의 곳간을 갖고 있다. 곳간에는 쌀이 가득했고 겨울이면 쌀을 이용해 한과를 만들고 엿을 만들어 먹었다. 곳간이 가득 차니 인심도 후하고 문화도 발달했다.

돌담 모양이 제각각인 돌을 쌓고 남는 공간은 황토 흙으로 채웠다. 그 위에는 기와를 얹었고 사이사이에서는 담쟁이 넝쿨이 자라고 있다. 마을의 돌담길 산책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이다일기자)

이 마을의 춘강 고정주 고택은 창평 지역 근대교육의 효시인 영학숙과 창흥의숙의 모태가 되기도 했고, 한말 민족운동의 근원지로 현대사적 의미도 갖고 있다. 마을의 남쪽에는 월봉산이 있는데 멀리서 보면 크지도 높지도 않은 완만한 산세를 갖고 있다. 이 산에는 상월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곳은 고려 경종 1년(916)에 창건된 대자암의 절터다. 추제 김자수가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상월정을 창건했고 손자사위 성풍 이씨 덕봉, 이경이 사위 학봉 고인후에게 양도해주면서 김, 이, 고씨의 3개 성씨가 이곳에서 연을 맺게 된다. 바로 여기서 창흥의숙을 연 춘강 고정주, 신학문을 배운 고하 송진우, 가인 김병로, 인촌 김성수, 취봉 고재호, 심강 고재욱 그리고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한기, 고재필 선생이 공부를 한 곳이다. 월봉산에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고 하니 문화의 고장으로 손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돌담길 따라 걷는 슬로시티의 매력

춘강 고정주고택 춘강 고정주(1863~1933)의 고택이며 창평지역 근대교육의 효시인 영학숙과 창흥의숙의 모태가 된 곳이다. 입구의 담장은 곧게 뚫리지 않아 대문을 열어놓아도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양쪽 지붕보다 조금 높게 올라선 솟을대문을 비롯해 전형적인 부농의 한옥 모습을 보여준다. (이다일기자)

슬로시티에 왔으니 천천히 둘러보기로 결심했건만 급한 현대인들에게 '느린것' 만큼 힘든 일도 없는가보다. 느긋한 걸음으로 둘러봐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면사무소에서는 자전거를 빌려주고 있었다. 군데군데 포장도 되지 않은 돌담길을 자전거로 달려보니 기분이 색다르다. 걸을 때 보다 조금 높아진 눈높이는 담벼락 건너편이 훤히 들여다보여 새로운 시계를 선사한다.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고택으로 들어섰다. 골목 초입에서는 집의 대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높은 담을 쌓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구조가 엿보인다. 옛 선비들은 사람이 불쑥 나타나면 상대방이 놀라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문을 들어섰다고 한다. 

담장보다 높게 올라선 솟을대문을 지나자 누런 나무빛이 뚜렷한 고택이 나타난다. 한눈에 봐도 양반집이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큼직한 곳간채와 문 옆에 붙은 문간채까지 제대로 갖춘 한옥이다. 사랑채와 안채는 서로 보이지 않도록 집 안에 담벼락을 두었다. 듬성듬성 돌이 박혀있는, 논의 흙을 가져다 바른 전통양식의 담벼락이다. 

달팽이 시장 매월 둘째 토요일. 아이들의 학교가 쉬는 '놀토'가 되면 슬로시티에는 장터가 열린다. 슬로시티의 상징인 '달팽이'를 본따 일명 '달팽이 시장'이라고 부른다. 인근 주민들이 가지고 나온 나물과 채소들, 담양지방의 대나무로 만든 각종 물건들이 시장에 늘어선다. (창평슬로시티 제공)

이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부농의 양반가옥이다. 예사 마을에선 보기 힘든 큰 집 너 댓 채가 아직도 남아있으니 창평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슬로시티'로 유명세를 타서 인지 마을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간혹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고 주민들은 얘기한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무언가 큰 기대를 하고 왔기 때문이라는 것. 슬로시티의 뜻은 전통을 지키며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마을 주민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데 왜 길을 넓히고 집을 수리하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그냥 옛 모습을 지켜 나가는 것이 슬로시티에 어울리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음식이야 말로 슬로시티의 매력

부침개와 막걸리 달팽이 시장이 열리면 부침개는 공짜다. 단, 직접 부침개를 부쳐야 한다는 단서가 있지만 말이다. 면사무소 앞에 마련된 마당에서 부침개를 부쳐 막걸리 한주전자를 마시면 마을을 둘러보느라 쌓인 피로가 말끔하게 사라진다. 멀리 서울에서 창평을 찾아왔다는 젊은이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이다일기자)



슬로시티가 갖춰야 할 조건에는 전통문화와 가옥 말고도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음식이다. 전통방식으로 만든 음식이 있어야 하고 지금도 그 방식을 유지하고 계승해야 한다. 창평면 삼지천 마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전통방식을 계승하는 사람들이 있다. 창평의 슬로푸드로 알려진 것은 엿, 한과, 장류다. 담벼락을 따라 걷다보면 대문에는 '창평 엿 판매'같은 간판이 붙어있다. 한집 건너마다 있을 정도다. 이곳을 안내해준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쌀이 풍족하니 겨울에 엿과 한과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국을 통틀어 35명에 불과한 '식품명인' 가운데 4명이 이곳 담양에서 배출됐다. 묵은 간장에 해마다 햇간장을 부어 만든 '진장'의 명인 기순도 명인을 비롯해 창평 쌀엿의 유영군 명인, 대잎술의 양대수 명인, 엿강정의 박순애 명인이 이곳에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도 숯공예의 양정자, 천연염색의 김명희, 전통약다식의 이순자, 한과의 안복자씨가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월봉산 마을 남쪽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이 바로 '월봉산'이다. 사진의 가운데 두개의 봉우리가 겹쳐있는 곳이다. 산에는 상월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했다. 지금도 고시공부를 위해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이다일기자)

가는길

광주광역시에서 승용차로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호남고속도로 창평IC에서 나와 창평 읍내로 들어서면 우측 면사무소 뒷편이 슬로시티 삼지천 마을이다. 내비게이션에는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창평리 82-2 (창평면사무소)'를 입력하면 된다. 버스로 찾아올 때는 광주광역시를 거치는 것이 편리하다. 광주 문화동 버스터미널에서 창평방면 버스가 2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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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9-08 11:20 | 최종수정 2010-12-15 17:48  

영주시에서 30리.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합류해 돌아나가는 곳. 500년 전통을 이어 살아가는 50여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 무섬마을로 찾아갔다.

2009년 1월 시작한 '소읍기행'이 88회를 맞이했다. 매주 수요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간 것이 88주째다. 연재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을은 경북 영주시 수도리, 일명 '무섬마을'로 정했다.
 

무섬마을의 상징 외나무다리 / 이다일기자

1970년대 새로운 다리가 놓이면서 외나무다리는 사라졌다. /이다일기자



1666년 반남박씨(潘南朴氏) 휘 수(諱 燧)가 이곳에 들어와 터를 닦고 집을 지었다. 이 후 예안김씨(禮安金氏) 휘 대(諱 臺)가 들어오면서 두 성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 됐다. 지금도 50여 채의 전통가옥을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이다.

무섬마을에 갈 때는 정신 차려야… 

"외부에 있던 사람이 외나무다리를 건너 들어오면 꼭 빠지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무섬마을 갈 때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외지의 때를 모두 벗어버리고 들어가야 빠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무섬마을 보존회 박종우회장(70)의 말이다. 무섬마을은 마을을 감아 도는 물길 때문에 외지와 단절됐다. 육지라고 하지만 마을 앞은 물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둘러쌌다. 풍수지리상으로 배산임수의 형태다. 산자락 끝에 자리했고 앞에는 물이 흐르기 때문에 논이나 밭을 만들 공간이 없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강 건너 30리까지 농사를 지으러 다녔다. 무섬마을에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외나무다리였다.

 

기와집과 초가집 / 무섬마을에는 50여 채의 전통가옥이 있다.낮은 담장에는 꽃과 풀이 피어나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 이다일기자


1970년대 지어진 콘크리트 다리 덕택에 외나무다리는 사라졌다가 지난 2005년 마을의 옛 모습을 복원하면서 다시 돌아왔다. 박회장은 "옛날에는 저 다리로 가마타고 시집오고 또 죽으면 상여가 저 다리로 나갔어요. 이 마을 사람들에겐 사연이 많은 다리지요"라고 말했다. 외나무다리는 여름이면 사라진다. 비가 와서 물이 많아지면 다리가 쓸려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치와 철거를 반복하는 다리다. 구조도 간단하다. 통나무를 절반으로 쪼개서 의자처럼 다리를 붙였다. 그리고 물에 박아 넣은 것이 외나무다리다. 여름이면 사라지는 다리라 농사일과는 호흡이 맞지 않는다. 비가 많이 오면 논, 밭을 둘러보러 강 건너로 가야하는데 다리가 없으니 난감했다. 마을 사람들은 물살이 약하면 헤엄쳐 건너가기도 했고 한국전쟁때는 군용 보트에 의존해서 강을 건너기도 했다. 

글 읽고 분수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

무섬마을도 여느 시골 마을처럼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올해 일흔인 박회장이 마을에서 네 번째로 젊다. 그래서 마을에는 일 할 사람이 없다. 강 건너에 포도밭이나 고추밭을 소일꺼리로 하기는 하지만 크게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다. 마을일을 공동으로 하기도 쉽지 않다. 그저 자기 집 손질이라도 잘 되면 다행이다. 하지만 방학이나 명절이 되면 얘기가 다르다. 평소 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에 손자, 손녀들이 들어온다. 박회장은 "지난여름에는 한 200명쯤 되더라고요. 여기 주민들에 아들, 딸이 놀러오면서 아이들도 같이 오니 동네가 북적북적 했어요"라고 말했다.

장작/ 집집마다 장작을 쌓아 놨다. 겨울에 장작불을 때는 집이 많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랫목이 뜨끈해서 좋다고 한다. 정작 마을에는 노인들뿐이라서 젊은 사람들이 있을 때 장작을 해 놓거나 돈을 주고 사다놔야 하는 실정이다. / 이다일기자


최근에는 관광객들도 늘어났다. 주로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같은 전통 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무섬마을도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마다 10월에 진행하는 '외나무다리 축제'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무섬마을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외나무다리와 함께 보여준다.

무섬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공부를 많이 했다. 90세가 넘은 노인들 가운데에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있다하니 학구열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주로 관직보다는 학계에 많다고 한다. 50여 채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서 현직 대학교수가 16명이라고 한다. 시인 조지훈의 처가도 이곳이다. 마을을 안내해 준 박종우 회장도 35년간 교직에 있었다.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마을에는 'ㅁ'자 형태의 기와집을 포함해 50여 채의 전통가옥이 있다. 그중에 12채가 빈집이다. 집 주인은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다. 방학이나 휴가철이면 가끔 내려와 머무르는 게 전부다. 하지만 한 집도 외지인에게 팔지 않았다. 모두 박씨 아니면 김씨 가문에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오래 동안 비어있던 집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무섬마을이 고향인 사람들이다. 도회지에 나가 생활을 하다가 수 십 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인근 안동에 가족들을 두고 홀로 들어온 노인도 있었고 서울에 아들, 딸을 두고 옛 집으로 내려온 할머니도 있었다. 400년 가까이 된 고택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그래도 고향이니까 내려왔지. 여기는 공기도 좋아서 아픈데도 낫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고향에 돌아온 소감을 얘기했다. 

아름다운한국 ‘소읍기행’ 연재가 88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그동안 한국의 아담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 1년 8개월을 달려왔다.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일군 사람들부터 천혜의 자연환경에 터전을 가꾼 사람들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버무려져 소읍기행이라는 맛있는 식탁이 차려졌다. 

소읍기행은 분명 마을이야기였다. 그러나 환경이 아닌 ‘사람’이 그 주인공이 됐다. ‘어디에서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전해준 소읍기행의 주인공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김위진 가옥 / 'ㅁ'자형 기와집으로 19세기 말에 건립됐다. 하지만 옛날 형식을 그대로 유지해 가치가 높다. / 이다일기자

지붕위의 박 / 맑은 하늘 아래, 초가지붕 위로 박이 열렸다. 기와 담장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정겹다. 옛날 박이 열려 큰 복을 얻었다는 흥부전의 한 대목이 생각나는 풍경이다. / 이다일기자

만죽재고택/ 무섬마을에 제일 처음 자리 잡은 고택이다. 반남 박씨 휘 수(1641~1729)가 마을 서편 강 건너 머럼에 거주하다가 현종 7년(1666년)에 이곳으로 들어와 지은 집이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며 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 이다일기자

만죽재고택/ 무섬마을에 제일 처음 자리 잡은 고택이다. 반남 박씨 휘 수(1641~1729)가 마을 서편 강 건너 머럼에 거주하다가 현종 7년(1666년)에 이곳으로 들어와 지은 집이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며 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 이다일기자

해우당고택/ 선성 김씨 입향조 김대의 셋째집 손자 영각이 1856년에 건립한 주택이다.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ㅁ'자형 가옥이며 무섬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집이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해우당의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 이다일기자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들어가면 된다. 서울에서 대략 1시간 50분 거리다. 동서울터미널이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영주시까지 하루 26회 버스가 운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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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지난 6일 소독약 샤워한 내 차가 불쌍해서 취재 후 작성한 기사. (우)헤럴드경제에서 7일 내 기사를 그대로 베껴간 기사.


인터넷 페이지뷰를 늘리기 위해서 기사를 베껴쓴다지만 좀 기획 취재했거나 혼자 고민해서 쓴거를 낼름 베껴가면 좀 그르치 않나?

업계에도 상도덕이 있는데 이건 좀 아니네. 쯧.

게다가 이걸 '미디어다음'에서 상단에 노출하는건 또 뭐야. 하루 먼저 나온 내 기사는 저리 처박히고 나중에 베껴적은 기사가 더 많이 유통되다니 당췌~ 

헤럴드경제!!   원고료 달라!!!

베껴 쓸라믄 좀 창의적으로 두 세개 기사 섞어서 베껴 보던가.
어찌 베껴도~ 기사 한개를 그대로 긁어갔다냐.

첫 문단, 둘째 문단 순서만 바꾸고 토시하나 안바꾸고 그대로 베꼈냐. 
마지막에 "제일 효과적이다"를 "가장 효과적이다"라고도 바꿨네.

지금 뭐 대딩 레포트내나?

에힛~ 쯧.

(6일날 쓴 내 기사)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10206164614370&p=khan

(7일날 베껴쓴 헤럴드경제 기사)
http://media.daum.net/economic/autos/view.html?cateid=1025&newsid=20110207002214363&p=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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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jnews.tistory.com BlogIcon 김형욱 2011/02/08 0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휴. 제가 경제지 생리를 보니까 바이라인 없는 온라인 팀은 하루에 무조건 읽힐 만한 기사 40~50개 기사를 퍼 나르다보니 상도덕이고 뭐고 없는 것 같아요. 슬픈 현실..

  2. Favicon of http://sulgida.blog.me BlogIcon sulgida 2011/02/08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울하구만. 근데 이래도 뭔가 이의제기할 방법이 없는건가?

  3. Favicon of http://www.leedail.com BlogIcon 매일매일 다일~리 뉴스 이다일선수 2011/02/08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서로 퍼가긴 많이 하는데.. 업계용어로 '우라까이'. 근데 이건 우라까이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마우스로만 가져간 거라... 게다가 보도자료 가공하거나 남들 다쓰는 기사를 쓴게 아니라 혼자 취재해서 쓴건데 이렇게 베끼면 좀 그르네. 김형욱님/ 슬픈현실 맞습니다.

어제 F1 경기장의 불법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나니
기운이 쭉 빠졌습니다.

경기 직전까지도 잘되어야지, 성공해야지라고 기원하던 마음이었는데
하나하나 파헤쳐지는 사실들을 보는 마음이 참으로 참담합니다.

오늘은 F1대회를 진행한 카보측의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아직 대책을 논의중이라고 합니다.
정확하게는 홍보 대행사를 통해 들었습니다.

자기들도 각종 매체에서 문의는 오는데
마땅히 답변할 내용이 없어서 난처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불법건축물에 대한 기사가 나간 다음날
전남도 의회에서 '감사'를 한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지자체 예산이 투입된 카보 역시 감사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제 기사가 전송된 대부분의 포털사이트를 들여다 봤습니다.
수천개가 넘는 댓글을 훑어보듯이 모두 들여다 봤습니다.

관람객 안전에 대해 이야기한 기사인데 댓글에는
지역감정을 부추기거나 정치적 의도까지 들먹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 블로그 방명록에는 고향이 어디냐며 
노골적인 지역감정을 드러내는 분도 계셨습니다.

네...

저 고향 전라남도입니다.
F1개최된 곳에서 차로 30분만 가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법과 파행으로 이뤄진 안전불감증 이야기는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겪었습니까.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을 비롯해
인재라고 불리던 사고들 말입니다.

다행스럽게 큰 탈 없이 F1경기를 마쳤지만
그렇다고 모른척 할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번 기사는 우연히 주워들은 얘기입니다.

제가 경기를 관람했던 L스탠드는 주차장에서 3km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경기시간은 다가오는데 경기장에 8대가 운행된다는 셔틀버스는 만원입니다. 

미리 주차권을 구입했거나 미디어카드를 가졌거나 패독클럽/VIP/행사관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셔틀버스를 타거나 3km를 걸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아이가 휠체어를 타는데 만원버스에 탈 수 없으니 
아이만 내려주고 돌아오겠다는 차량도 출입을 거부당했습니다.
결국 휠체어에 아이를 태우고 씩씩하게? (거리며?) 걸어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찌했건 저는 약간의 편법을 이용했습니다.
경기 시작은 5분도 안남았고 걸어가도 늦겠다 싶어
공사관계자라고 쓴 표지판을 붙인 차에가서 "조금만 태워주세요"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분과 약 2km를 가는 동안 나눈 얘기가 '불법건축물' 기사가 됐습니다.
물론 그분과 얘기를 나누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보강취재를 한 것이죠.

어쨌건 기사가 나간 뒤 이메일, 댓글 심지어 전화로 많은 분들이
항의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많은 댓글에서 
'F1경기 시작할때까지 아무 기사도 없다가 막상 좋지 않은 내용 보이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까발린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사실 전 F1 잘보자고, 즐겁게 보는 법까지 연재했습니다.
그것도 네이버 메인에 매주 금요일에 연재했습니다.

F1이 개최되길 꾸준히 지켜봤고 누구보다 기대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제 고향 바로 옆인데 발전되고 홍보된다면 누가 나쁜얘기 하겠습니까.

뭐.. 그렇습니다.

늦은 시간에 주절주절 소회를 썼습니다만
'안전'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하고 타협할 수 없는 얘기입니다.

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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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똑똑이 2010/10/28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마 스탠드사건은 양반일겁니다.
    카보를 보면 예전에 부천국제영화제가 생각나는군요...
    신비스러운 카보, 물론 조직위원회도 경험부족이지만 총체적인 개선의 대상은 카보겠죠
    스스로들 잘알테니까요

51동 가운데 27동이 불법건축물
보험 가입도 불가능해 대형 참사로 이어질뻔…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열린 F1 코리아그랑프리의 경기장이 불법 건축물로 드러났다. 특히 총 51동의 건축물 가운데 10만 여명의 관중이 있었던 관중석은 모두 준공검사를 받지 않은 불법 건축물로 밝혀졌다. 

준공검사를 받지 않은 건축물은 안전검사는 물론 보험을 비롯한 각종 사건 사고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

영암군청에 따르면 일반 관람객 10만명이 입장했던 24동의 가설스텐드를 포함해 총 27동의 건축물은 현재까지도 준공검사를 받지 않은 불법 건축물로 밝혀졌다. 

경기장 관중 스탠드 하부. 철골로 이뤄진 구조에서 볼트, 너트가 떨어져 내렸다. 지나던 관중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쇳덩이를 피해야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F1조직위원회는 불법 건축물에 관람객을 입장시켰고 대회가 열린 3일간 10만명의 관객들은 안전검사조차 받지 않은 불법 건축물에서 대형 참사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다. 

한 모터스포츠 관계자는 "지난 5월 미국 인디500레이스에서는 경주용 차가 관중석으로 돌진하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며 "F1 코리아그랑프리같은 세계적 대회를 불법건축물에서 진행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말했다.

관중석은 모두 불법건축물. 준공허가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안전관련 인증이나 보험가입은 전혀 없었다.


대회를 주최한 전라남도 F1조직위원회는 전화통화를 통해 "불법 건축물이고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 관람객이 입장해서는 안되는 시설인 것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대회를 진행한 KAVO 관계자는 "소방검사는 마쳤고 여러 보험사에 보험을 들어놨다. 하지만 어떤 보험에 들었는지는 밝힐 수 없다"고 답변을 회피했다.

보험사 관계자는 준공검사 후 사용승인서를 발급 받은 뒤에 '배상책임보험'을 가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준공검사조차 받지 않은 관람객석은 보험 적용도 되지 않는 위험천만한 공간이었다. '배상책임보험'은 건축물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에 대해 보상을 할 수 있는 보험이다.

자동차 경주에서는 사고 위험이 뒤따른다. 철저한 안전 대책을 세워야함에도 불구하고 허술한 대회 관리는 관람객의 안전을 위협했다.


불과 11시간만에 준공검사 완료

또한 준공검사를 받은 23동의 건물도 졸속 허가 논란이 일고 있다. F1조직위원회는 대회 전날인 21일 밤 10시에 건축물 23동에 대한 준공검사 신청을 했고 불과 2시간의 검토를 거친 뒤 22일 오전 9시 준공허가가 났다. 대회는 준공검사 1시간 후인 오전 10시부터 시작됐다.

이에대해 영암군청 관계자는 "준공검사 신청 전에 미리 검토를 진행했었고 관련 규정에 따라 준공허가를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23동에 이르는 건축물이 10시간 만에 준공허가가 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한편, F1조직위원회가 불법으로 건축물에 관람객을 입장시키고 무리한 경기 운영을 진행하자 해당 감리단이 행정기관에 행정처분을 요청했다. 영암군청에 따르면 "26일 F1 경기장 감리단에서 건축물 무단사용에 대한 신고를 받아 행정처리절차를 진행중이다"라고 말했다.

<영상미디어국 이다일기자 c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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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종민 2010/10/26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분명 문제가 있는건물이다 근데 왜 이렇게 세울수밖에 없엇는지를 취재 하는게 기본아닌가 정부에서 예산 다 짜르고 국비가 고작 500억 나왔다 4천억 들어가는 사업에 국비가 500억 오죽하면 당시 건설사 관계자 하청업체 사람들이 돈이 안나와 쩔쩔맨다고 햇을까...f1시작하기전에는 취재한번 안하던 언론 기자들이 끝나니 온갖 트집을 잡아서 비난하는 기사를 볼때면 참 가슴 답답해지는일이다.어떻게된게 시작할때보다 끝난후에 기사가 더 많이 올라온다.

    • Favicon of http://www.leedail.com BlogIcon 이다일선수 2010/10/26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돈이 제대로 안나와서 안전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러니 어쩔수없다.는 논리는 사람들의 안전 앞에서 통하지 않는 논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기사가 많이 나오는게 당연한 결과지요. 일단 10만명이 모였다 빠진 자리에 기자들이 취재하고 기사 쓰는게 당연한 것이니까요. 안전에 대해 얘기할때 타협/이해는 없습니다.

지난 14일, BMW행사장에서 제가 찍은 영상과 사진으로 
경향신문 기사를 출고했습니다.


영상은 유튜브와 태그스토리 두군데에 나눠서 올렸구요.
(경향신문은 두군데 서버를 이용해 동영상을 올립니다)

그런데 오늘 조선닷컴에서 기사를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찍은 영상이 조선일보 동영상 사이트인 '키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키위닷컴. "http://keywui.chosun.com/contents/section.view.keywui?mvSeqnum=175323&cateCategoryId=102&cateSubCategoryId=3"


뭐.. 유튜브나 태그스토리 영상을 링크로 가져갔으면
별 얘기 안하겠지요. 공유하자고 올린것이니까요.

헌데 영상만 쏙 퍼다가 키위 플랫폼에 얹어 넣었더라구요.
이쯤되면 저작권 침해지요?

이러진 맙시다. 
경향 기사로 출고한 영상을 자기네 플랫폼으로 쏙 퍼가다니요.

삭제요청해놓고 신고버튼 눌러놨으니 어찌 되겠지요.
뭐 일부 네티즌이 그런거라구요?
그런데 조선일보 주요 동영상기사 하단에 
이 영상을 링크걸어뒀나요?

에이~ 증말.


이건 조선일보 영상기사 화면입니다. 하단에 주요 동영상으로 이하늘 발언 얘기를 링크해주고 있습니다.


ps.(2010.10.18/15:00) 방금 확인해보니 삭제됐군요.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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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homson.tistory.com BlogIcon 범상인 2010/11/10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만든 동영상은 짱라이브라는 사이트에서 퍼갔었는데, 짱라이브측에서 저작권을 주장하더군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삭제요청했더니 삭제하긴 했는데, 슬그머니 다시 올리고..

    키위닷컴이라는 사이트에서도 퍼갔네요..


오늘 2010년 10월 6일, 경향신문이 창간 64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생일날이죠. 기쁜날입니다. 여러사람에게 기쁜날입니다.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취재차 시베리아와 몽골 초원을 헤맨게 엇그제 같은데 벌써 4년 전 일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창간 64주년인 올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통합이 진행중이어서 더욱 중요한 생일입니다. 500여명의 오프라인 신문사와 30여명의 온라인 법인이 통합하는게 뭐 그리 큰 이슈가 될까 싶지만 회사 내부는 그렇다쳐도 회사외부에서 바라보는 근심반 기대반의 시선은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회사 법인의 통합이 일개 사원에게 큰 의미야 있겠습니까만, 나름 회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변화하는 모습을 소개합니다.

트위터 개설

위에 화면에서 보이듯이 경향신문이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화두라는 트위터를 시작했습니다. 9월부터 시작해서 약 한달이 넘었는데 3천여명의 팔로워가 경향신문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사실 올해 초에 제가 아이디 선점 차원에서 만들었던 계정입니다. 닷컴 열풍이 불던 2천년대 초반에는 도메인 선점을 이렇게 했었죠. 그때의 동물적 감각(?)과 함께 논문 주제로 트위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만들었던 계정입니다. 

결국 경향신문에 트위터 담당자(디지털뉴스팀장이 합니다)도 생기고 트위터를 통해 대화가 이뤄지니 뿌듯합니다. 한편으로는 담당자께선 참 무겁고 번거로운일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회사 대표메일, 대표전화, 안내데스크를 통합한 업무와 같을것입니다. 홈페이지에 오류가 생겨도 트위터로 날라오고, 주말에 큰 사건이 터져도 트위터에서 제일먼저 전해줍니다. 쉽지 않은 일일텐데 건투를 빕니다.

소통, 인터랙티브, KHross !

메타블로그 KHross가 생겼습니다. "메타블로그? 한 3년전쯤 유행하던거 아니야?"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만 얘기가 다릅니다. 경향신문 기자들과 편집장, 에디터들이 참여한 메타블로그입니다. 지면에서 못다한 것들을 소개할 수 도 있고 소통을 위한 얘기들을 풀어갈 수 있습니다. 인터랙티브팀이 생겨서 만들어낸 첫 작품이니 관심있게 지켜봐야할 실험입니다.

앞으로 할 일도 많겠지요. 연합뉴스는 이슈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배치를 시작했습니다.

해외의 몇몇 웹사이트에서 검색노출의 결과를 바탕으로 보여주던 방식인데 뉴스통신사에서 보여주니 색다른 맛이 있습니다.

또 뉴욕타임즈가 시작했던 인포그래픽도 재미난 정보전달 방식입니다. 지금은 조인스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들에서도 시작했습니다. 영상, 사진, 글, 표 등을 스토리에 따라 조작하면서 볼 수 있는 방식입니다. 이런저런 방식들 모두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려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국내 언론사들이 많이 사용하진 않지만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통한 트래픽 유입도 상당합니다. 심지어 한 해외 언론사의 경우 유입트래픽 순위권에 페이스북, 유튜브가 항상 있습니다. 네이버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는 국내 언론사의 페이지뷰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예전, 뉴스 웹사이트를 기획할 때를 생각해보면 기술의 유행에 따라 만들어가면 일반 사용자들이 당황하며 따라오질 못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면 시대에 뒤쳐지는 것 같고. 그래서 서비스를 만들어내자면 설득해야할 사람도 많고 참으로 복잡한 일입니다.

어찌했건 10월 6일 경향신문 창간 64주년을 맞이해서 경향신문의 웹사이트도 새단장을 했고 여러가지 변화가 있기에 블로그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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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을 지켜주는 신문이 되기를 2010/10/06 0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겨레처럼 변질이 되더라도 빨리 반성하고 한국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가을이 되면서 취재의 내용이 바뀌고 있습니다.
일단 캠핑을 시작했습니다.
지난번 부터 네이버캐스트에 캠핑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직접 캠핑을 하지 않고 취재만 하다보니 뭔가 부족함이 느껴져서
결국 지난주말에는 캠퍼 선배를 따라가 1박2일의 캠핑을 했습니다.

그렇게 첫 캠핑을 시작한 곳은 남양주시 천마산 자락의
팔현캠프.

물도 멀리서 길어와야하고 화장실은 이동식(푸세식)입니다.
대신 잣이 뚝뚝 떨어지는 숲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술먹고 떠드는 행락객들이 많지 않았던 것도 인상적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주 수요일 네이버캐스트를 통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예~~ 전 야영과 다르게 캠핑이 여러 장비가 수반되는
참으로 복잡한 작업입니다.(물론 쉽자면 쉬운 것이고..)

앞으로 장비에 대한 장단점, 문제점, AS에 대한 이야기
업체들의 횡포, 소비자 불만 등도 기사로 다룰 예정입니다.
이미 몇 가지 아이템은 취재중에 있습니다.

이미 2백만~3백만에 이른다는 캠퍼들이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캠핑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캠핑에 대한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독자분들께서도 제 블로그나 기사에 댓글로 의견을 내주시면
반영을 뛰어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취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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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 발간 소식이 순위권에 들어있네요.
DJ의 자서전을 경향신문 논설위원이신 김택근 위원께서 집필하셨는데
며칠 전 있었던 인터뷰를 오늘 편집했습니다.

편집이랄것도 없이 그냥 잘라 붙인것.



자신을 감옥으로 보내고, 사형수로 만들었던 땡땡이들을 용서하는
진정한 대인배.....

자서전을 집필한 김택근 위원이 뽑은 '가장 DJ를 잘 표현한 모습'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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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danbinews.com BlogIcon 이승환 2010/08/20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상 잘 봤습니다. 저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이승환입니다. 저희 대학원에서 7월에 <단비뉴스>라는 인터넷 매체를 만들었는데요. 이번에 인터뷰 기사로 김택근 논설위원님을 다루고 싶은데 섭외가 싶지 않네요. 김 위원님에게 메일을 보냈지만 답메일이 없으시고요. 혹시 제가 김 위원님과 연락이 닿을 방법이 없을까요. 예비언론인으로서도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분인데, 혹시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작은 바람으로 글을 남깁니다.
    김 위원님 메일을 네이버 검색으로 찾았는데요,,, wtkim@kyunghyang.com 혹시 잘못된건 아닌지??
    제 메일은 ts0802@naver.com 입니다.


어제 기차를 타고 봉하마을에 내려와 선배들 틈에 끼어 쭈욱 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도 조문객이 줄긴커녕 오히려 늘어나더니 그 행렬이
오늘 오전 8시까지 지속됐습니다.

오전 8시에 대기시간이 20분정도로 잠시 줄더니 꾸준히 늘어나
지금은 다시 몇 시간을 기다려야합니다.

30도를 오간다는 더운 날씨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조문하는 사람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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