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에 미국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SEMA show라고 불리는 자동차 튜닝 전시회였습니다. 약간 색다른것이 완성차 중심의 모터쇼에서는 친환경, 에코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시가 진행되는 반면 SEMA  같은 경우는 멋지고 아름다운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인천공항서 미국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비행기는 태평양을 건너  바로 미국 서부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되돌아 오는 항공기는 미국 북부의 알래스카를 거쳐 극지방을 지나 북쪽에서 인천공항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 비행기에서 자다깨다를 몇 차례 반복했을 무렵 창 밖을 보니 빙하가 등장했습니다. 평생 한번 실제로 볼까 말까 한 것이 빙하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봤습니다.

그런데 갈라지고 있더군요. 졸다가 휴대폰으로 잽싸게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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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입력 2010-09-08 11:20 | 최종수정 2010-12-15 17:48  

영주시에서 30리.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합류해 돌아나가는 곳. 500년 전통을 이어 살아가는 50여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 무섬마을로 찾아갔다.

2009년 1월 시작한 '소읍기행'이 88회를 맞이했다. 매주 수요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간 것이 88주째다. 연재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을은 경북 영주시 수도리, 일명 '무섬마을'로 정했다.
 

무섬마을의 상징 외나무다리 / 이다일기자

1970년대 새로운 다리가 놓이면서 외나무다리는 사라졌다. /이다일기자



1666년 반남박씨(潘南朴氏) 휘 수(諱 燧)가 이곳에 들어와 터를 닦고 집을 지었다. 이 후 예안김씨(禮安金氏) 휘 대(諱 臺)가 들어오면서 두 성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 됐다. 지금도 50여 채의 전통가옥을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이다.

무섬마을에 갈 때는 정신 차려야… 

"외부에 있던 사람이 외나무다리를 건너 들어오면 꼭 빠지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무섬마을 갈 때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외지의 때를 모두 벗어버리고 들어가야 빠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무섬마을 보존회 박종우회장(70)의 말이다. 무섬마을은 마을을 감아 도는 물길 때문에 외지와 단절됐다. 육지라고 하지만 마을 앞은 물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둘러쌌다. 풍수지리상으로 배산임수의 형태다. 산자락 끝에 자리했고 앞에는 물이 흐르기 때문에 논이나 밭을 만들 공간이 없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강 건너 30리까지 농사를 지으러 다녔다. 무섬마을에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외나무다리였다.

 

기와집과 초가집 / 무섬마을에는 50여 채의 전통가옥이 있다.낮은 담장에는 꽃과 풀이 피어나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 이다일기자


1970년대 지어진 콘크리트 다리 덕택에 외나무다리는 사라졌다가 지난 2005년 마을의 옛 모습을 복원하면서 다시 돌아왔다. 박회장은 "옛날에는 저 다리로 가마타고 시집오고 또 죽으면 상여가 저 다리로 나갔어요. 이 마을 사람들에겐 사연이 많은 다리지요"라고 말했다. 외나무다리는 여름이면 사라진다. 비가 와서 물이 많아지면 다리가 쓸려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치와 철거를 반복하는 다리다. 구조도 간단하다. 통나무를 절반으로 쪼개서 의자처럼 다리를 붙였다. 그리고 물에 박아 넣은 것이 외나무다리다. 여름이면 사라지는 다리라 농사일과는 호흡이 맞지 않는다. 비가 많이 오면 논, 밭을 둘러보러 강 건너로 가야하는데 다리가 없으니 난감했다. 마을 사람들은 물살이 약하면 헤엄쳐 건너가기도 했고 한국전쟁때는 군용 보트에 의존해서 강을 건너기도 했다. 

글 읽고 분수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

무섬마을도 여느 시골 마을처럼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올해 일흔인 박회장이 마을에서 네 번째로 젊다. 그래서 마을에는 일 할 사람이 없다. 강 건너에 포도밭이나 고추밭을 소일꺼리로 하기는 하지만 크게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다. 마을일을 공동으로 하기도 쉽지 않다. 그저 자기 집 손질이라도 잘 되면 다행이다. 하지만 방학이나 명절이 되면 얘기가 다르다. 평소 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에 손자, 손녀들이 들어온다. 박회장은 "지난여름에는 한 200명쯤 되더라고요. 여기 주민들에 아들, 딸이 놀러오면서 아이들도 같이 오니 동네가 북적북적 했어요"라고 말했다.

장작/ 집집마다 장작을 쌓아 놨다. 겨울에 장작불을 때는 집이 많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랫목이 뜨끈해서 좋다고 한다. 정작 마을에는 노인들뿐이라서 젊은 사람들이 있을 때 장작을 해 놓거나 돈을 주고 사다놔야 하는 실정이다. / 이다일기자


최근에는 관광객들도 늘어났다. 주로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같은 전통 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무섬마을도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마다 10월에 진행하는 '외나무다리 축제'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무섬마을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외나무다리와 함께 보여준다.

무섬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공부를 많이 했다. 90세가 넘은 노인들 가운데에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있다하니 학구열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주로 관직보다는 학계에 많다고 한다. 50여 채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서 현직 대학교수가 16명이라고 한다. 시인 조지훈의 처가도 이곳이다. 마을을 안내해 준 박종우 회장도 35년간 교직에 있었다.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마을에는 'ㅁ'자 형태의 기와집을 포함해 50여 채의 전통가옥이 있다. 그중에 12채가 빈집이다. 집 주인은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다. 방학이나 휴가철이면 가끔 내려와 머무르는 게 전부다. 하지만 한 집도 외지인에게 팔지 않았다. 모두 박씨 아니면 김씨 가문에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오래 동안 비어있던 집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무섬마을이 고향인 사람들이다. 도회지에 나가 생활을 하다가 수 십 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인근 안동에 가족들을 두고 홀로 들어온 노인도 있었고 서울에 아들, 딸을 두고 옛 집으로 내려온 할머니도 있었다. 400년 가까이 된 고택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그래도 고향이니까 내려왔지. 여기는 공기도 좋아서 아픈데도 낫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고향에 돌아온 소감을 얘기했다. 

아름다운한국 ‘소읍기행’ 연재가 88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그동안 한국의 아담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 1년 8개월을 달려왔다.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일군 사람들부터 천혜의 자연환경에 터전을 가꾼 사람들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버무려져 소읍기행이라는 맛있는 식탁이 차려졌다. 

소읍기행은 분명 마을이야기였다. 그러나 환경이 아닌 ‘사람’이 그 주인공이 됐다. ‘어디에서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전해준 소읍기행의 주인공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김위진 가옥 / 'ㅁ'자형 기와집으로 19세기 말에 건립됐다. 하지만 옛날 형식을 그대로 유지해 가치가 높다. / 이다일기자

지붕위의 박 / 맑은 하늘 아래, 초가지붕 위로 박이 열렸다. 기와 담장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정겹다. 옛날 박이 열려 큰 복을 얻었다는 흥부전의 한 대목이 생각나는 풍경이다. / 이다일기자

만죽재고택/ 무섬마을에 제일 처음 자리 잡은 고택이다. 반남 박씨 휘 수(1641~1729)가 마을 서편 강 건너 머럼에 거주하다가 현종 7년(1666년)에 이곳으로 들어와 지은 집이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며 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 이다일기자

만죽재고택/ 무섬마을에 제일 처음 자리 잡은 고택이다. 반남 박씨 휘 수(1641~1729)가 마을 서편 강 건너 머럼에 거주하다가 현종 7년(1666년)에 이곳으로 들어와 지은 집이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며 지금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 이다일기자

해우당고택/ 선성 김씨 입향조 김대의 셋째집 손자 영각이 1856년에 건립한 주택이다.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ㅁ'자형 가옥이며 무섬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집이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해우당의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 이다일기자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들어가면 된다. 서울에서 대략 1시간 50분 거리다. 동서울터미널이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영주시까지 하루 26회 버스가 운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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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야?

여행/일본 2011/10/13 23:10
당췌 이게 뭐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진을 보면 당췌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상황.
아저씨는 개를 머리위로 들어 올렸고
개는 분홍색 리본을 목에 둘렀다.

뒤에는 왠 연필같은녀석이
지나가는 행인에게 찝쩍거리고 있다.

도대체 이상한 이곳.

여기는 도쿄타워다.
지난 7월 들렀던 일본 동경.
잠시 비행기 갈아타는 시간에 나와
도쿄타워를 갔다.

일본 동경에 도쿄타워라니..
말이 좀 이상하네.
도쿄로 통일.

개를 들고있는 남자는
개와 도쿄타워를 같이 찍겠다는
부인(?)인지 여친인지의 요청에 의해
개를 번쩍 들었다.

아마도 개는 머리에 도쿄타워가 솟아난 듯
찍혔을꺼다.

뒤에 연필같은 녀석은 뭔가 홍보하는 중인듯
ㅎㅎㅎ


바로 요런 모습.
개는 알까. 멋진 사진을 찍어준 주인의 노고를..



도쿄타워를 향해 걸어가는 친구.
택켠 품세를 연상시키는 걸음걸이.
이쿠~이쿠 에크 이쿠 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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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글을 올리고 블로그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다시 시작한다.
페이스북이 워낙 뛰어난 매체 역할을 하기도 했거니와 블로그에 글을 사사로이 올리는 일도
나름 업무와 여가의 사이에서 신경쓰이는 일이라 중단했던 것인데

6월말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블로그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
4월 12일 마지막 글을 썼으니 거의 반년만에 다시 블로그를 시작. 

업무와 연관성도 없고 느낀바 있는바 경험한바 그대로 쓰는 글이 가능한 시점.

이제 슬슬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ㅎㅎㅎ

6월말 회사를 퇴직하고 4개국 여행을 하면서 만난 인연들과
또 평생에 다시 있을까 싶은 여유로운 생활의 흔적들과...

정리해볼 때.

10월의 첫 월요일부터 시작한다.

@이다일

빈둥이로 살던 날 가운데 지난 9월10일의 풍경.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 인근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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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태백의 고랭지 배추 수확을 취재하러 갔습니다.
'네이버-경향' 공동기획 '아름다운한국'의 '소읍기행' 마지막 꼭지였습니다.

제천에서 태백 가는 길. 아효~ 날씨 좋다.

태풍 곤드레인지 곰배미인지의 영향으로 날씨가 좋지 않았습니다. 
태백시에 가서는 특히 날씨를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시내에선 맑고 화창한 날씨였는데 배추밭이 있는 산으로 올라가면
한치 앞이 안보이는 안개가 주변을 감싸옵니다.

고랭지배추가 푸르게 널려있고 초 대형 벤츠로고(?)같은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는 멋진 풍경을 예상하고 간 것인데
결과는 필름을 우유에 현상한 듯 한 사진들 뿐입니다.


결국 발길을 돌려 경북 영주시의 무섬마을로 갔습니다.
태백에서 2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입니다.
가는 길 내내 꼬불랑 산길이었는데 놀랍게도 흰색 포터 트럭이
제 뒤를 바짝 따라 옵니다.

옆으로 비켜주려 하는데도 "양보따윈 바라지 않아"입니다.
후륜구동 2인승 정통 트럭 '포터'를 결국 따돌리지 못하고
추월당했습니다. ㅠ.ㅠ

경북 영주에 도착하니 바람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태풍이 상륙한다는데 경상북도는 바람만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비는 밤 늦게 후두둑 떨어지더니 다음날 아침엔 다시 맑은 하늘이 나옵니다.

무섬마을에서 '양반'들이 사는 모습을 봤고 고택의 여유로움도 봤습니다.
태풍에 정신줄 놓고 땅만 바라보고 있는 해바라기도 찍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풍기 인삼 온천'과 '부석사'가운데 어디를 갈지 갈등.
결국 온천보단 무량수전이다! 라는 각오로 부석사로 향했습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처음 들은 음악이 나르샤의 삐리빠빠~ 어쩌구 하는건데
(나르샤 맞나요?) 하루종일 입가에 맴돕니다.
결국 부석사에서도 삐리빠빠가 맴돌아서 흥얼거립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앞에서 낮잠을 자며 부처님으로부터 '킥'좀 당해보려는데
이노무 "삐리빠빠"땜에 망쳤습니다.

삐리빠빠~

그래서 풍기I.C로 진입해서 훌딱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풍기에서 고기드실 때 주의하세요.

세상에 '메뉴판닷컴'에서 추천한 맛집이래서 갔는데
고기 1인분은 팔지도 않고 대신 먹은 갈비탕은
인삼=국내산, 국물=국내산, 고기=미국산입니다.
그게 8천원입니다.

미제 소고기 먹으러 풍기까지 간게 아닌데 말이죠.
암튼 훌딱 올라왔습니다.

이제 기사 써야죠.

다음주 수요일 네이버 메인페이지에 올라옵니다.
개/봉/박/두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본 '극락' 세계. 옆에서 주워들은 해설로는 저 산너머 모든 곳을 극락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고랭지 배추밭에서 한 컷. 안개가 뿌옇게~~

사실 이게 극락으로 가는 사진 같지 않나요? 아효~ 운전하기도 무섭고

부석사. 하늘을 날 기세.

경북 영주시 무섬마을의 해바라기.

부석사에서 바라본 태백산맥. 요 동네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만나는 곳이라 저산이 태백산인지 요산이 소백산인지 헷갈립니다. 태백과 소백.. 얘기할수록 술생각만 나는~ 친근한 이름들.

무보정 사진이 이따윕니다. 제가 무슨 김중만 선생도 아니고. 이런 괴기스런 사진이 나온곳은 태백시의 귀네미마을입니다. 1박2일에 나와 유명세를 탄 곳이지요. 안개땜에 사람얼굴도 안보입니다.(뻥10%)

강원도 태백, 평창, 정선, 영월. 요런데는 정말 축복받은 땅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선한 날씨와 맑은 공기. 옛날에는 먹을게 없어서 척박한 땅이었다지만 지금은 홈쇼핑보고 간장게장도 시켜먹을 수 있으니 살만하겠죠?

초대형 벤츠(?)로고. 머리 위에서 '윙~윙~'소리는 나는데 보이지 않으니 공포 자체!! 뒷통수를 프레데터가 공격할 듯한 공포를 느끼는 곳입니다. 날씨 좋을때 가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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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분들이죠..
아이들까지 말입니다.

아이셋을 포함해 다섯명의 가족입니다.
이들의 여행은 http://www.pedouins.org/index.html 
홈페이지를 통해 업데이트 되고 있습니다.


http://imjustwalkin.com/  여기 나오는 양반은
수레같은걸 끌고 도보여행을 하고 있답니다.

세상참... 즐거운일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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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강원도를 다녀왔습니다.
횡성을 지나 정선에 들어가는 내내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풍경이라곤 전혀 볼 수 없는 난해한 날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튿날에는 조금 개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이 될 정도가 되긴 했습니다만 사진을 찍어 기사를 써야하는 
상황에서는 반가울리 없는 날씨였습니다.

하이원 리조트가 있는 정선군 고한읍에서 조금 떨어진 '민둥산'입니다.
정상 1km아래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눈이 쌓여 취재차는 꼼짝 못하고 체인도 사용해 봤지만 역시나...

결국 슬슬 걸어서 다녀왔습니다. (역시 산은 걸어다녀야 제맛이긴 합니다)
체인을 사용하고도 줄줄줄 미끄러진 길을 구형 4륜구동 SUV가
아무런 장비도 없이 지나갑니다. 역시 4륜구동이 좋긴 합니다.

겨울 강원도에서 제일 부러운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진은 가로 1600px의 대형입니다. 누르면 커집니다. 화면에 넓게 띄워놓고 보려고 조금 크게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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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chanceit.tistory.com/ BlogIcon 제이디스 2010/02/04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정선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Favicon of http://www.leedail.com BlogIcon 이다일선수 2010/02/04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넵~ 정선입니다.
      제가 아는 처자 이름도 정선이고
      제가 처음 배운 기타교본도 X정선님이 쓴거고
      암튼 정선입니다. 하하

일단 옥정호를 다녀오실 분은 새벽을 추천합니다.
옥정호라는 곳이 국사봉 등산을 하지 않으면
긴 시간 구경할 꺼리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11km의 드라이브 코스는 차로 빙~ 돌면 끝입니다.
풍광이 좋긴 좋습니다.
커피한잔 마시면서 정자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면 좋습니다.

서울에서 약 4시간, 가깝지 않은 거리에 있는 
옥정호를 다녀온 취재의 B컷들 입니다.

옥정호의 대표적인 사진 구도입니다. 일명 붕어섬입니다.

붕어섬을 찍으려면 국사봉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15분가량 올라가야 합니다. 절반은 계단으로 되어 있지만 높아서 숨이차고 나머지 절반은 흙길 등산로라 숨이 찹니다. 국사봉 정상에 못미친 곳에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사진 포인트가 있습니다.

옥정호변에 있는 휴게소입니다. '도시락을 가져와서 먹어도 됩니다'라는 친절한 간판을 붙인 휴게소죠. 개인이 운영하는 듯. 제가 갔던 날은 눈이 많이 온 다음날이라 아직 눈도 안치워진 상태였습니다.

옥정호 드라이브 코스라는 길입니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이어집니다.

전날 내린 눈으로 인해 차들은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길도 넓직하니 '드리프트'라도 하고 싶은 맘이었지만 오래사는게 더 중요하단....

옥정호 전경입니다. 해가 벌써 중천에 떴네요. 새벽에 일어나보니 눈이 앞이 안보이도록 내리길래 포기하고 늦은 아침 먹고 슬슬 올라왔습니다.

또 다른 각도의 옥정호와 호반 드라이브 코스.

옥정호의 일출을 보려면 별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국사봉 주차장에서 차로 5분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일한 숙박업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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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어릴때는 아버지의 직장이 대학로에 있었고 커서는 가톨릭청소년회관이 대학로에 있어서 자주 드나든 곳이죠. 또한 술을 먹기 시작한 이후에는 강북지역에서 대학로를 빼놓으면 안타까우니 자주자주 갈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헌데..

취재로 다녀오니 모르던 내용도 많고 느낌도 많이 다릅니다.

"연극보세요~!" 혜화역 계단을 올라오면 항상 만나는 호객꾼들.

대학로가 있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앞입니다. 계단을 올라오면 항상 서서 연극 전단지를 나눠주는 호객꾼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 사람들을 꾼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추측컨데 일부는 낮에 전단지를 돌리고 저녁이면 무대에 설 연습을 하는 연기 지망생일 수 도 있고 일부는 학비건 유흥비건 돈을 벌기위해 알바를 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놀라운것은 이들은 항상 20대 초중반이라는 점입니다. 마치 트와일라잇의 주인공들 처럼 말이죠. 

또한 빨간 바스켓에 꽃을 담아 파는 모습까지도 제가 한창 대학로를 전전하던 15년전 모습 그대로 입니다.

사진 속 사람들을 잘 보면 재밌습니다.

사진의 제목을 뭐라고 해야할까요? "쏠로천국 커플지옥?" 아닙니다. 제가 붙인 이름은 "나는 너희들이 못보는 것을 다 보고 있다"라는 긴 제목입니다.

이유인 즉슨, 사진을 자세히 바라보면 유독 한사람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왼쪽에 노부부도 팔짱끼고 걸어가느라 카메라는 아웃오브'안중' 이었구요. 오른쪽 빨간목도리 커플도 관심없습니다. 그 옆에 갈색자켓을 입은 커플 역시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는 않네요. 유독 정면에서 살짝 왼쪽의 쏠로남 만이 카메라를 보며 "뭐하는 녀석이야?"라는 표정을 지어 줍니다.  허긴, 쏠로는 주변을 열심히 탐색하고 두리번 거려야 합니다. 화이팅!!

페루의 펜플룻? 알XX라고 했던것 같은데 당췌 이름을 모르겠어요

Made in peru라고 큼직하게 써 있던 대나무 악기입니다. 페루에서 대나무가 나는지 상당히 궁금했으나 모아이상을 닮은 페루아저씨에게 물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어찌나 한국말을 잘하시는지 메이드인 페루에 살짝 의심이 들긴 했습니다. 대학로에서 이런걸 팔다니...

대학로에서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는 언덕에서 만난 할머니 시스터즈(?)입니다.

이곳에서 처녀적부터 살아오셨다는 할머니 시스터즈의 뒤태. 모두 칠순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하십니다. 시간날때마다 이곳을 산책하신게 건강의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뒤따라 가며 연발 질문을 던졌습니다. 해질무렵 언덕길에서 경치 감상을 살짝 하시고 다시 길을 나서는 모습에 여유가 느껴집니다.

학림다방을 아시나요? 대학로 터줏대감, 사랑방, 문인들의 고향, 반세기를 지켜온 명소랍니다.

대학로의 한복판.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횡단보도가 있는 바로 그곳입니다. 한때 대표적 약속의 장소였던 켄터키 후라이닭집의 바로 건너편이죠. 예전에는 1층에 바로크레코드가 있었고 2층에 학림다방이 있었던 빨간 벽돌건물이었는데 지금은 1층이 약국으로 바꼈습니다. 아마도 의약분업이 시행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터 약국이 들어선 것 같았는데 바로크레코드에서 사온 CD와 LP가 많았던 터라 지날때마다 아쉬움이 드는 건물이었습니다.

학림다방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과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변함없이 그대로 입니다. 다방 문 안에서 대학로를다보면 이런 모습이겠죠. 거리는 점점 변해가고 각종 수입 브랜드 커피집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여느때 처럼 거리를 메우고 있고 가로수도 도로도 그대로입니다. 사실 서울에서 70대 노인과 20대 젊은이가 한공간에 앉아 커피 마시는 곳이 이곳 말고 또 있을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이상, 취재하고 기사송고 후 남은 B컷으로 써본 글입니다. 글과 사진에 제약이 있어 여러장 다 올리지 못하는 아쉬움에 줄줄이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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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쓰댕 2009/12/30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outof안중..ㅋㅋ 대박

안흥찐빵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아예 이름을 이제 찐빵마을로 부르더군요

안흥찐빵은 전국에 워낙 유명하게 퍼져 있는데다가 어디서나 택배로 사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 안흥찐빵의 60~70%가 가짜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안흥에서 안 만든건 가짜라고 하더이다)

안흥찐빵이 생겨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옛날 60년대는 보릿고개가 남아있었고 전라도, 경상도와 달리 강원도는 깡촌에 먹을것이 풍부하지 못한 환경이었습니다. 40년전 경상도에서 안흥으로 시집온 김인규(60)씨에 따르면 "강원도에 이렇게 먹을게 없을지 몰랐다, 경상도는 그래도 고기도 잡고 과일도 나고 보리심어서 이모작도 하고 그랬는데 여기오니 옥수수밭 밖에 없더라..."고 강원도의 옛 모습을 알려줍니다.

헌데 50년대 후반 미국의 밀가루 원조가 시작되면서 당시 빵을 비롯한 식량으로 사용된 것이 찐빵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당시 안흥에서는 찐빵이 지금처럼 간식으로 활용되지는 않았습니다.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도시락이 찐빵이었고 아침일찍 길을 나설때 식사대용으로 찐빵을 먹었습니다. 그러니 안흥에선 모내기를 할때나 추수때 혹은 마을의 큰일이 일어나서 모두 팔을 걷어부칠때 항상 찐빵을 만들어 나눠먹었다고 합니다.

또한 옛날의 찐빵은 막걸리를 이용해 빵을 발효시켰는데 지금도 발효숙성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막걸리가 아닌 생 이스트를 넣어서 대신한다고 합니다.

이곳의 찐빵이 유명하게 된 이유는 지리적 특성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까지 안흥은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에 중간 휴식지였습니다. 반나절을 달려 안흥까지 오면 여기서 식사도 하고 휴식도 취한 다음 다시 힘을 내서 강릉으로 갔습니다.

대부분의 버스가 여기서 휴식을 했고 그때 인기를 얻게 된 것이 바로 찐빵입니다. 새말IC에서 15분정도 차로 들어가야하는 안흥면은 71년 신갈-새말 구간이 고속도로로 뚫리며 많은 차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74년 새말-강릉구간까지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안흥을 지나는 42번 국도의 인기는 사그라 들었습니다.

시할머니, 시어머니의 찐빵만드는 법을 이어서 하고 있는 '원조안흥찐빵' 김인규 사장입니다. 지금은 딸이 일을 도와주면서 대를 이은 가업이 됐습니다.

지금 안흥은 겨울 휴양지 덕택에 제2의 부흥을 맞고 있습니다. 수천개에 이르는 강원도 펜션들과 수십개에 이르는 리조트로 향하는 발걸음이 안흥을 지나고 있는데요 쉬엄쉬엄 강원도 유랑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로 천천히 지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겸사겸사 옛 추억도 돌이켜볼 겸 안흥찐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겨울철 성수기는 온동네 주민들이 찐빵장사에 매달립니다.

게다가 택배시스템의 발달로 안흥찐빵은 전국 각지로 배달됩니다. 손으로 하나하나 빚어서 만들어낸 찐빵이다보니 대량생산하는 곳에 비해 손맛이 장점입니다. 안흥면에서 손으로 만들어지는 찐빵은 1시간에 3천개 수준. 그것도 겨울철 한창일때 얘기니 하루 8시간 꼬박 만든다 해도 2만4천개 정도가 고작입니다.

이곳은 동네 구석구석 '원조안흥찐빵'으로 가득합니다. 사실 찐빵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어느집이 원조랄 것도 없으니 아무집이나 들어가도 비슷할 껍니다. 하지만 각각의 찐빵집 마다 팥의 가공방법, 찌는 시간, 들어가는 재료로 인해 조금씩 맛이 다르다니 조금씩 사서 본인의 입맛에 맛는 집을 골라보는것도 괜찮겠네요.

맛에 문외한인 저는 그집이 그집 같고 그맛이 그맛인듯 맛있어서 그저 따끈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만 올 겨울 강원도로 놀러가신다면 한번쯤 꼭 들러보기를 권합니다.

ps. 사족을 덧붙이자면 안흥면 인심이 꽤 좋습니다. 옛말에 '곡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안흥은 찐빵덕분에 농한기인 겨울에도 주민소득이 짭짤합니다. 그래서라고 추측하건데 잠시 취재하며 이것저것 귀찮게 해드렸는데도 웃으며 반겨주시고 박카스에 찐빵에 떡까지 끼니를 채울 정도로 인심좋게 내어 주시는 모습이 여유롭습니다. 주변에 묵어갈 곳은 마땅치 않아 횡성이나 원주로 나오거나 스키장이 많은 둔내, 평창으로 가야하지만 지나는 길에 들러봄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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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erry.khan.kr BlogIcon 김명일 2009/12/11 1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2번국도에 있는 심할머니 안흥찐빵에 가끔 들러서 몇 박스 사오곤 합니다. 심순녀 안흥찐빵에서 사올때도 있구요. 강원도 갈 때의 재미중에 하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