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캐나다2010/07/02 15:41
소위 말하는 '선수'들은 풍경을 보는 눈도 비슷한가 봅니다.
캐나다 출장중에 '캠핑'을 주제로 한 꼭지 써보고자 결심하고
알버타주 벤프 인근의 캠핑사이트 몇 군데를 찾아다녀봤습니다.

그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산과 캠핑카가 어우러진 광경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고 이제 기사 쓸 준비를 하는중이었습니다.

헌데 오늘자 조선일보 섹션에 '캠핑' 특집이 있길래 훑어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지구 반대편 캐나다에 똑같은 풍경을 똑같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려있는 것입니다.

캠핑여행 전문가 김산환씨의 사진이라고 나와있는데
저와 같은 위치에서 찍으셨더군요. 
차이라면 캠핑하고 있는 차들이 조금 바뀌었을 뿐. ㅎㅎ

반갑기도하고 재밌기도해서 신문을 찍어 올려봅니다.
iPhone 3GS | Normal program | 1/40sec | F/2.8 | 3.9mm | ISO-80

아래는 조선일보 2010년 7월 2일자 사진이고 위에는 제가 찍어온 캐나다 알버타주 벤프 인근의 캠핑장 사진입니다. '터널마운틴 빌리지2' 캠핑장입니다.

NIKON D3S | Normal program | 1/500sec | F/11.0 | 24.0mm | ISO-400

제가 찍은 사진을 다시 올려봅니다. 경치 좋죠? 캠핑하기도 완전 좋습니다. (누르면 완전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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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다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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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104번지, 백사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혹은 와전되어 천사마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철거민들이 이주해와서 정착했고 또다시 재개발과 철거에 문턱에 있는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 이야기 입니다.
NIKON D3 | Normal program | 1/400sec | F/10.0 | 24.0mm | ISO-500

불암산 자락 산동네, 중계동 104번지의 오밀조밀한 집들이 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은 강남 대치동 뺨치는 학원가가 밀집된 중계동 아파트들입니다.

60년대 말.
서울 청계천에는 고가도로가 건설됩니다.
청계천에 판자집을 짓고 살던 이들은 어디론가 떠나야 했습니다.
용산도 마찬가집니다. 남대문도 그랬구요.

그때까지 서울 곳곳은 판자집이 늘어섰고 도시는 정비되지 않았습니다.
피란통에 여기저기 자리잡은 사람들이 그저 '내집이네~'하며 살고 있었죠.

물론 운좋게 내집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오늘 이야기하는 이곳 104번지 사람들은 그런쪽과 거리가 있나봅니다.

앞서 얘기한 청계천, 용산, 남대문에 줄지어 있던 판자집들이 철거됐습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강제 이주조치됐구요.
이주된 바로 그곳이 여기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입니다.

60년대 말에는 서울시도 아니었고 경기도 양주군이었습니다.
이후 도봉구에 속했다가 노원구가 생기면서 노원구 중계동이 됐습니다.

트럭에 실려 이주해온 주민들에게 나라에서 준것은 겨우 천막뿐이었습니다.
넓은 천막. 서른평이 조금 넘는 천막입니다.
헌데 바닥에는 분필로 선을 그었습니다. 서른평의 천막을 4등분해서
모두 4가구가 살도록 했습니다.

화장실은 커녕 물도 나오지 않아서 산 아래 은행나무 옆 우물터까지
매일 물을 길으러 가야했습니다. 
천막옆에 땅을 파 놓고 화장실로 사용을 했구요.

먹고 살것이 막막했던 당시에 정부에서는 식량도 배급해줬습니다.
매일 점심이면 우동국수에 빨간 단무지를 하나 얹은 국수를 배급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이 국수를 일명 '육여사국수'라고 합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라 붙은 이름입니다.

집을 짓는것은 이주민들 몫이었습니다.
미리 집을 지은 사람들에겐 1만원을 보상해줬지만 
산동네로 이주해 온 주민들이 넉넉한 집을 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불암산 자락인 이곳에는 들짐승들이 많았습니다.
'개'라고 생각하고 쳐다본 큰 짐승은 늑대였습니다.
산에 있던 토끼를 털쪼까리만 남기고 잡아먹는 야생 늑대입니다.

늑대들도 당황했겠죠. 
평생 살아온 산에 사람들이 어느날 몰려들었으니 말이죠.

어쨌건 사람들은 그곳에 자리잡고 살기 시작했고
어느덧 40년이 흘렀습니다.

살기위해 이곳에서 젊음을 보냈던 아낙들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어
동네 방앗간에, 미용실에, 계단 귀퉁이에서 삼삼오오 수다로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은 모두 장성했고 손주들이 대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서울의 개발로 외딴곳까지 원하지 않는 이주를 해야했던 주민들이
이제는 재개발을 원하고 있습니다.

중계동 104번지가 재개발된다는 얘기가 나온것은 벌써 십여년.
속시원하게 진행되진 않았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될라면 빨랑 되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네요'라며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다 낡아 무너질듯 한 지붕, 허술하게 지어진지 40년이 지난 축대가
재개발을 핑계삼아 고쳐지지 못하고 남아 있습니다.

계단가에 모여 담소를 나누던 노인들은 재개발 때문에 구청에서
노인정도 지어주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합니다.

이곳에 남은 칠순이 넘은 노인들은
해방을 겪었고 전쟁을 겪었습니다.
또한 개발을 위해 강제 이주됐고 지금은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40년을 산꼭대기에 살면서 물을 길어나르고
음식꺼리를 사서 언덕베기 집으로 지고 날랐습니다.
장성한 자식들은 모두 출가했지만 노인이된 그들은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남은건 쓸쓸한 노인들과 허물어져가는 집들
그리고 평생 언덕을 오르내리느라 성치 못한 몸뚱이뿐입니다.

취재중에 방앗간에서 만난 한 할머니에게 멍청한 질문을 했습니다.
"할머니, 여기서 평생 사신 이유가 뭐에요?"

멍청한 질문에 답은 간단했습니다.
"돈없으니까 여기 계속살았지. 뭐 남은게 있나."

취재에 나서기 전, 그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알려진 이곳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봤습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중계동 104번지를 이제 곧 사라질 
안타까운 유물처럼 미화하는 많은 사진과 글도 보입니다.

직접 가본 중계동 104번지는 이쁜 사진찍기 위한 출사지가 아니었습니다.
미화될 추억의 달동네도 아니었습니다.

개발과 재개발,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약자들의 인생이 담긴
우리 사회의 그늘진 한 구석이었습니다.

지금도 개발은 계속됩니다.
서울 곳곳이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있습니다.

정작 그 땅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보다, 그 땅의 정당한 가치보다
부정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서울의 발전을 위해 청계천, 남대문, 용산을 내어주고
산동네로 이주해온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서 개발과 재개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취재였습니다.

취재하고 온 느낌을 잊지않기위해 몇글자 적어봅니다.
기사는 다음주 수요일 네이버 '아름다운한국'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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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다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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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차 석모도에 다녀왔습니다.
이미 몇 차례 다녀온 석모도지만 이번엔 취재를 위해 간 것이라
색다른 느낌이 있으려니~~  했습니다.

하지만 모.. 똑같더군요.

조금 다른건 비가 많이 왔다는 점. 그리고 모텔, 콘도 등 대형 숙박시설이
생겼거나 생기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선착장이 깔끔하게 개선됐다는 점...

다음에 다시 올 수도 없고 비오는 풍경이 절반이라 걱정입니다.
석모도에선 꽃게요리와 벤댕이, 병어를 추천합니다.





Posted by 이다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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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하다가2009/05/28 14:29

어제 기차를 타고 봉하마을에 내려와 선배들 틈에 끼어 쭈욱 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도 조문객이 줄긴커녕 오히려 늘어나더니 그 행렬이
오늘 오전 8시까지 지속됐습니다.

오전 8시에 대기시간이 20분정도로 잠시 줄더니 꾸준히 늘어나
지금은 다시 몇 시간을 기다려야합니다.

30도를 오간다는 더운 날씨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조문하는 사람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입니다.


Posted by 이다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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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하다가2009/05/27 19:02
노 전 대통령 서거 닷새째.
봉하마을로 가고 있습니다.

내일은 봉하마을에서 조문이 마무리 될 것이고
모레 새벽 5시엔 서울 경복궁에서 있을 영결식을 위해
서울로 모두 이동한다고 하니 오늘, 내일이 아니면
봉하마을에 갈 기회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오늘까지 추모객이 80만명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었으니
봉하마을의 추모열기는 대단한 듯 합니다.

다음 글은 현장에서 써보겠습니다.

LGE LH2300 | Normal program

Posted by 이다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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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하다가2009/05/26 15:25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2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역사박물관을 방문했다.

원의원은 조문을 마치고 인터뷰에서 “마음속에 품었던것 다 놓아주시길 바라고 대신 민주주의, 민족화합, 선진복지국가는 우리들이 이어가겠습니다”, “세세한 뜻은 다를 수 있지만 큰 틀에서 역사와 국민을 향한 애정, 도전정신은 역사적으로 영원히 평가받을 것 입니다”라며 노 전대통령에 대해 말했다.

또한 인터뷰에서 “마음속에 품었던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매사에 서로 배제하고 서로를 향해서 날을 세우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정치가 되어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에게 저희들이 빚진 마음이 너무 큽니다”라며 유가족에 대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경향닷컴 이다일·이윤정기자 crodail@khan.co.kr〉

Posted by 이다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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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하다가2009/05/25 21:10


월요일 점심.
직장인들이 출근했습니다.
회사들이 많이 모여있는 시청 인근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분향소를 많이 찾아왔네요.

직장인들 뿐만 아니라 아주머니, 할머니, 학생들도 분향소를 찾아와 노 전대통령의 가는길을 아쉬워했습니다.


Posted by 이다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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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오후. 가수 전인권씨를 삼청동에서 만났습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부시시한 모습으로 나타난 전씨는 어눌한 말투로 파급력있는(?) 얘기들을 이어나갔습니다.

댄스음악을 '섹스를 유발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더니 TV에 나와서 시청자를 웃기는데 주력하는 가수들을 모두 가수가 아니라 서커스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2시간 가량 이어진 인터뷰를 통해 많은 얘기들이 오갔고 한마디 한마디는 알아듣기 힘든 얘기들이었지만 마지막 느낌은 한가지 일에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장인이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얼마전 이혼한 부인과 다시 합치려다 성사되지 않았고 아이들과도 연락이 끊겼다는 충격적 얘기를 이번 인터뷰를 통해 밝혔는데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대마초 사건으로 11개월간 옥살이를 한 전력과 지금은 고인이 된 모 연예인과의 스캔들로 인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긴 했지만 30년 록에 대한 열정은 세상 누구보다 순수하고 꾸준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기사가 나간 직후 포털사이트와 경향닷컴 기사의 댓글엔 전씨의 최근 이미지와 관련된 악성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뭐 특별한 관계가 있어 전씨를 옹호하는것은 아닙니다만 제 개인 블로그니 만큼 이런 얘길 쓰고 싶습니다.

"너희중에 아무 죄도 없는자 나에게 돌을 던지라".

기사 원문은 여기를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Posted by 이다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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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한국2009/05/20 14:24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 있는 청남대를 다녀왔습니다.
대통령의 별장으로 워낙 많이 알려진 곳이죠.

20여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구역이기에 자연환경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1983년 당시 준공때 심어진 나무들도 지금은 수십년 나이를 자랑하는
높은 나무로 성장했습니다.

영상으로 숲의 모습을 담아봤습니다.


Posted by 이다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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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생겼던 '새마을 식당'. 분당, 송파에 생기더니 신천에도 생겼다.
여기저기 늘어나고 있는 모양.

고추장 양념과 훈제향이 특징인 연탄불고기와 참치와 돼지고기를 넣고 끓여
가위로 잘게 잘라서 밥에 비벼먹는 김치찌개가 일품.

배고플때 위산 좀 뿜어보려고 특별히 HD영상으로 찍었다.


Posted by 이다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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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읽었습니다. 담아갈게요~~

    2009/05/27 17:29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