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트럭 시장규모는 연간 2만대 수준입니다. 연간 100만대를 오르내리는 승용차 시장에 비하면 무척 작은 시장입니다. 하지만 대당 단가가 5천만원에서 억단위로 올라가기 대문에 금액으로는 만만치 않습니다.

현대차에서 나오는 '트라고'가 국산 트럭으로 대표적입니다. 공사현장이나 화물차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트럭 시장에는 수입차가 흔합니다. 벤츠, 볼보, 스카니아 등 수입차를 타는 것이 눈에 띄는 일이 아닙니다.

트럭은 안에서 가로로 누워서 잠도자고 첨단장비로 무장돼 있다고 합니다. 저도 사실 이날까지 확인은 못해봤었습니다. 전라북도 군산에 위치한 타타대우 공장을 가보기 전까진 말이죠.

사실 2004년부터 시작된 타타대우차는 인도 타타자동차의 계열사입니다. 세계4위의 상용차 메이커구요. 영어로 TATA라고 쓰는 회사입니다. 재규어, 랜드로버를 비롯한 세계 유명 차 회사를 인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04년에는 대우상용차를 인수해 타타대우로 거듭났습니다. 이후로 고용은 60%가 증가해 지역경제에 이바지했고 매출은 연간 6800억원으로 두배가량 상승했습니다. 

실적도 좋아지고 지역과도 친밀해진 때문인지 타타대우차 공장은 지난 23일 축제를 열었습니다. 자사의 차 이름 '프리마'를 따서 '프리마 축제'라고 했습니다. 이날은 약 5천명의 타타대우 관계자, 지역주민들이 모여 공장의 운동장에서 축제를 열었습니다.

군산의 공업단지에 자리한 타타대우 공장에는 평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평소 출입이 통제되는 생산라인도 이날 공개됐는데요, 일전에 봐 왔던 승용차 공장은 아기자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큼직큼직합니다.

길다란 H형 차체에 부품과 전선들을 조립하고 차축, 엔진, 캡 등 부품을 차례로 장착합니다. 기계가 하는 부분도 있지만 사람의 손이 아직 많이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로봇이 신기한듯 앞에서 떠나질 못합니다. 차량의 전면 유리는 로봇이 붙입니다. 네 귀퉁이를 돌아가며 닦고, 거기에 접착제를 바릅니다. 그리고 살짝 마르길 기다렸다가 차체에 붙입니다. 워낙 부품들이 큼직해서 사람이 절대 들고 다닐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공장의 라인은 대량생산을 위한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구성됐습니다. 가운데 라인으로 차체가 지나가면 각 공정에 따라 부품을 끼웁니다. 약 12분에 한대씩 트럭이 생산되니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찰나. 승용차는 1분 몇십초에 한대씩 나온다는 얘기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덩치가 승용차의 몇 배는 되니 12분도 대단한 수치입니다.

타타대우 트럭에는 독일 ZF사의 자동변속기도 들어갑니다. 또한 실내는 매우 럭셔리(?)합니다. 사실 럭셔리라기 보다는 예상외의 첨단장비들과 넉넉한 공간(당연한가?)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재규어XF 변속기

계단을 몇 개 올라 운전석에 들어가보니 일단 눈에 띄는 것이 변속기입니다. "어라? 어디서 봤던건데?" 하고 떠올려 보니 재규어 XF에 들어간 변속기와 모양이 비슷합니다. 다이얼식 변속기는 쉽게 보기 힘든거죠. 일반 차에는 위 아래로 움직이는 변속기가 주로 쓰입니다. 또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들은 버튼으로 D, N, R이 표시된 버튼형 변속기가 쓰이구요. 타타대우의 프리마에는 재규어 XF와 유사한 형태의 다이얼식 변속기가 채용됐습니다.



세련된 모양은 조금 떨어져 보이지만 재규어 XF의 변속레버와 유사해보입니다.


또 고개를 돌리는데, 유로 5기준에 맞췄다고 하더니 헤드라이트 점등 스위치가 유럽식입니다. 주로 독일의 폭스바겐이나 BMW같은 경우에 운전석 왼쪽에 돌리는 스위치로 헤드라이트를 켜는데 타타대우 프리마에도 똑같은 형태의 스위치가 있습니다.

USB연결과 AUX단자까지.. 오오~ 대단한걸~

4천RPM까지 그리고 160km까지 표시된 프리마.

이거슨 독일차들에서 흔히 보이는 다이얼식 헤드램프 스위치입니다.




내비게이션 따위는 기본으로 들어갔구요 ㅎㅎㅎ, USB연결 단자도 나와 있습니다. 왠만한 고급차 편의사항보다 좋아보입니다. 무려 560마력에 이르는 차량입니다. 계기반을 살펴보니 RPM 이 4천정도까지만 쓰게 됩니다. 속도계는 160km까지 나와 있구요. 사실 빨리달릴 필요는 없으니 충분해보입니다.

재밌는것은 차를 오르는데 발견했습니다. 문짝에 쓰인 경고문구입니다. 앞을 보고 타라는 내용이나 두손과 한발 혹은 한손과 두발을 사용하라는 문구는 참으로 특이해 보입니다. ㅎㅎㅎ
이날 행사에는 김종식 타타대우 사장이 직접 프리마를 몰고 행사장으로 들어왔습니다. 김종식 사장은 지난해 10월 타타대우 사장으로 온 이후에 바로 대형면허 취득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직접 차를 타보기로 했답니다. 참으로 활동적이고 적극적인분입니다. ㅋㅋㅋㅋ

타타대우차의 김종식 사장


듣기로는 "사장이 대형면허 따서 타보는데 어찌 임원들이 가만있느냐"며 많은 임직원들이 대형면허를 취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 29일에는 군산에서 서울까지 프리마 유로5를 출시하는 행사에 12명의 임직원이 12대의 대형 트럭을 직접 몰고 올라왔습니다.

아마도 12명의 임직원들은 적진에 말을 타고 들어가는 비장함도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렇게 비장하게 서울로 상경해서 김종식 사장은 "내년에 중대형 상용차에서 1위를 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트럭의 세계는 참으로 새롭습니다. 커다란 덩치와 엄청난 힘을 갖고 움직이는 차도 나름 매력적입니다. 언제 저도 대형면허좀 따서 트럭도 시승해보고 싶습니다.

아래는 공장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 여러장의 사진을 줄줄이 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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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토토삐삐엄마 2010/10/30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을 생생하게 찍어서인지..노동자분들의 노고가 그대로 보이는 듯...저도 트럭에 수입차많은거 보고 신기하게 많이 보긴 했었어요...그런데 타타대우가 있는지는 몰랐네요...남편도 자동차쪽 일을 해서인지 자동차쪽은 관심이 많이가요..

어제 F1 경기장의 불법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나니
기운이 쭉 빠졌습니다.

경기 직전까지도 잘되어야지, 성공해야지라고 기원하던 마음이었는데
하나하나 파헤쳐지는 사실들을 보는 마음이 참으로 참담합니다.

오늘은 F1대회를 진행한 카보측의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아직 대책을 논의중이라고 합니다.
정확하게는 홍보 대행사를 통해 들었습니다.

자기들도 각종 매체에서 문의는 오는데
마땅히 답변할 내용이 없어서 난처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불법건축물에 대한 기사가 나간 다음날
전남도 의회에서 '감사'를 한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지자체 예산이 투입된 카보 역시 감사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제 기사가 전송된 대부분의 포털사이트를 들여다 봤습니다.
수천개가 넘는 댓글을 훑어보듯이 모두 들여다 봤습니다.

관람객 안전에 대해 이야기한 기사인데 댓글에는
지역감정을 부추기거나 정치적 의도까지 들먹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 블로그 방명록에는 고향이 어디냐며 
노골적인 지역감정을 드러내는 분도 계셨습니다.

네...

저 고향 전라남도입니다.
F1개최된 곳에서 차로 30분만 가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법과 파행으로 이뤄진 안전불감증 이야기는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겪었습니까.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을 비롯해
인재라고 불리던 사고들 말입니다.

다행스럽게 큰 탈 없이 F1경기를 마쳤지만
그렇다고 모른척 할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번 기사는 우연히 주워들은 얘기입니다.

제가 경기를 관람했던 L스탠드는 주차장에서 3km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경기시간은 다가오는데 경기장에 8대가 운행된다는 셔틀버스는 만원입니다. 

미리 주차권을 구입했거나 미디어카드를 가졌거나 패독클럽/VIP/행사관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셔틀버스를 타거나 3km를 걸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아이가 휠체어를 타는데 만원버스에 탈 수 없으니 
아이만 내려주고 돌아오겠다는 차량도 출입을 거부당했습니다.
결국 휠체어에 아이를 태우고 씩씩하게? (거리며?) 걸어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찌했건 저는 약간의 편법을 이용했습니다.
경기 시작은 5분도 안남았고 걸어가도 늦겠다 싶어
공사관계자라고 쓴 표지판을 붙인 차에가서 "조금만 태워주세요"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분과 약 2km를 가는 동안 나눈 얘기가 '불법건축물' 기사가 됐습니다.
물론 그분과 얘기를 나누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보강취재를 한 것이죠.

어쨌건 기사가 나간 뒤 이메일, 댓글 심지어 전화로 많은 분들이
항의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많은 댓글에서 
'F1경기 시작할때까지 아무 기사도 없다가 막상 좋지 않은 내용 보이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까발린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사실 전 F1 잘보자고, 즐겁게 보는 법까지 연재했습니다.
그것도 네이버 메인에 매주 금요일에 연재했습니다.

F1이 개최되길 꾸준히 지켜봤고 누구보다 기대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제 고향 바로 옆인데 발전되고 홍보된다면 누가 나쁜얘기 하겠습니까.

뭐.. 그렇습니다.

늦은 시간에 주절주절 소회를 썼습니다만
'안전'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하고 타협할 수 없는 얘기입니다.

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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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똑똑이 2010/10/28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마 스탠드사건은 양반일겁니다.
    카보를 보면 예전에 부천국제영화제가 생각나는군요...
    신비스러운 카보, 물론 조직위원회도 경험부족이지만 총체적인 개선의 대상은 카보겠죠
    스스로들 잘알테니까요


오늘 2010년 10월 6일, 경향신문이 창간 64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생일날이죠. 기쁜날입니다. 여러사람에게 기쁜날입니다.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취재차 시베리아와 몽골 초원을 헤맨게 엇그제 같은데 벌써 4년 전 일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창간 64주년인 올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통합이 진행중이어서 더욱 중요한 생일입니다. 500여명의 오프라인 신문사와 30여명의 온라인 법인이 통합하는게 뭐 그리 큰 이슈가 될까 싶지만 회사 내부는 그렇다쳐도 회사외부에서 바라보는 근심반 기대반의 시선은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회사 법인의 통합이 일개 사원에게 큰 의미야 있겠습니까만, 나름 회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변화하는 모습을 소개합니다.

트위터 개설

위에 화면에서 보이듯이 경향신문이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화두라는 트위터를 시작했습니다. 9월부터 시작해서 약 한달이 넘었는데 3천여명의 팔로워가 경향신문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사실 올해 초에 제가 아이디 선점 차원에서 만들었던 계정입니다. 닷컴 열풍이 불던 2천년대 초반에는 도메인 선점을 이렇게 했었죠. 그때의 동물적 감각(?)과 함께 논문 주제로 트위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만들었던 계정입니다. 

결국 경향신문에 트위터 담당자(디지털뉴스팀장이 합니다)도 생기고 트위터를 통해 대화가 이뤄지니 뿌듯합니다. 한편으로는 담당자께선 참 무겁고 번거로운일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회사 대표메일, 대표전화, 안내데스크를 통합한 업무와 같을것입니다. 홈페이지에 오류가 생겨도 트위터로 날라오고, 주말에 큰 사건이 터져도 트위터에서 제일먼저 전해줍니다. 쉽지 않은 일일텐데 건투를 빕니다.

소통, 인터랙티브, KHross !

메타블로그 KHross가 생겼습니다. "메타블로그? 한 3년전쯤 유행하던거 아니야?"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만 얘기가 다릅니다. 경향신문 기자들과 편집장, 에디터들이 참여한 메타블로그입니다. 지면에서 못다한 것들을 소개할 수 도 있고 소통을 위한 얘기들을 풀어갈 수 있습니다. 인터랙티브팀이 생겨서 만들어낸 첫 작품이니 관심있게 지켜봐야할 실험입니다.

앞으로 할 일도 많겠지요. 연합뉴스는 이슈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배치를 시작했습니다.

해외의 몇몇 웹사이트에서 검색노출의 결과를 바탕으로 보여주던 방식인데 뉴스통신사에서 보여주니 색다른 맛이 있습니다.

또 뉴욕타임즈가 시작했던 인포그래픽도 재미난 정보전달 방식입니다. 지금은 조인스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들에서도 시작했습니다. 영상, 사진, 글, 표 등을 스토리에 따라 조작하면서 볼 수 있는 방식입니다. 이런저런 방식들 모두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려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국내 언론사들이 많이 사용하진 않지만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통한 트래픽 유입도 상당합니다. 심지어 한 해외 언론사의 경우 유입트래픽 순위권에 페이스북, 유튜브가 항상 있습니다. 네이버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는 국내 언론사의 페이지뷰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예전, 뉴스 웹사이트를 기획할 때를 생각해보면 기술의 유행에 따라 만들어가면 일반 사용자들이 당황하며 따라오질 못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면 시대에 뒤쳐지는 것 같고. 그래서 서비스를 만들어내자면 설득해야할 사람도 많고 참으로 복잡한 일입니다.

어찌했건 10월 6일 경향신문 창간 64주년을 맞이해서 경향신문의 웹사이트도 새단장을 했고 여러가지 변화가 있기에 블로그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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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을 지켜주는 신문이 되기를 2010/10/06 0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겨레처럼 변질이 되더라도 빨리 반성하고 한국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가을이 되면서 취재의 내용이 바뀌고 있습니다.
일단 캠핑을 시작했습니다.
지난번 부터 네이버캐스트에 캠핑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직접 캠핑을 하지 않고 취재만 하다보니 뭔가 부족함이 느껴져서
결국 지난주말에는 캠퍼 선배를 따라가 1박2일의 캠핑을 했습니다.

그렇게 첫 캠핑을 시작한 곳은 남양주시 천마산 자락의
팔현캠프.

물도 멀리서 길어와야하고 화장실은 이동식(푸세식)입니다.
대신 잣이 뚝뚝 떨어지는 숲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술먹고 떠드는 행락객들이 많지 않았던 것도 인상적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주 수요일 네이버캐스트를 통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예~~ 전 야영과 다르게 캠핑이 여러 장비가 수반되는
참으로 복잡한 작업입니다.(물론 쉽자면 쉬운 것이고..)

앞으로 장비에 대한 장단점, 문제점, AS에 대한 이야기
업체들의 횡포, 소비자 불만 등도 기사로 다룰 예정입니다.
이미 몇 가지 아이템은 취재중에 있습니다.

이미 2백만~3백만에 이른다는 캠퍼들이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캠핑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캠핑에 대한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독자분들께서도 제 블로그나 기사에 댓글로 의견을 내주시면
반영을 뛰어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취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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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말하는 '선수'들은 풍경을 보는 눈도 비슷한가 봅니다.
캐나다 출장중에 '캠핑'을 주제로 한 꼭지 써보고자 결심하고
알버타주 벤프 인근의 캠핑사이트 몇 군데를 찾아다녀봤습니다.

그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산과 캠핑카가 어우러진 광경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고 이제 기사 쓸 준비를 하는중이었습니다.

헌데 오늘자 조선일보 섹션에 '캠핑' 특집이 있길래 훑어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지구 반대편 캐나다에 똑같은 풍경을 똑같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려있는 것입니다.

캠핑여행 전문가 김산환씨의 사진이라고 나와있는데
저와 같은 위치에서 찍으셨더군요. 
차이라면 캠핑하고 있는 차들이 조금 바뀌었을 뿐. ㅎㅎ

반갑기도하고 재밌기도해서 신문을 찍어 올려봅니다.

아래는 조선일보 2010년 7월 2일자 사진이고 위에는 제가 찍어온 캐나다 알버타주 벤프 인근의 캠핑장 사진입니다. '터널마운틴 빌리지2' 캠핑장입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다시 올려봅니다. 경치 좋죠? 캠핑하기도 완전 좋습니다. (누르면 완전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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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남군 2010/09/07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 다시 한번 가봐야죠~ㅋ

일명 104번지, 백사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혹은 와전되어 천사마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철거민들이 이주해와서 정착했고 또다시 재개발과 철거에 문턱에 있는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 이야기 입니다.

불암산 자락 산동네, 중계동 104번지의 오밀조밀한 집들이 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은 강남 대치동 뺨치는 학원가가 밀집된 중계동 아파트들입니다.

60년대 말.
서울 청계천에는 고가도로가 건설됩니다.
청계천에 판자집을 짓고 살던 이들은 어디론가 떠나야 했습니다.
용산도 마찬가집니다. 남대문도 그랬구요.

그때까지 서울 곳곳은 판자집이 늘어섰고 도시는 정비되지 않았습니다.
피란통에 여기저기 자리잡은 사람들이 그저 '내집이네~'하며 살고 있었죠.

물론 운좋게 내집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오늘 이야기하는 이곳 104번지 사람들은 그런쪽과 거리가 있나봅니다.

앞서 얘기한 청계천, 용산, 남대문에 줄지어 있던 판자집들이 철거됐습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강제 이주조치됐구요.
이주된 바로 그곳이 여기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입니다.

60년대 말에는 서울시도 아니었고 경기도 양주군이었습니다.
이후 도봉구에 속했다가 노원구가 생기면서 노원구 중계동이 됐습니다.

트럭에 실려 이주해온 주민들에게 나라에서 준것은 겨우 천막뿐이었습니다.
넓은 천막. 서른평이 조금 넘는 천막입니다.
헌데 바닥에는 분필로 선을 그었습니다. 서른평의 천막을 4등분해서
모두 4가구가 살도록 했습니다.

화장실은 커녕 물도 나오지 않아서 산 아래 은행나무 옆 우물터까지
매일 물을 길으러 가야했습니다. 
천막옆에 땅을 파 놓고 화장실로 사용을 했구요.

먹고 살것이 막막했던 당시에 정부에서는 식량도 배급해줬습니다.
매일 점심이면 우동국수에 빨간 단무지를 하나 얹은 국수를 배급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이 국수를 일명 '육여사국수'라고 합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라 붙은 이름입니다.

집을 짓는것은 이주민들 몫이었습니다.
미리 집을 지은 사람들에겐 1만원을 보상해줬지만 
산동네로 이주해 온 주민들이 넉넉한 집을 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불암산 자락인 이곳에는 들짐승들이 많았습니다.
'개'라고 생각하고 쳐다본 큰 짐승은 늑대였습니다.
산에 있던 토끼를 털쪼까리만 남기고 잡아먹는 야생 늑대입니다.

늑대들도 당황했겠죠. 
평생 살아온 산에 사람들이 어느날 몰려들었으니 말이죠.

어쨌건 사람들은 그곳에 자리잡고 살기 시작했고
어느덧 40년이 흘렀습니다.

살기위해 이곳에서 젊음을 보냈던 아낙들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어
동네 방앗간에, 미용실에, 계단 귀퉁이에서 삼삼오오 수다로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은 모두 장성했고 손주들이 대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서울의 개발로 외딴곳까지 원하지 않는 이주를 해야했던 주민들이
이제는 재개발을 원하고 있습니다.

중계동 104번지가 재개발된다는 얘기가 나온것은 벌써 십여년.
속시원하게 진행되진 않았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될라면 빨랑 되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네요'라며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다 낡아 무너질듯 한 지붕, 허술하게 지어진지 40년이 지난 축대가
재개발을 핑계삼아 고쳐지지 못하고 남아 있습니다.

계단가에 모여 담소를 나누던 노인들은 재개발 때문에 구청에서
노인정도 지어주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합니다.

이곳에 남은 칠순이 넘은 노인들은
해방을 겪었고 전쟁을 겪었습니다.
또한 개발을 위해 강제 이주됐고 지금은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40년을 산꼭대기에 살면서 물을 길어나르고
음식꺼리를 사서 언덕베기 집으로 지고 날랐습니다.
장성한 자식들은 모두 출가했지만 노인이된 그들은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남은건 쓸쓸한 노인들과 허물어져가는 집들
그리고 평생 언덕을 오르내리느라 성치 못한 몸뚱이뿐입니다.

취재중에 방앗간에서 만난 한 할머니에게 멍청한 질문을 했습니다.
"할머니, 여기서 평생 사신 이유가 뭐에요?"

멍청한 질문에 답은 간단했습니다.
"돈없으니까 여기 계속살았지. 뭐 남은게 있나."

취재에 나서기 전, 그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알려진 이곳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봤습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중계동 104번지를 이제 곧 사라질 
안타까운 유물처럼 미화하는 많은 사진과 글도 보입니다.

직접 가본 중계동 104번지는 이쁜 사진찍기 위한 출사지가 아니었습니다.
미화될 추억의 달동네도 아니었습니다.

개발과 재개발,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약자들의 인생이 담긴
우리 사회의 그늘진 한 구석이었습니다.

지금도 개발은 계속됩니다.
서울 곳곳이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있습니다.

정작 그 땅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보다, 그 땅의 정당한 가치보다
부정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서울의 발전을 위해 청계천, 남대문, 용산을 내어주고
산동네로 이주해온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서 개발과 재개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취재였습니다.

취재하고 온 느낌을 잊지않기위해 몇글자 적어봅니다.
기사는 다음주 수요일 네이버 '아름다운한국'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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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차 석모도에 다녀왔습니다.
이미 몇 차례 다녀온 석모도지만 이번엔 취재를 위해 간 것이라
색다른 느낌이 있으려니~~  했습니다.

하지만 모.. 똑같더군요.

조금 다른건 비가 많이 왔다는 점. 그리고 모텔, 콘도 등 대형 숙박시설이
생겼거나 생기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선착장이 깔끔하게 개선됐다는 점...

다음에 다시 올 수도 없고 비오는 풍경이 절반이라 걱정입니다.
석모도에선 꽃게요리와 벤댕이, 병어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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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기차를 타고 봉하마을에 내려와 선배들 틈에 끼어 쭈욱 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도 조문객이 줄긴커녕 오히려 늘어나더니 그 행렬이
오늘 오전 8시까지 지속됐습니다.

오전 8시에 대기시간이 20분정도로 잠시 줄더니 꾸준히 늘어나
지금은 다시 몇 시간을 기다려야합니다.

30도를 오간다는 더운 날씨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조문하는 사람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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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서거 닷새째.
봉하마을로 가고 있습니다.

내일은 봉하마을에서 조문이 마무리 될 것이고
모레 새벽 5시엔 서울 경복궁에서 있을 영결식을 위해
서울로 모두 이동한다고 하니 오늘, 내일이 아니면
봉하마을에 갈 기회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오늘까지 추모객이 80만명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었으니
봉하마을의 추모열기는 대단한 듯 합니다.

다음 글은 현장에서 써보겠습니다.


Posted by 매일매일 달려 이다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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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2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역사박물관을 방문했다.

원의원은 조문을 마치고 인터뷰에서 “마음속에 품었던것 다 놓아주시길 바라고 대신 민주주의, 민족화합, 선진복지국가는 우리들이 이어가겠습니다”, “세세한 뜻은 다를 수 있지만 큰 틀에서 역사와 국민을 향한 애정, 도전정신은 역사적으로 영원히 평가받을 것 입니다”라며 노 전대통령에 대해 말했다.

또한 인터뷰에서 “마음속에 품었던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매사에 서로 배제하고 서로를 향해서 날을 세우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정치가 되어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에게 저희들이 빚진 마음이 너무 큽니다”라며 유가족에 대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경향닷컴 이다일·이윤정기자 crodail@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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