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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1 재개발에 지치고 지친, 서울 중계동 104번지 이야기
일명 104번지, 백사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혹은 와전되어 천사마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철거민들이 이주해와서 정착했고 또다시 재개발과 철거에 문턱에 있는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 이야기 입니다.

불암산 자락 산동네, 중계동 104번지의 오밀조밀한 집들이 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은 강남 대치동 뺨치는 학원가가 밀집된 중계동 아파트들입니다.

60년대 말.
서울 청계천에는 고가도로가 건설됩니다.
청계천에 판자집을 짓고 살던 이들은 어디론가 떠나야 했습니다.
용산도 마찬가집니다. 남대문도 그랬구요.

그때까지 서울 곳곳은 판자집이 늘어섰고 도시는 정비되지 않았습니다.
피란통에 여기저기 자리잡은 사람들이 그저 '내집이네~'하며 살고 있었죠.

물론 운좋게 내집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오늘 이야기하는 이곳 104번지 사람들은 그런쪽과 거리가 있나봅니다.

앞서 얘기한 청계천, 용산, 남대문에 줄지어 있던 판자집들이 철거됐습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강제 이주조치됐구요.
이주된 바로 그곳이 여기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입니다.

60년대 말에는 서울시도 아니었고 경기도 양주군이었습니다.
이후 도봉구에 속했다가 노원구가 생기면서 노원구 중계동이 됐습니다.

트럭에 실려 이주해온 주민들에게 나라에서 준것은 겨우 천막뿐이었습니다.
넓은 천막. 서른평이 조금 넘는 천막입니다.
헌데 바닥에는 분필로 선을 그었습니다. 서른평의 천막을 4등분해서
모두 4가구가 살도록 했습니다.

화장실은 커녕 물도 나오지 않아서 산 아래 은행나무 옆 우물터까지
매일 물을 길으러 가야했습니다. 
천막옆에 땅을 파 놓고 화장실로 사용을 했구요.

먹고 살것이 막막했던 당시에 정부에서는 식량도 배급해줬습니다.
매일 점심이면 우동국수에 빨간 단무지를 하나 얹은 국수를 배급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이 국수를 일명 '육여사국수'라고 합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라 붙은 이름입니다.

집을 짓는것은 이주민들 몫이었습니다.
미리 집을 지은 사람들에겐 1만원을 보상해줬지만 
산동네로 이주해 온 주민들이 넉넉한 집을 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불암산 자락인 이곳에는 들짐승들이 많았습니다.
'개'라고 생각하고 쳐다본 큰 짐승은 늑대였습니다.
산에 있던 토끼를 털쪼까리만 남기고 잡아먹는 야생 늑대입니다.

늑대들도 당황했겠죠. 
평생 살아온 산에 사람들이 어느날 몰려들었으니 말이죠.

어쨌건 사람들은 그곳에 자리잡고 살기 시작했고
어느덧 40년이 흘렀습니다.

살기위해 이곳에서 젊음을 보냈던 아낙들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어
동네 방앗간에, 미용실에, 계단 귀퉁이에서 삼삼오오 수다로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은 모두 장성했고 손주들이 대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서울의 개발로 외딴곳까지 원하지 않는 이주를 해야했던 주민들이
이제는 재개발을 원하고 있습니다.

중계동 104번지가 재개발된다는 얘기가 나온것은 벌써 십여년.
속시원하게 진행되진 않았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될라면 빨랑 되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네요'라며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다 낡아 무너질듯 한 지붕, 허술하게 지어진지 40년이 지난 축대가
재개발을 핑계삼아 고쳐지지 못하고 남아 있습니다.

계단가에 모여 담소를 나누던 노인들은 재개발 때문에 구청에서
노인정도 지어주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합니다.

이곳에 남은 칠순이 넘은 노인들은
해방을 겪었고 전쟁을 겪었습니다.
또한 개발을 위해 강제 이주됐고 지금은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40년을 산꼭대기에 살면서 물을 길어나르고
음식꺼리를 사서 언덕베기 집으로 지고 날랐습니다.
장성한 자식들은 모두 출가했지만 노인이된 그들은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남은건 쓸쓸한 노인들과 허물어져가는 집들
그리고 평생 언덕을 오르내리느라 성치 못한 몸뚱이뿐입니다.

취재중에 방앗간에서 만난 한 할머니에게 멍청한 질문을 했습니다.
"할머니, 여기서 평생 사신 이유가 뭐에요?"

멍청한 질문에 답은 간단했습니다.
"돈없으니까 여기 계속살았지. 뭐 남은게 있나."

취재에 나서기 전, 그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알려진 이곳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봤습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중계동 104번지를 이제 곧 사라질 
안타까운 유물처럼 미화하는 많은 사진과 글도 보입니다.

직접 가본 중계동 104번지는 이쁜 사진찍기 위한 출사지가 아니었습니다.
미화될 추억의 달동네도 아니었습니다.

개발과 재개발,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약자들의 인생이 담긴
우리 사회의 그늘진 한 구석이었습니다.

지금도 개발은 계속됩니다.
서울 곳곳이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있습니다.

정작 그 땅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보다, 그 땅의 정당한 가치보다
부정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서울의 발전을 위해 청계천, 남대문, 용산을 내어주고
산동네로 이주해온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서 개발과 재개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취재였습니다.

취재하고 온 느낌을 잊지않기위해 몇글자 적어봅니다.
기사는 다음주 수요일 네이버 '아름다운한국'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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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매일매일 달려 이다일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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